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수능 날이지요?

저는 대학 입학 학력고사 세대입니다. 두 번을 쳤지요. 재수를 했으니. 고사장에서 추웠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뭐, 저 때만 해도 일단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은 보장되는 때이긴 했습니다. 저는 대학 3학년 초까지 한국에서 다니다가 가족이민으로 미국에 왔으니 사회생활은 이곳에서 시작했지요.

돌이켜보면, 20대, 30대가 될 때까지도 제게 악몽이 있다면 고등학교로 다시 돌아가 학력고사를 다시 치르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별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체질인 저도 그게 아마 꽤 스트레스였던 모양이지요. 하긴 하루의 시험이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스트레스가 안 되면 이상한 거겠지요.

미국에서 다시 학업을 시작하며 저는 이곳의 학제가 주는 혜택을 많이 누렸고, 저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이곳 학제의 혜택을 받았다 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제가 더 혜택을 받았을지도 모르지요. 아이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자기들이 좋아하는 과목들을 골라 수업을 들었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저희 부부가 별로 도와준 것 없이 - 아, 그래도 내내 학교에 데려다 줬고, 아이들 방과 후 활동을 위해 부모도 함께 참여하는 몇몇 활동들이 있긴 했었습니다 - 아이들이 거의 직접 해 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은 레슬링을 했고, 육상을 했고, 풋볼 선수로 뛰었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게임들도 열심히 했고.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명문대에 진학을 했고, 지금 큰놈은 세 개의 전공을 해서 내년 졸업을 앞두고 있고, 작은놈은 전공을 바꾸어 새로운 분야에서 도전을 하고 있는데, 매우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아이들 등록금 등을 크게 부담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알아서 그랜트(장학금)를 따 냈고, 우리 집 통장에서 아이들에게 학비 명목으로 들어간 돈도 별로 없었으니까요.

저는 이것이 아이들이 ‘하고 싶었던 것’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이곳의 대입 수능이라고 할 수 있는 SAT를 고등학교 재학중 3번을 치렀고, 이중 가장 우수한 결과를 대입 전형에 제출했습니다.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다른 학생들의 학업을 지도해 준다던지, 커뮤니티 내의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것들은 그 해당 기관들로부터 증명을 받아 활용됐습니다. 저와 아내에겐 그런 아이들을 데려다 준 것이 가장 큰 일이었던 것 같고, 지호 지원이가 운전면허를 딴 이후엔 그나마 그것도 횟수가 확 줄어들었죠.

아이들 자랑을 너무 한 것 같은데, 사실 이런 것들은 학업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은 학업으로, 그리고 취업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직업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이곳의 학제에 기인한다 할 수 있습니다.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 한 번으로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은 참 불합리한 겁니다. 사람의 특별한 재능은 대학 졸업 여부에 관계 없이 뒤늦게 피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자기 전공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고, 거기서 두각을 드러내는 그런 학생들이 과연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져보게 됩니다만.

한국의 대입 제도는 여기에 사다리 걷어차기의 역할을 하게 된 지 오래 됐습니다. 지금 이른바 SKY라고 하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출신지가 거의 강남일 겁니다. 저는 서울대의 SNULIFE 인가 하는 커뮤니티에 모인 이들이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사회와 유리된 의견이 다수가 되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 명문대에 모인 이들은 언젠가부터 강남의 지역 커뮤니티가 된 거나 다름없습니다. 한국의 학제 하에서 정규 교육과정 이외의 것들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리소스가 존재하고, 여기에 목숨을 거는 부모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계급 유지의 욕망'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코로나 때문에 여러가지로 다른 해와는 다르게 시행될 대입 시험, 이번에 이것을 치러보며 저는 더 이상 대입 시험이란 것이 필요 없는 한국을 꿈꿔 봅니다. 이야기를 듣기로 올해 대입 시험의 응시자들이 대학 정원 전체보다 적다고 들었습니다. 이젠 그 우후죽순으로 생겼던 대학들도 사라져야 할 때라는 말이지요. 교육기관이 아니라 금융기관으로 전락(?)한 대학들은 더 이상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 바보같은, 너무나 많은 리소스들이 그냥 사라져 버리는 이 교육 제도 전체는 한국사회가 손 봐야 할 최우선의 과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교육제도 아래서 만들어져 온 온갖 특권들, 그리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기득권들의 저항이 계속되고 있는 이 사회에서, 우선 그 뿌리를 과감히 잘라내려면 일제 시대의 잔재인 이 교육 제도부터 확 바꾸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아무튼, 시험 보는 수험생 여러분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미래의 대한민국에선 가장 지금 이 미래와 맞지 않는 이 제도가 사라지고 학생들이 자기의 꿈을 펼치며 자신의 재능을 길러내는 ‘진짜 교육’을 받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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