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박인수기자] 최근 부산에서 20대 여성 에이즈 환자가 상습적으로 성매매를 하다 적발된 가운데, 부산에서 연락이 두절된 에이즈 환자가 80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 소속 정명희(민주당 비례) 의원은 26일 20대 여성 에이즈 성매매 사건 직후 부산시와 16개 보건소에서 받은 에이즈 감염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현재 부산 에이즈 감염자 수는 878명이라고 밝혔다. 이중 남성은 781명, 여성은 97명이다. 구·군별로는 부산진구가 14명으로 가장 많았고 동구 11명, 북구와 사하구 각 9명, 서구와 해운대구 각 6명 등으로 나타났다.

▲ 에이즈 관련 포인트사진 캐처

지난 11월8일 수요일 오전 11시.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304호 법정. 피고인 김지영(26·가명)씨가 판사 앞에 섰다. 정돈되지 않은 단발머리를 질끈 묶고 녹색 죄수복을 입었다. “주민등록번호와 집 주소를 말씀해주세요.” 판사가 본인 확인을 요구하자, 김씨는 고개를 왼쪽으로 꺾고 내뱉는 듯한 말투로 빠르게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말했다. 이들 가운데 798명은 상담, 치료, 투약 처방을 받고 있으나 나머지 80명은 연락이 두절되고 소재 파악이 불가능해 에이즈 감염자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 소재 파악이 안되는 80명 중에는 3∼4년 전부터 연락이 끊긴 환자부터 최근 신규 환자로 판명된 사람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상담거부는 물론 진료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활동을 약화시키는 항레트로바이러스 투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몸 상태가 악화할 우려가 크다. 또 불특정 다수와 성관계를 할 가능성이 있어 에이즈가 더 확산될 수 있다.

정리하면, 부산시의회가 일선 보건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부산의 에이즈 감염자는 878명으로, 이중 798명은 보건당국의 지원 아래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80명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다. 하지만 보건당국이 연락이 두절된 80명의 환자를 찾아 치료를 권유하는 건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2008년 에이즈 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 개정되면서 감염자 명부 작성, 비치, 보고 제도 모두 폐지됐기 때문이다. 이에 일선 보건소는 에이즈 환자의 실명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연락처 정도만 알고 있다. 김씨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이다. 그는 지난 8월 온라인 채팅 사이트에서 만난 남성에게 자신이 HIV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돈을 받고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10월14일 경찰에 체포됐다. 이 사실은 [부산일보]가 10월19일 ‘에이즈 보균 20대 여, 부산 전역서 성매매’라는 기사로 보도하면서 사회에 ‘에이즈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보도가 나오고 하루 뒤인 10월20일, 성소수자 인권단체와 HIV 감염인 인권단체 9곳이 모여 만든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와 ‘장애여성공감’은 ‘우리는 가십거리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긴급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이 여성을 악마로 만드는 언론의 태도는 에이즈 예방은커녕 불안감만 가중시킬 뿐”이라며 “인권에 기반한 에이즈 예방 정책 로드맵을 수립하고 현재의 복지 시스템에서 소외된 사람에 대한 지원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에이즈를 예방하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과 한국여성의전화, 부산여성단체연합, 부산여성장애인연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등 41개 여성단체들도 연대해 “성매매 여성과 에이즈 문제를 연결한 보도 태도가 도를 넘어서서 성매매 여성에 대한 편견과 낙인, 혐오를 양산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에이즈는 끔찍한 형벌 같은 병이다 → 에이즈 환자와 손만 닿아도 전염된다 →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고 남성과 성관계를 한 여성은 에이즈를 고의로 퍼뜨리려는 끔찍한 악마다’. 언론과 대중이 김지영씨를 비롯한 여성 HIV 감염인을 악마화하는 인식 경로다. 이는 인권·여성 단체들이 사건을 보는 태도와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간극을 보인다. 이 기사가 나온 10월19일 하루 동안 포털 사이트에는 모두 253건의 ‘부산 에이즈녀’ 기사가 쏟아졌다. 종합일간지, 지상파 방송사는 물론 종합편성채널, 각종 온라인 매체까지 너나 할 것 없이 김씨의 피의 사실을 흘리고,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내용을 담은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에 인터넷 이용자들이 여러 댓글을 달자, 이번엔 ‘에이즈로 돈 벌고… 세상에’ ‘돈 주고 죽음을 샀다’ 같은 누리꾼들의 반응을 제목으로 단 기사들이 재생산됐다. 김지영씨가 2010년 2월 HIV 감염 확진을 받은 뒤 그해 9월에도 온라인 채팅 사이트를 통해 성매매를 하다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적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언론 보도와 기사에 달리는 댓글의 비난 수위는 더 높아졌다. 기사 제목에 ‘충격’ ‘발칵’ ‘비상’ ‘일파만파’ 같은 단어가 넘실댔다. 소재 파악 역시 법 개정 전에는 분기에 1회 전화로 했으나 지금은 이런 규정이 없어 보건소에 따라 통상 1년에 한두 번씩 연락을 취하는 경우에 그치고 있다. 이에 병원 치료 후 치료비를 보전 받기 위해 보건소에 본인 부담금 보전 신청서를 낼 때에만 에이즈 환자의 신원과 소재를 파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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