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폭력의 가해자를 강력 처벌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는 상대적으로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여러 대책이 마련됐으나, 피해자 보호에 있어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건 극히 드물다. 2004년 제정된 ‘학교폭력예방법’엔 피해자 지원제도가 명시돼있지않았고, 2012년에야 학교폭력 조사 및 상담 전문기관을 설치하도록 하는 조항이 마련됐지만, 이 역시 의무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과연 현행법은 어떤 방식으로 학교폭력의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을까.

강제성 없고 피해자 지원 어려운 청소년범죄 처리방안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즉시 가해자가 피해자와 접촉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학교장의 ‘권고’ 조치 외에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공간분리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사건이 교내에 설치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선에서 마무리되는데, 학폭위의 근거가 되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는 가해자를 강제로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관악경찰서 스쿨폴리스’ 박미리 경장은 “가해자의 보복 폭행이 우려되는 경우에도 가해자 격리에 장시간이 소요된다면 피해자 보호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피해자에 대한 심리상담 지원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공간분리 등의 긴급조치와 더불어 피해자를 치유기관에 연결해 적절한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하지만, 피해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은 충분하지 않다. 2008년 학교마다 ‘학생위기상담종합지원서비스센터(Wee센터)’가 설치됐지만 여전히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인 심리상담이 이뤄진다고 보기엔 어렵다. 교육부의 조사에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전국 국공립초중고 1만 1,518개교에 전문상담교사 인력은 2,297명으로 턱없이 부족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에 교육부는 계약직 전문상담사를 채용하는 대안을 내놓았지만, 근속 기간이 짧은 계약직 고용이 오히려 상담치료의 지속성과 연속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피해자의 심리치료 비용 역시 제대로 지원되지 않고 있다. 학폭위에서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조치를 취한 경우 ‘학교안전공제회(학교교육활동 중 발생한 안전사고에 의한 손해를 배상해주는 기구)’가 심리치료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그 절차가 까다로워 시행되는 일은 드물다. 지난해 학교폭력사범으로 검거된 인원이 1만 2,805명에 달했는데도, 학교안전공제회의 학교폭력피해자

지원건수는 52건에 불과했다. 이외에도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을

통해 심리치료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피해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해야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지원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범죄피해자보조기금은 법무부, 경찰, 여성가족부 등에 배분되며, 이 중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지원은 법무부 산하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배정된 기금으로 이뤄진다. 즉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총액도 부족하지만, 예산 배분을 거치고 나서 피해자 지원금으로 돌아오는 몫은 결과적으로 더욱 부족하게 된다.

피해자에 대한 상담 및 금전적 지원이 부족한 실정에서 교육부·여성가족부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전문상담교사와 ‘청소년을 찾아가는’ 상담인력을 모두 증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상담인력의 기계적 확충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관계자는 청소년피해자에 특화된 상담을 제공하는 전문기관이 부재하다며, 산발적으로 인력을 늘리는 데서 나아가 전문적인 상담기관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문상담교사는 주로 각 학교의 Wee센터에서 근무하는데, Wee센터는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사후처방 역시 담당하기 때문에 피해자 보호와 지원에 최적화되기는 어렵다. 가해자와 같은 곳에서 상담을 받으며 피해자가 상담 내용의 유출과 그로 인한 보복을 불안해하기도 한다.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인 대응방안은?

한편 가사소년 전문법관으로 재임했던 배인구 변호사는 ‘청소년참여법정’과 ‘화해권고제도’가 피해자 보호제도를 보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청소년참여법정은 소년범에게 보호처분을 내리는 ‘소년보호재판’에서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배 변호사는 비행청소년 대부분에게 공감능력이나 공감의 경험이 결여된 경우가 많으며, 청소년참여법정이 피해자의 시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해권고제도는 ‘갈등전문가’가 가해자와 피해자 간 실질적인 화해를 도모하는 제도로, 한국에는 2010년에 도입됐다. 배 변호사는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을 유도해 피해자의 치유를 돕는다는 점에서 화해권고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화해권고제도를 형식적으로만 수행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배 변호사가 제안한 두 제도는 모두 가해 청소년에게 교화의 기회를 줌으로써 재범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고, 궁극적으로 추가 피해자 양산을 막는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적절하고 신속한 보호제도를 마련하는 일이다. 범죄피해 트라우마 통합지원기관인 ‘스마일센터’의 한영욱 부센터장은 청소년기에 경험한 범죄 트라우마는 초기에 치료되지 못할 경우 성인기의 불안장애·성격장애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그는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회복 능력이 높아, 동일한 보호조치여도 성인보다 큰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피해 청소년에 대한 신속한 보호 조치는 피해 청소년의 회복을 위해 필수적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 청소년범죄를 담당하는 부처들 간 업무가 중첩되는 등 효율적인 보호제도가 실행되고 있지 않다. 학교폭력 범죄가 사회에 경종을 울린 가운데,단발성 대책에서 나아가 학교폭력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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