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no words to say. I'd just like to listen."

배우로 당당히 문밖으로 나오신 여성분들_권향자, 김숙자, 김경희(무대 위 배역 이름은 본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Aejin Kwoun
관객과의 대화 사진 | 배우로 당당히 문밖으로 나오신 여성분들_권향자, 김숙자, 김경희(무대 위 배역 이름은 본인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Aejin Kwoun

[서울=뉴스프리존] 권애진 기자=미국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들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여생의 고민을 들려주는 무대, 연극 <문밖에서>가 지난 25일부터 이번 달 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그 삶을 실제 살아냈던 분들이 무대 위에 직접 올라 배우로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억압의 무게를 관객들과 함께 조곤조곤하거나 쾌활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연사진 |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덤덤하게. 할머니들과의 연습에서 배우들은 무겁거나 진지하지 않ㄴ게 편않나 모습이 보이게 연습하였다. /ⓒ이강물(제공=극단 해인)
공연사진_덕배(조시현), 고운심(김지원), 경희(김경희). 맹은실(김시영) |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덤덤하게. 할머니들과의 연습에서 배우들은 무겁거나 진지하지 않게 편안한 모습이 보이게 연습하였다. /ⓒ이강물(제공=극단 해인)

경기도 평택시 안정리 기지촌에서 과거 미군 '위안부'로 일했던 노인 여성 하나가 죽은 지 며칠 만에 발견된다. 그녀의 동료들을 만난 미군 여성 조이스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따라 1970년대 안정리 클럽에서 일했던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

공연사진 | 착취와 억압의 공간이자 일을 하는 공간였던 '클럽 안과 배밭'은 어쩌면 본인에겐 어느 순간에는 자유로웠던 공간이었을지 모른다. /ⓒ이강물(제공=극단 해인)
공연사진 | 착취와 억압의 공간이자 일을 하는 공간였던 '클럽 안과 배밭'은 어쩌면 본인에겐 어느 순간에는 자유로웠던 공간이었을지 모른다. /ⓒ이강물(제공=극단 해인)

한편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배밭에 나가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인들은 고된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을 보람 있게 느끼면서도,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여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불안해한다. 미군 여성 조이스는 퇴근 후 여성 노인 집을 찾아가 하룻밤을 보낸다.

"나는 의미 있게 살고 싶어."(극 중 미군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의 대사)

무대사진 | 무대를 디자인한 조경훈 디자이너는 "살짝 열린 낡은 문들과 그 앞에 놓인 세월의 흔적들이 보이는 의자들, 그리고 반대편에 큰 철망을 통해 여성 노인들의 과거와 현재에 불합리한 억압과 자유, 방치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Aejin Kwoun
무대사진 | 무대를 디자인한 조경훈 디자이너는 "살짝 열린 낡은 문들과 그 앞에 놓인 세월의 흔적들이 보이는 의자들, 그리고 반대편에 큰 철망을 통해 여성 노인들의 과거와 현재에 불합리한 억압과 자유, 방치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Aejin Kwoun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K-6 캠프험프리즈 근방 미군 기지촌에는 과거 '위안부'로 살았고, 현재는 독거노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 노인들의 삶이 있다. 이 작품은 1976년 미군 전용 클럽, 1992년 기지촌 '위안부' 자치회 '국화회' 창립총회 등 과거에서부터 현재 일터가 되는 배밭 장면 등까지 여성 노인들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여생의 과제를 일과 가치라는 측면에 주목하였다.

공연사진 | 지자체에서 '위안부' 자치회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은 '위안부'라는 호칭보다 예쁜 꽃 이름을 원하였다. '국화'라는 예쁜 꽃 이름을... /ⓒ이강물(제공=극단 해인)
공연사진 | 지자체에서 '위안부' 자치회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은 '위안부'라는 호칭보다 예쁜 꽃 이름을 원하였다. '국화'라는 예쁜 꽃 이름을... /ⓒ이강물(제공=극단 해인)

미국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들의 트라우마 치유와 사회적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된 <일곱집매> 이후 극단 해인은 <그대 있는 곳까지(2016,2017)>, <문밖에서(2018)> 등 연극 작업을 거치며 그녀들의 삶을 표현하는 작업을 꾸준히 지속해 왔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일곱집매>에 출연했던 연극배우와 미군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 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상호 간의 재현과 표현으로 구성하여 억압 구조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나타난 대사의 정교한 재현이 씨줄로, 경험의 주체로 무대에서 발화되는 구술 증언들이 날줄이 되어 관객들에게 뜨거운 공감을 안겨주었다.

관객과의 대화 사진 | 꾸준하게 그녀들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이양구 연출은 "텍스트 초안과 최종본을 내가 정리하기는 하였으나 나 혼자의 작업이라기보다는 공동창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작업이었다."라고 전한다. /ⓒAejin Kwoun
관객과의 대화 사진 | 꾸준하게 그녀들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이양구 연출은 "텍스트 초안과 최종본을 내가 정리하기는 하였으나 나 혼자의 작업이라기보다는 공동창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작업이었다."라고 전한다. /ⓒAejin Kwoun

1961년 11월 9일 대한민국 정부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성매매를 허용하는 특수 지구를 여럿 설치했고, 이 중 상당수는 미군 기지 인근이었다. 1960년대엔 기지촌 성매매 수입이 한국 국민총생산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미군 위안부는 한국 경제에 큰 기여를 하였다. 1970년대에는 청와대 공무원들이 정기적으로 기지촌으로 가서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모아놓고 국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격려를 하곤 했다. 1973년에는 민관식 당시 문교부 장관이 조국 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소녀들의 충정은 진실로 칭찬할만하다고 말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1971년 제3공화국은 정부 각 부처 차관이 참석하는 기지촌 정화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지촌 활성화 정책을 폈다. 이는 당시 안보 전략 수정으로 추진되던 주한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함이었다.(Wikipedia '미군 위안부' 자료 발췌)

당시 정부 뿐 아니라 시, 군 공무원들이 미군 위안부를 칭하는 말은 '애국자', '민간 외교관',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 '달러벌이 역군'이라 포장을 하며, 한국정부가 깊숙하게 직접 인적사항을 공유하며 교육까지 직접 해왔었다. 하지만 민간에서 이들을 보는 시선은 차갑기만 하였다. 하지만 유령처럼 없는 존재이거나 사회적으로 업신여기는 존재로 여겨지던 여성들이 '문밖으로' 나와서, 연극배우들과 달리 마이크를 차고 무대 위에서 즉흥적인 듯한 대화를 주고받는 듯 자신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이야기하는 노인 배우들의 몸짓과 말투는 처음에는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치열한 억압 속에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문밖으로 나온 그녀들의 이야기는 단단한 말이 되어 가슴 속에 박히기 시작한다.

공연사진 /ⓒ이강물(제공=극단 해인)
공연사진_극 중 조이스는 그녀들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흔적을 돌아본다. 어쩌면 그들의 삶을 직시하고 들어주는 것부터 작은 시작이 될는지도 모른다. /ⓒ이강물(제공=극단 해인)

각종 인권침해로 점철된 미군 '위안부'는 개별적이거나 역사적으로 특수한 시기에 나타난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성 문제로 보아야만 한다. 그리고 미군 성매매 제도는 직간접 수혜자였던 '우리들'의 '일상의 승인(Enloe, 2000:67)'이 없었다면 유지되기 어려웠기에 우리 모두가 일상의 공모자들이라 할 수 있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과거를 기억하고 전승할 자격조차 달라지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우리 스스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 스스로 부인하고자 하는 경험과 역사를 먼저 직시해야 할 것이다.(국가폭력과 여성인권 '미군 위안부의 숨겨진 진실'-'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 다섯번째 변론 발췌)

관객과의 대화 사진_'배리어프리'로 진행된 이번 작품은 양쪽 모니터에서 보여지는 실시간 자막 뿐 아니라,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 뒷편에서 바로 수어로 통역을 하여 자막이나 수어를 보기 위해 무대 위 연기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Aejin Kwoun
관객과의 대화 사진_'배리어프리'로 진행된 이번 작품은 양쪽 모니터에서 보여지는 실시간 자막 뿐 아니라,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 뒷편에서 바로 수어로 통역을 하여 자막이나 수어를 보기 위해 무대 위 연기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Aejin Kwoun

"생각 난다 그 오솔길/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 끼고/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이제는 가 버린 아름다운 추억/생각 난다 그 바닷가/그대와 둘이서 쌓던 모래성/파도가 밀리던 그 바닷가도/이제는 가 버린 아름다운 추억/그대가 만들어 준 이 꽃반지/외로운 밤이면 품에 안고서/그대를 그리네 옛일이 생각나/그대는 머나먼 밤하늘에 저 별 저별"

공연 끄트머리에서 '꽃반지 끼고'를 서툰 한국말로 나지막히 부르며 보고싶다 말하던 한 남성의 레코딩 재생은 가슴을 묵직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까지 몇 십년 전 테이프에 녹음된 음성을 아껴가며 쉬이 듣지 않고 겹겹히 포장하며 챙겨두었을 만큼, 지금도 눈시울을 적시며 이야기를 할 만큼 순수하고 애정어린 추억은 그녀들을 '피해자'나 '챙겨줘야 할 이들'보다는 그저 함께 이야기나누고픈 '조금은 외로운 사람들'로 보고 싶게 만든다. '문밖으로' 당당하게 나온 그녀들의 행복을 계속해서 응원하고 소망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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