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19 덕분에 팔십 너머 살면서 요즘처럼 한가한 적이 없습니다. 오가는 사람도 없고, 어디 갈 일도 없습니다. 심지어 원불교 역사상 처음 3개월여를 법회(法會)도 못 보았습니다. 3, 4월에는 동창모임도 없고, 덕화아카데미도 연기 했습니다. 따라서 마스크 사려고 약국에 갈 일도 없어 그야말로 망중한(忙中閑)의 나날입니다.

그 틈에 평생 안 해본 일을 하였습니다. 바로 수염을 길러 보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는 배코를 쳤고, 백미(白眉)는 하늘을 향해 펄럭입니다. 한 3개월 정도 길렀으니 제법 멋져 보입니다. 덕인회 카톡방에 수염 기른 모습을 올렸더니 찬반이 팽팽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근 3개월 만에 원불교 여의도교당에 수염을 기른 채 법회를 보러 갔습니다. 교무님과 교도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대체로 여자 분들은 깎으라고 난리고 남자 분들은 좋다고 찬성을 하였지요.

저는 늙는 것도 참 행복 하다고 느낍니다. 그야말로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늙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으로 생각하면 이 늙음도 충분히 누릴만한 것 아니겠는지요? 며칠 전에는 또 한 명의 친구가 열반(涅槃)에 들었습니다. 320여명의 배재학당동창생 중, 이젠 아마 거의 반 정도는 떠난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곧 따라 갈 것 같이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인명은 재천(人命在天)이니 진리가 부르실 때 까지 한껏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고 가면 그 또한 멋진 인생이 아닐 런지요? 이렇게 하늘이 준 사명을 다 하고 행복하게 살아 온 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요,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바꿔 보는 것입니다. 오늘이야 말로 앞으로의 살날 중에 가장 젊은 날이고, 가장 소중한 날이며, 그야말로 농익어가는 삶이라 기쁘게 반기고, 마음껏 사랑하며, 해 보고 싶은 것 다 하다가 떠나가겠다는 생각으로 한 바탕 신바람 나게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비록 다리가 부실해 걷지를 못한다 하더라도 저는 즐겁게 살고, 열심히 일하며, 매사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뛰다가 진리께서 내리신 저의 소명(召命)을 다하고 어느 날, 홀연히 떠나간다면 그것이 해탈이요 진정한 열반이 아닐 런지요!

젊어서 천신만고(千辛萬苦)도 겪어 보았고, 중년에 천만다행하게도 《일원대도(一圓大道)》 만나 우주의 진리가 무엇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갈 곳이 어디인지를 어쩌면 다 알 것 같은 삶을 이어 왔습니다. 그리고 <대소유무(大小有無)>의 진리와 인간의 <시비이해(是非利害)>의 원리를 확연히 깨치지는 못했으나 어림잡을 수는 있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정신수양 · 사리연구 · 작업취사>의 삼학을 닦아 어느 정도 삼대력(三大力)을 갖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맑고 발고 훈훈하게 바라보면서 ‘심심창해수(心深滄海水)요 구중곤륜산(口重崑崙山)’ 즉, 마음 씀씀이는 창해 수처럼 깊고, 입은 곤륜산처럼 무겁게 지킬 수 있는 경지에는 조금은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생사 늙는 것도 자연스럽고, 사라지는 것도 또한 자연의 이치요, 피고 지는 것도 자연의 순리입니다. 순리대로 살면 마음도 행복하고, 세상만사가 순조롭습니다. 어린아이의 미소가 아름다운 건 그 마음에 동심(童心)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해맑은 아침햇살이 반가운건 우리 안에 평화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듣기 좋은 건 우리 안에 여유(餘裕)가 있기 때문이고, 하루하루가 늘 감사한건 우리 안에 겸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대로, 우리가 느끼는 대로 변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우리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누구를 탓하고 누구에게 의지할까요?

인연은 소중한 것입니다. 악연도 인연이고 선연도 인연입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우리는 선연을 맺어야 합니다. 오늘 마주친 인연들이 소중한 건 우리 안에

존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삶에 늘 향기가 나는 것은 우리 안에 또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지요.

청춘이란 것은 꼭 나이가 젊은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도 청춘처럼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좋은 포도주처럼 세월이 가면서 익어가는 것이지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않는 것이며, 성공했다고 지나친 기쁨에 도취되지 않는 것입니다.

소심하고 우울하게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생각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생기는 법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천상이나 지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는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사랑을 하는 것이야 말로 행복인 것입니다.

청춘이란 것은 꼭 나이가 젊은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사랑이 불타면 그 사람이 바로 청춘일 것입니다. 이제 그 청춘을 마음껏 즐기고 5월3일 법회 때는 다시 수염을 깎고 법회를 보러 갈 것이네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4월 2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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