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 심판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한 결정문을 읽었던 그는 “인간적으로 매우 고뇌가 컸다”고 했다. 이 전 재판관은 “외압과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기록과 헌법정신에만 기초해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것이 슬프지 않다면 법률가로서 인간의 마음이 마비된 것 아닌가.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될 슬픈 역사다.”라고 말했다.그는 고려대 법대 출신의 첫 여성 사법고시 합격생이자, 역대 두 번째 여성 헌법재판관이었다. 이 교수는 “정당 해산 심판 때는 큰 애가 고3이었고, 탄핵 심판 때는 작은 애가 고3이었다. 당시 밤새워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며 자녀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했다. 이 전 재판관은 강의 후 “과거 사법연수원 교수를 3년간 했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며 “퇴임 후 후학을 양성할 수 있게 돼 감회가 새롭다. 이번 학기엔 특강 위주로 수업을 하고 다음 학기부터는 정규 수업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근혜(65)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 만료가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신변 위험받는 전 재판관 이정미

[뉴스프리존=손상철기자]박근혜 전대통령의 파면을 내린 실제 이정미 전 재판관과 이웃으로 지낸 서울 강남구 대치동 A아파트 주민들은 ‘겸손한 스타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웃의 대다수가 TV에서 중계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보고나서야 헌법재판관이란 사실을 알았다. 이웃과 특별히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그만큼 ‘어깨에 힘을 주거나 자신을 과시한 일이 없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A아파트 인근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박모 씨는 “(이정미 전 재판관은) 특별한 사례고 유명한 분이라 동네 사람들끼리 이야깃거리가 오갈만도 한데 전혀 없다. 이사도 조용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정미 전 재판관의 거주지로 알려졌던 아파트 동호수에는 현재 다른 사람이 입주한 상태다. 인터폰으로 연결된 새 입주민은 “이사 온 지 좀 됐다. (이정미 전 재판관 측의) 우편물이 계속 발송돼고 있어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공인중개사 봉모 씨도 “전세계약이 만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재계약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는 얘기다. 앞서 이정미 전 재판관은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해지자 탄핵을 반대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로부터 위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경비원 C씨는 “(이정미 전 재판관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다”고 인정하면서도 “다른 얘기는 절대 해줄 수 없다. 말도 꺼내지 마라”며 언성을 높였다. 소동이 일어났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정미 전 재판관의 동호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70대 할머니는 “시끄러운 일이 좀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관할지역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대치지구대에선 “신고가 접수되거나 사건화된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당사자들끼리 원만하게 해결한 경우도 있지 않겠느냐”며 해석의 여지를 남겨뒀다.

휴식 끝, 모교에서 후학 양성의 길로 “감회 새롭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이정미 전 재판관은 퇴임 후에도 경찰로부터 최고 수준의 경호를 받았다. 헌재에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신변보호를 요청한 것. 이에 따라 무장경찰 2~3명이 24시간 근접 경호를 해왔다는 후문이다. 위험 요소도 있었지만 심신의 피로를 달래기 위해 외출을 자제했다. 이정미 전 재판관은 지난해 12월9일부터 올해 3월10일까지 총 91일간 휴일 없이 탄핵심판에 매달린 만큼 당분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휴가는 짧았다. 그는 새로운 길에 섰다. 바로 후학 양성이다.

이정미 전 재판관은 지난 4월1일자로 모교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에 임명됐다. 위촉기간은 내년 3월31일까지다. 첫 강의는 지난 7일에 열렸다. 학부생들도 함께 할 수 있는 특강 형식으로 자리를 마련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3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강의실이 가득 찼다. 다음 학기부터 정규 수업을 맡게 될 그는 “감회가 새롭다”며 기대를 나타냈다. 담당 과목은 헌법소송법이다.

한편,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정미 전 재판관은 고려대 특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문을 읽을 당시 “인간적으로 고뇌가 컸다”는 심경과 함께 “한 나라의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것이 슬프지 않다면 법률가로서 인간의 마음이 마비된 것 아닌가.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 될 슬픈 역사다”고 밝혔다. 선고 당일 벌어진 ‘헤어롤’ 해프닝에 대해선 “미용실 갈 시간조차 없어 집에서 직접 머리를 자를 정도였다”면서 “너무 바빠 헤어롤을 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 박근혜 전대통령, 이정미 전재판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두 동생 외에 나는 가족이 없다. 나라와 결혼했다”는 발언을 수시로 하며 대통령으로서의 청렴함과 애국심을 강조한 바 있다. 자신의 경쟁력으로 ‘싱글’인 점을 강조한 셈이다. 상당수 국민들 역시 싱글 여성인 점에서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친인척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을 것으로 신뢰와 지지를 보냈다.

헤어 롤 출근으로 인해 ‘국민 워킹맘’으로 등극한 이정미 재판관이 2011년 한 매체와 한 인터뷰가 재조명됐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아이들이 자면 이후에 일을 하고 아니면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했다"라며 "여성이 소수이다 보니 조금만 일에 소홀해도 눈에 띈다. 재판 때문에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항상 미안하다"라고 워킹맘으로서의 고충을 토로했다.

아쉽게도 국내 첫 1인가구 여성의 성공적인 대통령 완주는 좌초됐다. 문제는 싱글(혹은 기혼) 여성(혹은 남성)이라고 해서 청렴함과 성실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당사자의 철학과 가치체계, 양심과 관련된 사안인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 이 권한대행은 싱글여성, 워킹맘이라는 경계가 아니라 자신의 일 그리고 법과 국민을 바라보는 철학의 차이가 극명하게 다른 인물로 기록되지 않을까.
박 전 대통령은 4월 17일 구속기소 됐으며 형사소송법이 허용하는 1심의 구속 기간은 기소 시점부터 최장 6개월인 10월 17일 0시다. 9일이 구속 기간 만료 'D-100'이다. 

10월 16일까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가 판결을 내리지 못하면 박 전 대통령은 자동으로 석방된다. 10월 초 열흘에 달하는 연휴와 판결문 작성 기간 2∼3주를 고려하면 마지막 재판은 최소 9월 하순에는 열려야 한다. 

이에 재판부는 강행군을 이어가며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1심 재판이 9월 말까지 심리를 마치는 결심(結審)에 이르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을 '적시처리 사건'으로 분류해 5월 말부터 주 4회의 빡빡한 일정으로 심리 중이다. 하지만 22차례의 공판이 끝난 현재 전체 재판의 진척도는 아직 '중반'으로 평가하기에도 이른 상황이다. 

이는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인 박 전 대통령의 혐의가 뇌물 등 무려 18개로 방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변호인 측은 특검과 검찰의 공소사실과 각종 증거·참고인 진술을 그대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충분한 변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백 명의 증인을 부를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재판부가 "최악에는 증인신문에만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우려할 정도다.  

특히 최근 제기되는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이상 호소는 일정에 중대한 변수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재판 도중 어지럽다며 피고인석 책상에 엎드려 재판이 잠시 중단됐다. 이에 변호인이 "피고인이 쓰러지면 재판이 더 길어진다"며 "재판을 주 3회로 줄여달라"고 강하게 요청하는 상태다. 

재경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 측이 구속 만기까지 버티거나 몸 상태를 사유로 보석을 청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수 성향 변호사 단체를 중심으로 박 전 대통령의 인권을 보호하라며 보석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구속 상태의 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친박' 세력이 결집해 장외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거나 법원에 압박을 가할 우려도 제기된다.  

박 전 대통령이 정유라(21)씨 등 수사가 끝나지 않은 피의자나 다른 피고인 측과 관련한 증거를 인멸하거나 향후 재판 출석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법원은 최대한 심리에 박차를 가해 구속 만기 이전에 1심을 끝낼 계획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역시 박 전 대통령의 중도 석방을 막기 위한 조치에 나설 전망이다. 

우선 새로운 혐의를 찾아 추가 기소하면서 새 구속영장 발부를 재판부에 신청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새 영장이 발부되면 구속 기간은 최장 6개월 연장된다. 다만, 현 단계에서 구속이 필요할 만큼 혐의가 중대하다는 점을 소명해야 하며 박 전 대통령 측의 반발도 뚫어야 한다. 

현재까지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 중 구속 만기로 석방된 사례는 최순실(61)씨의 조카 장시호(39)씨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위증 등의 혐의로 추가 기소돼 새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kojis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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