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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재를 그린 그림 ...관람객은 울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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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재를 그린 그림 ...관람객은 울고 간다
조영순 작가 박사청구전
12살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짐
부성결핍 ‘기억하는 손’으로 채워
  • 편완식 기자
  • 승인 2020.03.13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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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 같은 의지처, 그것은 아버지였다. 10살된 딸아이에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은 ‘가장 큰 존재’의 부재였다. 게다가 12살짜리 오빠,4살짜리 남동생과 건강치 못한 어머니는 온전히 어린 딸아이의 삶의 무게가 됐다. 막막했지만 강해야 했고 ‘철든 아이’는 종종 마을 앞 금강으로 달려가 하염없이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위안을 삼았다. 거센 물결을 온전히 받아주는 강가 큰바위는 거친 세파를 막아주는 아버지 같았다. 부성(父性)의 목마름을 딸아이는 그렇게 달래야만 했다. 작가로 성장한 딸아이는 이제 그 부성의 그리움을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17일까지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박사청구전을 갖는 조영순 작가의 이야기다.

세월이 흐를수록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희미해져가지만 그럴수록 부성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강렬해 지고 있다. ‘정신영양학’적으로 보면 부성 결핍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그것을 채워나가고 있는 셈이다.

“나의 작업에서 바위는 외로운 시간을 견디어 내는 절친한 벗이자 의지의 대상이지요. 아버지로 상징되는 총체적인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유년기 아버지의 부재로 촉발된 변화된 환경과 그로 인한 냉혹한 현실은 작가에게 온전히 삶의 외로움으로 전해졌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시간들은 뒷산을 오르거나 강가를 거닐며 바위를 쉼터 삼아 보내는 것으로 채워졌다. 변함없이 내어주는 친근한 쉼터로서의 바위는 심리적 안정도 되찾게 해준 친숙한 환경이 되어갔다. 시각적,촉각적 친숙함은 관찰로 이어졌고 어느순간 본인도 모르게 손으로 그려나갔다. 드로잉의 대상이 되어갔던 것이다.

표면은 거칠고도 부드러웠으며 오랜 세월의 흔적들은 다채로운 색감으로 채워져 갔다.어쩔 수 없이 형상들은 자꾸만 흐릿해져 갔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마치 아버지와의 추억들이 희미해져가는 풍경이다.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손은 점점 사라져가는 아버지와의 기억,부성을 부여잡는 손이 된 셈이었어요. 그렇게 유년시절 나의 손은 아버지를 다시 기억해 내는 손이었습니다.”

이제 ‘그림이 된 아버지’는 작가에게 삶의 에너지 뿐 아니라 창착의 원천이 되고 있다. 원색계열의 바위는 환생한 아버지처럼 에너지가 넘친다. 색면 추상이다. 온갖 감정들이 출렁이느듯하다. 화면 중간 중간에 손들이 보인다. 부성을 부여잡고 세파를 헤쳐나가겠다는 작가의 다짐처럼 보인다. 뽕나무 열매 오디를 따먹다 ‘물든 손’은  유년기 아버지 손을 잡았던 추억의 손 같고, 밝은 색감의 손은 미래의 희망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손을 말해주는 듯 하다. 부성의 부재를 시각적으로 채워나가는 모습이 이채롭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아버지 품에서 느꼈던 따뜻함, 돌을 만지는 손이 느꼈던 촉각적 만족감 같은 감성들이다. 작가 나름의 결핍된 부성에 대한 채움이다. 한 관람객은 그림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기도 했다. 힐링이 되는 표인트다. 원근법을 탈피한 단순한 형상들, 원색물감을 캔버스 표면에 떨어뜨리고 문지르는 행위, 이질적인 재료들의 충돌이 격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연들이 만든 회폭이지요. 물감마저도 눈물로 범벅이 됐지요. 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이 내 그림 앞에서 마음껏 울게 해주고 싶어요.”

진정 그것이 예술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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