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어제 공중파를 포함 모든 언론매체들이 헤드라인에 <박지원, 천안함 사건은 北소행>을 걸었습니다.

천안함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으로 참여하여 이명박 정권하 군 당국의 사고원인 조작과 은폐를 세상에 알린 후 십 년 넘게 재판을 받아온 저로서는 그 기사를 보는 마음이 참으로 안타깝고 착잡합니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당시 박지원 내정자께서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정책위의장과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을 맡고 계셨습니다.

제가 “천안함 사고원인이 조작되고 있다”고 발표한 후 박 내정자께서는 수구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극구 손사레를 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에 대해 저는 섭섭한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내정자께서는 선박 전문가도 아니고 사건전모를 알기엔 시간이 짧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박 내정자께서 민주당을 떠나신 후에도 이번 4월 총선 직전까지 국민의당과 민생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보와 판단이 그 정도에 그치는 것이 저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번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야당측에서 던져놓은 서면질의서에 <천안함> 관련 항목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수구세력들이 천안함 사건을 종북의 잣대로 삼아 나름 재미를 톡톡히 봤다고 자평했을 터라 이번이라고 달라질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천안함 이슈>에 대해 제가 우려했던 상황은 통일부장관 인사검증이었습니다. 통일부장관 내정자로부터 <천안함 北소행> 멘트가 나오는 순간 사실상 통일부장관 업무수행의 ‘잠재적 자격상실’이 되는 것인데 그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태영호發 사상검증 헛발질’이 태풍의 눈이 되고 전국민적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면서 천안함 이슈는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 전대협 의장출신으로 민주당 내 가장 진보적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인영 내정자께 천안함 카드를 잘못 내밀었다가 반대의 답변이 나왔을 경우 후폭풍을 우려하여 빼버렸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악하기 그지없는 집단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보수매체들이 사전에 던져놓은 가이드라인과 통합당의 대응을 보면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보수매체들의 가이드라인

뉴데일리등 보수매체들은 일찌감치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에게 ‘천안함, 연평도’를 거론하며 ‘이런 분이 국정원장 후보자’라고 폄훼하였고 이인영 통일부장관 내정자에게는 2011년 당시 “천안함-연평도, 미제사건으로 두고 6자회담 하는 게 선(善)” 발언을 들어 인사청문회 검증을 압박하면서 두 후보 모두를 거론하지만 통합당은 선별적으로 대응합니다.

통합당은 이인영 내정자로부터 2011년 당시의 발언에 대해 취소·사과 혹은 ‘천안함 北소행’발언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았을 것 같습니다. 바보가 아니므로. 오히려 이인영 내정자가 ‘더 센’ 발언을 할 경우 180석 巨與 상황에서 마땅히 대응할 방법도 없다는 현실론도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반면 박지원 내정자는 소위 ‘정치9단’이라는 닉네임이 말해주듯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성향과 여야 구분없이 폭넓은 인맥 그리고 국정원이라는 제한된 카테고리가 작용하므로 충분히 ‘천안함 北소행’ 발언을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하태경의 선별적 협박

통합당 하태경 의원은 “박 내정자는 청문회 오기 전에 천안함이 북한 소행이라고 명시적으로 한 번도 말하지 못한 것이 대해 반성문부터 쓰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하였습니다.

이번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하태경 의원의 으름장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박 내정자께서 사전질의 답변서로 그들이 원하는 먹잇감을 깔끔하게 던져 주었습니다만, 그가 통합당이 쳐 놓은 함정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그물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진 것인지 여부는 앞으로 국정원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든, 2020년 현재까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발표가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현실적 한계가 그의 변명거리일 수 있겠지만, 10년 세월이 흐르도록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정보위원회 활동도 했으면서) 천안함 사건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운 대목입니다.

‘정치9단’ 그리고 ‘대북통’이라는 위상과 평가

‘박지원’ 하면 언제나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바로 ‘정치9단’과 ‘대북통’입니다. 팟캐스트나 종편 패널로 나와서 스스로 ‘정치9단’이라 즐겨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박 내정자가 대북관련 논의 테이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역시 저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호적 평가는 거기까지입니다.

앞으로 국정원장이 된 후, ‘박지원 국정원장’이 해야 할 일이, 해 내어야만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 스스로 가장 커다란 압박감으로 느끼기를 기대합니다. 부디 그 압박감의 고통으로 인해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는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국가의 정보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 나라의 국정원이, 그 이전의 안기부가, 그 이전의 중앙정보부가 얼마나 우리 국민에게 잔인하고 악랄하고 패악스러운 짓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비밀리에 저질렀는지 그 속살을 들여다보기를 회피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는 ‘사람(人間)’의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존스홉킨스 국제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참여정부에서 NSC 상황실장에 발탁되고 국정원 대북전략실장, 국정원 3차장을 거쳐 국정원장에 올랐던 서훈 前 국정원장에 대해 애초에 기대한 것이 없으므로 그가 빈손으로 국정원을 떠났을 때 그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박지원 前 의원이 국정원장에 내정되었을 때 ‘참 잘한 인사’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어제 ‘천안함 北소행’발언으로 찬물을 끼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국정원장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접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 - 그가 ‘박지원’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이름값 하시기를 바랍니다. ‘정치9단 박지원’, ‘대북통 박지원’에 더해 ‘국정원의 악습과 폐습을 타파하고 개혁을 일군 박지원’ 그리고 ‘분단 70년간 왜곡과 은폐, 거짓과 조작으로 가득한 남북의 진실을 온 세상에 밝힌 초대 국정원장 박지원’으로 역사에 길이 남기를 바랍니다.

좋아하지 않지만 조선닷컴 기사를 캡처한 이유는 뒤에 걸린 사진 때문입니다.

박 내정자 뒤에는 언제나 김대중 대통령님, 노무현 대통령님 그리고 이희호 여사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박 내정자께서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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