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노망" "대구할매"…이용수 할머니를 겨눈 2차가해
윤미향의 해명…이젠 국민의 판단과 검찰수사가 관건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두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정의연 전 이사장인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한 후 온라인에서는 이 할머니를 겨눈 온갖 혐오표현과 인신공격이 확산했다.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인이 29일 오후 2시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께 심려끼쳐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지난 7일 이 할머니가 대구에서 첫 기자회견을 연 직후부터 포털사이트 댓글에는 할머니의 발언 내용과 무관한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다.

"(이 할머니가) 치매다", "노망이 났다"는 식의 노인 혐오부터 "대구 할매", "참 대구스럽다" 등 지역 비하발언까지 잇따랐다.

이런 조롱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 정치인과 유명인의 발언도 이어졌다.

윤미향 의원이 당선될 때 소속 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 대표를 지낸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지난 8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할머니가 주변에 계신 분에 의해 조금 기억이 왜곡된 것 같다"며 이 할머니의 발언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주장을 폈다.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던 변영주 감독은 할머니의 첫 회견 후 페이스북에 "내가 오래전부터 말했지 않나. 그 할머니는 원래 그러신 분"이라며 "당신들의 친할머니들도 맨날 이랬다저랬다, 섭섭하다 화났다 하시잖아요"라고 썼다가 논란이 커지자 글을 삭제했다.

이 할머니가 지난 25일 2차 기자회견에서 윤미향 의원을 재차 강하게 비판한 후에는 할머니를 둘러싼 온라인상의 논쟁이 음모론으로까지 번졌다.

친여 인사를 지지하는 페이스북 모임 등에서는 '보수단체와 야당 측이 할머니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2012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출마하려던 이 할머니를 윤미향 의원이 만류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고 나서는 할머니가 최근 기자회견에 나선 동기를 '질투심'으로 모는 시각이 등장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는 "자기는 국회의원도 못 하고 죽게 생겼는데, 새파랗게 어린 게 국회의원 한다니까 못 먹는 감에 독이라도 찔러넣고 싶었던 게지", "구순이 넘은 나이에 노욕이 발동했다" 등 이 할머니가 윤 의원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혼란을 틈타 이용수 할머니를 '가짜 위안부'라고 비난하는 등 역사 왜곡성 주장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 블로거는 포털사이트에 "한국에서 피해자 흉내를 내던 '자칭' 위안부들은 모두 사기꾼"이라며 "이용수 할머니는 아예 위안부와 상관없는 사람이고, 반일감정을 부추기며 선동해 돈을 벌던 인물이었다"는 글을 올렸다. 해당 게시물은 다른 사이트로 여러 차례 공유됐다.

이처럼 온·오프라인에서 확산하는 혐오성 발언과 음모론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위안부 문제 연구서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가 이토록 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어렵게 목소리를 낸 할머니가 배제되고 억압받는 일이 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썼다.

미래통합당 하태경 의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공격은 명백한 2차 가해이자 인격살인이고 반인륜 범죄"라며 이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심리학과 교수는 31일 "맹목적 비난과 근거 없는 음모론은 오히려 이 할머니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흐리고, 소모적인 편 가르기만을 낳는다"며 "이런 식의 2차 가해는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미향의 해명…이젠 국민의 판단과 검찰수사가 관건이다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 과정의 후원금 유용 의혹 등과 관련해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윤 당선인은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그동안 제기된 갖가지 의혹에 대해 해명과 입장을 내놨다.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사퇴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잠행에 들어간 지 열하루 만이다. 자신과 30년간 함께 활동해 온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차 기자회견까지 했고, 이런저런 추가 의혹 제기가 잇따르면서 논란이 커지는데도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21대 국회 임기 개시일 전날에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적어도 공개석상에 나와 소명은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당 안팎의 빗발치는 요구에 응한 모양새가 됐다. 윤 당선인은 진작에 입장을 밝히지 못한 점은 사과하면서도 각종 의혹은 조목조목 반박하고, 부인했다. 현재로서는 의원직을 사퇴할 의사가 없다는 점 또한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야권과 여러 시민단체에서 윤 당선인의 사퇴 요구를 굽히지 않는 상황이어서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듯하다.'

윤 당선인은 가장 큰 의혹이라 할 수 있는 기부·후원금 유용 의혹을 해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고 모금액 등 세부 내역도 공개했다. 전체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모금이 1992년부터 3차례 있었는데 모두 피해자들에게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개인 명의 계좌로 후원금을 받았다는 논란과 관련해서는 일부 금액이 모금 목적과 달리 사용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매입금액을 부풀려 '업 계약서'를 쓰는 방법으로 차액을 챙긴 게 아니냐는 안성쉼터 의혹이나 정대협 자금을 자녀 유학비로 썼다는 주장 또한 부인했다. 말 바꾸기 논란이 일었던 수원 아파트 구입자금 출처를 두고는 본인 예금과 남편 돈, 가족들로부터 빌린 돈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 착오로 첫 해명에 혼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일부 의혹 제기에는 '악의적 왜곡'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정면 돌파 의지도 내비쳤다.'

기자회견 내용만으로는 해명의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수치 등 일부 새로운 사실이 공개되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어디까지나 윤 당선인의 주장일 뿐이어서 객관적 자료 등을 통해 추가 검증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더구나 일부 사안의 경우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윤 당선인이 의혹을 모두 부인하면서 의원직 유지 의사를 밝힌 터라 불법 행위 여부는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지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수사나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해명에 허위 사실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윤 당선인의 거취는 첨예한 쟁점으로 재부상할 수밖에 없다. 윤 당선인이 이런 점을 충분히 인식한 듯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질 것이며 의원직을 핑계로 회피하지 않겠다"고 한 건 다행이다.'

당장 30일부터 국회의원 신분이 되는 윤 당선인이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만큼 이제 차분히 사실관계를 검증하는 일만 남았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나 일방적인 감싸기 모두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할 뿐이다. 음모론과 이념 공세 등 윤 당선인이나 이용수 할머니를 향한 인신공격은 가시밭길로 점철된 비극적 삶을 살아온 위안부 피해자들의 가슴에 또다시 못을 박고 인권운동의 성과를 훼손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윤 당선인은 약속한 대로 부족한 부분에 대해선 한 점 의혹이 없도록 끝까지 소명하고 검찰 수사에 당당히 응하길 바란다. 검찰은 엄정히 수사하되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지 말아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민주당도 내부에서 진상조사 요구가 제기된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최종 판단의 주체는 국민이라는 공감대 속에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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