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색명리(財色名利)란 무엇일까요? 재물 욕 · 색욕 · 명예욕 · 이욕 등 인간이 갖는 모든 욕망을 통 털어서 하는 말입니다. 재색명리는 불보살과 중생의 갈림길이 됩니다. 하근 기(下根機) 중생은 재색에 관한 욕심이 더 강하고, 상근 기(上根機)는 명리에 대한 욕심이 더 강하다고 하네요.

그 중에도 수행자에게는 명예욕 끊기가 더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명예는 진리의 궁극적인 경지, 또는 궁극적인 진리에 합일된 우리의 본래마음. 언어 문자나 언어 명상으로써는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는 그 자리, 입정 처(入定處)만 세우고 보면, 그런 명예욕 같은 것은 다 허망한 것을 알게 되지요.

수행인이 입정 처를 세우지 못할 때 즉, 정신적인 자력이 부족할 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강점을 내세우고 늘 칭송받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흉년에 약간의 전곡으로 이웃 빈민들을 구제한 후에 송덕(頌德)하여 주기를 바라자 동민들이 비(碑) 하나를 세워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여 스스로 많은 돈을 들여 다시 비를 세우자 동민들의 험담과 조소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곧 억지로 명예 구하는 사람들이 명예가 나타나기는커녕 명예를 구한다는 것이 도리어 명예를 손상하게 하는 본보기일 것입니다.

조선 현종임금 때, 호조판서 김좌명(金佐明) 댁에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관리하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최술(崔述)이란 젊은 아전(衙前)이 있었습니다. 최술은 원래 가난한 상놈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리하였지요. 범상치 않은 아들을 보고 비록 상놈의 자식이지만 천하게 기를 수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엄하게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글을 가르쳤습니다.

이 덕분에 일반 상놈의 자식과 달리 사리에 밝고 학문에 조예도 깊어졌습니다. 청년이 된 최술은 김 판서 댁에 머슴으로 들어갔고, 다른 하인들과 달리 천성이 부지런하고 매사에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다른 하인과 달리 똑똑하고 예의 바르고 어떤 일이라도 막힘없이 매끄럽게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런 최술을 본 김 판서는 최술에게 일부러 힘들고 까다로운 일을 시켜 봤지만 아주 능숙하게 일처리 솜씨를 발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최술에게 막일을 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 김 판서는 머슴에서 일약 아전 자리에 앉히고 집안 살림을 총 관리하는 벼슬을 내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술의 어머니가 김 판서를 찾아와 아들의 보직을 박탈해 달라며 눈물로 호소를 하는 일이 터졌습니다. 남들 같으면 뇌물을 바쳐서라도 앉히려고 하는 아전 벼슬자리입니다. 또한 상놈집안 출신으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아전 벼슬인데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벼슬을 도로 거두어 달라고 조르는 것입니다.

김 판서가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린가 싶어 그 이유를 묻자 최술의 어머니는 천천히 아뢰었습니다. “저희 모자는 쌀겨도 꿀맛같이 여기며 이치에 어긋남이 없이 살아왔습니다. 대감마님 덕분에 자식이 출세하니 여기저기서 딸을 주겠다고 하여 어느 부잣집 사위가 되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런데 장가 간지 열흘 쯤 되어 이웃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말을 들어보니 자식 놈이 처가에서 쌀밥에 고깃국을 먹어보고는 ‘이제 어머니가 끓여주는 뱅어국은 맛이 없어 못 먹겠다.’고 투정을 부렸다는 것입니다. 벼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이 벌써부터 마음이 교만하고 사치하니 더 두었다간 큰 죄를 저지르고 말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중죄인이 될 것이 번한데 어찌 어미로서 그냥 두고 볼 수 있겠습니까? 그냥 다른 허드레 일이나 시키면서 쌀 몇 말만 내려주시면 더 바랄게 없으니 부디 자식의 직책을 박탈하시어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해주십시오.” 김 판서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이렇게 훌륭한 어머니가 있으니 그자식이 비뚤어질 리가 있나? 내 어찌 최술을 나무라겠는가? 알았네. 내 알아서 처리할 테니 돌아가게”

김 판서는 최술의 어머니가 자식이 조금이라도 잘못될까 온갖 정성을 쏟고 올바른 길을 가르치는 어머니의 인품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최술역시 어머니 뜻을 깨닫고 크게 뉘우쳤으며 그 후로 더욱 겸손하게 몸을 낮추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어머니의 진솔한 바람이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도 최술의 어머니처럼 삶의 원칙과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헛된 재색명리만 좇으면 결국엔 가패망신(家敗亡身)은 불을 보듯 번한 것입니다.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월 3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키워드
#최술 #김 판서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