누군가의 현모양처도, 조력자도, 보호의 대상도 아니다. 당당히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직접 권총을 들고 자유를 쟁취하는 여성들이 있다. 그리고 관객은 이들이 억압의 장벽을 하나하나 부숴나갈 때마다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남성을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델마와 루이스’는 페미니즘 영화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러나 델마와 루이스는 단순히 여성만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여성캐릭터의 이면에서 자유를 억압당한 채 살아가는 인간, 우리 모두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일탈을 꿈꾼다. 마치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우리 주위를 부유하고 있던 불합리함의 공기가 문득 코를 자극할 때 말이다. 델마와 루이스도 그랬다. 외출이라도 하려면 늘 남편 데릴에게 허락을 맡아야했던 가정주부 델마. 지점장인 데릴은 델마를 온전히 독립적인 인간이 아닌 통제 가능한 소유물로 여기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성이다. 그러던 어느 날 둘도 없는 친구 루이스는 델마에게 이틀만 놀러가자고 제안한다. 델마는 망설이지만 “그 사람은 네 아빠가 아니야”라는 루이스의 말에 이내 과감히 쪽지 한 장만을 남긴 채 훌쩍 떠난다. 델마 안에 내재돼있던 주체성이 처음 고개를 들기 시작한 순간이다. 그렇게 델마와 루이스의 일탈이 시작된다.
 
한편 그들의 일탈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목적지로 가던 중 잠시 들른 나이트클럽에서 델마가 강간당할 위험에 처하자 이를 본 루이스가 델마를 구해내고, 오만한 성희롱을 내뱉는 강간미수범 할렌을 직접 권총으로 살해해 응징한다. 그러나 정황상의 증거들은 그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이미 델마와 할렌이 나이트클럽 안에서 함께 춤추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그중 누구도 델마가 강간당할 뻔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것이었다. 그들을 보호해야 할 법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러한 판단 끝에 델마와 루이스는 신고 대신 도주를 택한다. 이로써 루이스는 자신들을 외면하는 취약한 사회질서를, 여성을 성욕해소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남성의 추악한 사고방식을 자신의 손으로 깨뜨리고자 했다.
 
영화 초반에는 루이스가 더욱 적극적으로 주체성을 발휘하지만, 사회로부터 벗어날수록 델마도 점점 이전의 소극적인 델마를 벗어나 자유를 찾아간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남편에게 전화를 건 델마에게 남편은 당장 돌아오라며 협박하고 소리만 친다. 이에 “당신은 내 남편이지 아빠가 아니다”라고 응수하는 델마는, 이미 루이스의 태도를 내면화했다. 이렇게 ‘해방선언’을 날린 델마와 루이스는 멕시코로 도피할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의 도피는 그리 순탄치 않다. 루이스가 침착하게 남자친구 지미에게 빌려온 돈을, 카우보이 제이디가 델마를 유혹하며 접근해서는 몽땅 훔쳐 달아난 것이다.
 
한 명이 주저앉으면, 다른 한 명이 손을 잡아 일으킨다. 이들의 여정 동안 둘이서 번갈아 운전대를 잡는 것은 그런 의미다. 그리고 둘 앞에 펼쳐진 광활한 대자연 속 자유와 연대의 길을 함께 달리는 것이다. 이번에는 델마가,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 주저앉아 우는 루이스를 위로하고 일으킨다. 그리고 제이디에게 배운 대로 강도질을 해 다시 돈을 마련한다. 희망을 앗아간 제이디를 타개책으로 활용해 위기를 극복할 만큼, 델마는 독립적인 주체로 성장했다. 더 이상 남편과 사회에 얽매여있지 않은 델마와 루이스는 계속해서 그들의 길을 개척해나간다. 속도위반을 했다며 그들을 잡아 세운 경찰관을, 델마는 총으로 위협해 경찰차 트렁크에 가둬버린다. 창문으로 성희롱을 남발하던 트럭기사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한다. 대화로 사과를 요구해도 계속해 욕을 내뱉는 트럭기사에게 자비는 없다. 델마와 루이스는 총으로 트럭을 폭발시켜버린다. 경찰은 갇혔고 총은 남성이 아닌 여성 둘의 손에 쥐어졌다. 더 이상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은 없다. 사회적 역할은 뒤바뀌었고 흔한 액션영화의 관습은 전복됐다.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1)감독 리들리 스콧
 
영화 후반부에 다다라 본격적인 추격전이 시작되는데, 델마와 루이스는 능숙한 운전솜씨로 뒤쫓아 오는 경찰차들을 가볍게 따돌린다. 이때 엄청난 스릴을 맛본 델마는 자신이 미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자 루이스는 “아니, 넌 항상 그랬어. 단지 표현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라고 대답한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이들의 주체성은 결코 여정 중에 학습된 것이 아니며, 처음부터 내재돼있었을 뿐이다. 이들의 모험은 그들 자신을 발굴하고 잠재된 주체성을 발휘하는 과정이었다.
 
결국 델마와 루이스는 절벽 끝에서 헬기와 경찰차들로 포위되고 만다. 경찰에 항복함으로써 한계와 편견으로 얼룩진 사회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영영 그 곳을 벗어날 것인가. 이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러나 델마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라고 말한다. 한 번 맛본 자유를 다시 빼앗긴다는 것은 죽음보다 못한 삶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델마와 루이스는 마주보고 웃으며 행복한 선택을 한다. 두 손을 꼭 잡은 채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절벽으로 질주해 자유를 향해 날아간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이들의 모습으로 영화는 막을 내리며, 그 뒤로 밝고 경쾌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치 스스로 쟁취한 자유가 조금도 오염되지 않은 채 박제된 듯하다. 그리고 이 자유는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영화에 법과 도덕의 잣대를 다시 적용한다면 감독이 전하려던 메시지의 본질을 흐리게 될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의 부조리한 사슬을 델마와 루이스가 직접 나서서 끊어버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질주는 우리를 옭아매는 투명한 사슬을 돌아보게 한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사회의 목소리는 종종 우리 자신의 얼굴을 한 채 정체성을 규정하고 틀 안에 가둔다. 우리의 자아는 아직도 짓눌려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 여기 실존하는 ‘나’에게 운전대를 맡긴다면, 우리도 절벽을 향해 행복하게 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절벽 위를 날아오른 채로 끝나는 엔딩 장면,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1)감독 리들리 스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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