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활과 낭패 그리고 유예

중국 고전 《산해경(山海經)》은 BC 6년경에 만들어진 책입니다. 각지의 산악에 사는 ‘인면수신(人面獸身)’의 신들과 제사법 및 산물을 기록한 고대의 지리서이지요. 이 책에 나오는 동물에 교활(狡猾)과 낭패(狼狽) 그리고 유예(猶豫)가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교(狡)’라는 짐승의 그림이 있는데, 모습은 개(犬)고, 온몸에는 표범의 얼룩무늬, 머리에는 소의 뿔이 나있습니다. 말하자면 개도 아니고 소도 아니고 또한 표범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체를 모를 짐승이 이른바 ‘교’입니다.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지요.

그리고 ‘활(猾)’은 ‘교’의 친구입니다. 사람처럼 생겼지만 온몸에 돼지털이 나 있는데 뼈가 없습니다. 이 뼈 없는 동물, ‘활’이 얼마나 간사한지 호랑이를 만날 때 본색을 드러냅니다. 호랑이가 ‘활’을 발견하면 백발백중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마음에 ‘옳다구나!’ 하고 달려듭니다.

하지만 ‘활’은 조금도 겁을 먹지 않고 자기 몸을 공처럼 동그랗게 말아 제 발로 호랑이 입속으로 굴러 들어갑니다. 뼈가 없으니 씹을 필요도 없이 호랑이가 활을 꿀꺽 넘깁니다. 그렇게 호랑이 뱃속에 들어간 활은 야금야금 안에서부터 호랑이를 파먹어 들어갑니다. 호랑이가 ‘활’을 먹은 것 같지만 사실은 ‘활’이 호랑이를 먹은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호랑이가 죽으면 유유히 안에서 걸어 나와 미소를 짓는데 여기에서 나온 말이 ‘교활한 미소’입니다. 이 두 짐승을 합쳐서 우리는 ‘교활’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교’처럼 정체도 불분명 하고, ‘활’처럼 뼈대도 없는 것이 속임수로 대중을 현혹하여 성행할 때, 세상은 호랑이처럼 이용만 당하다가 죽어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일에서 ‘낭패’를 보았다고 하면,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낭패 역시 ‘낭(狼)’이라는 동물과 ‘패(狽)’라는 동물을 합친 단어입니다. 이리 낭(狼), 이리 패(狽)를 쓰니 둘의 생김새는 개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낭’은 뒷다리 두 개가 아예 없거나 아주 짧고, 반대로 ‘패’는 앞다리 두 개가 아예 없거나 아주 짧습니다.

그래서 ‘낭과 패’는 늘 함께해야 어디라도 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낭은 꾀는 부족하지만 용맹하고, 패는 꾀는 많아도 겁쟁이니 일을 도모할 때 함께 해야 성사시킬 수 있습니다. 문제는 둘이 다투거나 호흡이 맞지 않을 때입니다. 그래서 서로 떨어지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지요. 그야말로 ‘낭패’입니다.

유예도 ‘유(猶)’와 ‘예(豫)’를 합친 단어입니다. ‘유(猶)’는 원숭이처럼 생겼고, ‘예(豫)’는 코끼리처럼 생겼습니다. 둘 다 어찌나 의심도 많고 겁도 많은지 ‘유’는 작은 소리만 나도 깜짝 놀라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고, 소리가 나지 않아도 차마 내려오지 못하고 매달려 있거나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합니다.

‘예’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지요. 이런 ‘유와 예’가 함께 하는 모습을 본다면 성질 급한 사람은 그야말로 속 터질 노릇입니다. 지난 4,15 총선을 거치면서, 그리고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세 가지 ‘교활’과 ‘낭패’ 그리고 ‘유예’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인데 이들은 교활하게도 국민을 속입니다. 코로나 19 사태를 당하여 국민재난기금을 전 국민에게 빠르게 지급한다고 공약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선거가 끝나고서는 언제 그랬느냐 시피 차일피일 합니다. 그야말로 ‘유예’와 같이 국민은 속이 터질 노릇입니다.

또한 여와 야가 각각 합심하여 국민의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주어야 하는데 손발이 안 맞아 여간 ‘낭패’가 아닙니다. 국민들이 대체로 숨 넘어 갈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난 4,15 총선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요즘 이러한 동물들이 이 사회에 넘쳐나고 있는 것 같아 여간 씁쓸한 것이 아닙니다.

국회의원이 1년에 받는 돈은 1억 5000만원 상당이라고 합니다. 사무실운영비·차량유지비 등, 의정활동에 필요한 돈을 간접 지원하는 ‘지원 경비’를 뺀 수당이지요. 4월 17일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회의원 한 사람이 1년에 받는 세비는 총 1억5187만9780원으로 집계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21대 국회의원이 되면 한 달에 1265만6640원 상당의 '월급'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이젠 선거도 끝났습니다. 그러니 국민의 절박함이 눈에 보일 리가 있을까요? 국민은 대부분 숨 너머 갈 지경입니다. 4년 후, 또다시 국민들에게 표를 구걸(求乞)하려면 지금 이들이 ‘유예’할 때가 아닙니다.

‘교’와 같은 사람, ‘활’과 같은 사람, 그리고 ‘낭패’같고 ‘유예’ 같은 정치인이 누구인지, 이제는 우리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4월 2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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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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