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7일 오전 벌어진 '화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도산한 극세사제품 생산업체 '한송텍스' 그들의 사연

"3m 높이 창문 올라가서 불 껐다"는데, 정작 화재현장엔 받침대 될만한 건 어디에도 없었다
"손해사정보고서 조작 있을 수 있다" "한화손보, 아세아손사에게 '총대 메고 막아라'고 했다" 
한화손보 입장 "S산업 측 방화혐의는 무혐의로 수사종결된 것, 일체의 위법 행위 없었다" 

[ 서울 = 뉴스프리존 ] 고승은 기자 = "(3m 높이의 창문까지) 여길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절대 못 올라가죠. 올라갈 수 없으니까 받침대 살짝 몰래 놔두고 사진 찍은 거예요. 그거 하나면 끝나는 거예요. 왜 그거 하나만 중요하냐면, 경찰도 3m 올라갈 수 있고 검사도 3m 올라갈 수 있고 한화손해보험도 3m 올라갈 수 있다고 했는데, 제가 다른 거 다 좋으니 '진술서에 3m 올라갈 수 있다'는 거 당신들이 증명해라. 그러면 나는 방화범이라 안 하겠다. 제가 수십 차례 경찰, 검사, 한화손해보험 만나가지고 이렇게 말했어요." (한송텍스 측 손해사정사 G씨)

인천 서구 오류동에 소재한 (주)한송텍스는 지난 1995년부터 최첨단 섬유소재인 극세사제품을 생산해왔으며, 수십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나 2013년 1월 임차한 창고에 보관했던 시가 7억원 상당의 극세사 원단이 모두 불에 탄 뒤로, 회사는 도산 지경에 빠졌다. /ⓒ 한송텍스 사이트
인천 서구 오류동에 소재한 (주)한송텍스는 지난 1995년부터 최첨단 섬유소재인 극세사제품을 생산해왔으며, 수십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나 2013년 1월 임차한 창고에 보관했던 시가 7억원 상당의 극세사 원단이 모두 불에 탄 뒤로, 회사는 도산 지경에 빠졌다. /ⓒ 한송텍스 사이트

인천 서구 오류동에 소재한 (주)한송텍스는 지난 1995년부터 최첨단 섬유소재인 극세사제품을 생산해왔으며, 수십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중소기업이었다. 사업이 진행되면서 극세사 원단을 보관하는 장소가 비좁아지자 회사는 2012년 1월 바로 옆 공장건물(S산업)의 창고 30평을 임차해 원단을 보관했다. 당시 창고 안에는 시가 7억원 상당의 극세사 원단을 보관하고 있었다. 당시 창고에는 다른 물건 없이 극세사 원단만 보관하고 있었으며, 직원이 일주일에 한 번 들를 정도로 자주 들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인 2013년 1월 15일 해당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그 당시에는 극세사를 싸고 있는 비닐만 약간 그을렸을 뿐 금방 꺼져서 피해규모는 수만원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틀 후인 17일에 똑같은 장소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창고가 잿더미로 변했다. 이 화재로 해당 창고에 있던 7억원 상당의 극세사 원단이 모두 소실됐으며, 불은 S산업이 사용하고 있는 공간 쪽으로도 옮겨붙어 총 10억원을 훌쩍 넘어가는 재산피해가 났다.

2013년 1월 17일 2차 화재 당시에는 건물이 전소됐다. 한송텍스 측의 시가 7억원 상당의 원단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 손해사정사 G씨
2013년 1월 17일 2차 화재 당시에는 한송텍스(좌측 임대공간) 측의 시가 7억원 상당의 원단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 손해사정사 G씨

졸지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놓인 한송텍스 대표 K씨는 이를 단순화재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 화재원인을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한송텍스 측은 이후 1차, 2차 화재사고 당시 CCTV 동영상을 발견해 원인 확인작업에 나섰다.

1차 화재사고 당시 CCTV에는 S산업 대표 A씨의 아들이자 공장장인 B씨가 장작불로 보이는 무언가를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장면과 공장 주변을 서성이는 장면이 확인됐다. 

S산업은 침대의 프레임을 만드는 회사로 목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으며, 당시 한송텍스가 임대한 창고 바로 옆 공간은 S산업 직원들의 휴게 공간으로 이용됐는데, 그 곳에는 목재를 연료로 하는 화목난로가 배치돼 있었다. 그러므로 침대 프레임을 만들다 남은 장작은 그 주변에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1차 화재사고(2013년 1월 15일 오후) 당시 CCTV에는 S산업 대표 A씨의 아들이자 공장장인 B씨가 장작불로 보이는 무언가를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장면과 공장 주변을 서성이는 장면이 확인됐다. /ⓒ 손해사정사 G씨
1차 화재사고(2013년 1월 15일 오후) 당시 CCTV에는 S산업 대표 A씨의 아들이자 공장장인 B씨가 장작불로 보이는 무언가를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장면과 공장 주변을 서성이는 장면이 확인됐다. /ⓒ 손해사정사 G씨

한송텍스 측은 "S산업의 공장건물이 낡아 화재보험금을 수령하여 새로 지을 마음을 먹고 있었다"며 A씨와 B씨,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M씨(방글라데시 국적)를 고의 방화혐의로 고소했다. 한송텍스 측은 "전소 당일인 17일, A씨와 B씨가 공장건물 앞에서 한송텍스 측의 동향을 살피거나 감시했고, M은 그들의 손짓에 따라 화목난로에서 불붙은 장작을 꺼내 자재창고 쪽으로 던졌다"고 주장했다.

한송텍스의 공장장이었으며 현직 손해사정사인 G씨는 결정적인 근거로 B씨 등의 거짓진술을 들었다. 여기서 핵심쟁점은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3m를 어떻게 B씨가 넘어갔는지의 여부다. 3m 높이의 창문을 넘어가려면 당연히 아래 밟고 올라갈 물건이 놓여있어야만 가능하다.

피해가 미미했던 1차 화재(1월 15일) 오후 A씨와 B씨, 그리고 M씨를 비롯한 S산업 직원들은 작업 중에 창문을 통해 한송텍스가 임대한 창고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확인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대표 A씨가 가장 먼저 옆 창고에 불이 난 것을 확인했고 불을 끄기 위해 B씨가 3m 높이에 설치된 창문 쪽으로 올라가 아래로 분말소화기를 발사했으나 진화가 안 되자, 창문을 넘어간 다음 다시 발사해 화재를 진압했다는 것이다. 이를 한 달 동안 진행된 경찰조사에서 32회나 진술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전소된 2013년 1월 17일 2차 화재사고 직후 인천서부소방서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3m 높이 창문 아래를 비롯해 화재현장 어디에도 받침대가 될만한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창문 인근에 최소한 어떠한 물체가 탄 흔적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S산업 측 증언이 맞지 않는 결정적 이유라고 했다. /ⓒ 손해사정사 G씨
모든 것이 전소된 2013년 1월 17일 2차 화재사고 직후 인천서부소방서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3m 높이 창문 아래를 비롯해 화재현장 어디에도 받침대가 될만한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창문 인근에 최소한 어떠한 물체가 탄 흔적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S산업 측 증언이 맞지 않는 결정적 이유라고 했다. /ⓒ 손해사정사 G씨

3m의 높이는 사람 키보다 훨씬 높기에, 받침대 등이 없이 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방화 당시 창문 아래 높이 1m 이상 되는 물체가 반드시 있어야만 3m 높이를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전소된 2차 화재사고 직후 인천서부소방서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3m 높이 창문 아래를 비롯해 화재현장 어디에도 받침대가 될만한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창문 인근에 최소한 어떠한 물체가 탄 흔적이라도 남아있어야하는데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1차 화재는 극세사 제품을 싸고 있는 비닐만 약간 탔을 뿐, 금방 불이 꺼졌기에 창문 너머로 불꽃이 보일 리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연기 한 가닥쯤 피어오르는 데 그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A씨와 B씨 등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어진다. 

여기서 당시 해당 건물의 화재보험사는 한화손해보험(이하 한화손보)이었으며, 손해사정은 한화손보의 하청업체인 아세아화재특종손해사정(이하 아세아손사)이 맡았다. 이 과정에서 한송텍스 측은 아세아손사 조사자였던 D씨(상무)가 S산업 대표 A씨 측과 철저한 유착관계였음을 밝히는 녹취록을 제시한다. 해당 녹취록을 보면, 양측이 만나서 무언가 대책을 논의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S산업 대표 A씨 : 응? 이놈 가만히 보면 나보고 가만히 있지 말고 보험회사 가서 한바탕 하라는 거야. 한바탕 하면 무슨 뭐가 있어야 한바탕 할 거 아니야. 응? 이, 뭐가 합당해야 한바탕 할 거 아니야 그지? 이 새끼한테 연락을 해줘야지, 내가. D한테. (D씨와의 전화통화)예, 어떠세요? 어머니 좀 어떠세요? 응. 아이고. 상무님, 상무님 진짜 너무 애쓰신다.

아세아손사 조사자 D씨 :

A씨 : 인천에서 뵙는 게 좋겠네, 그럼. 예, 예. 인천대 후문 쪽에요. 옛날 인천대 후문 쪽. 그리고 저건, 검찰청 결과는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좀 와서 일러주셔야 돼.  예. 예, 예. 예. 감사합니다. 예, 예, 예.) (대화 종료)

A씨 : 아이고, 멀리 계시네. 

D씨 : 중동 있죠? 중동. 중동쯤에 나오시면 40~50분 걸리면 40~50분 정도 있으면 나오시나? 그러면 음, 넉넉잡고 그러면 4시 10분쯤 중동에 오시면, 4시 10분쯤 중동, 중동, 중동에 오시면 현대백화점 있어요. (대화 종료)

한송텍스 측 손해사정사인 G씨는 "방화범(B씨)과 아세아손사가 결탁하여, 방화혐의를 은폐하려고 실제 있지도 않았던 1m 정도 받침판을 밟고 3m 높이의 창문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조작하여 촬영했다. B씨의 방화사건임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라고 질타했다. /ⓒ 손해사정사 G씨
한송텍스 측 손해사정사인 G씨는 "S산업과 아세아손사가 결탁하여, 방화혐의를 은폐하려고 실제 있지도 않았던 1m 정도 받침판을 밟고 3m 높이의 창문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조작하여 촬영했다. S산업 측의 방화사건임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라고 질타했다. /ⓒ 손해사정사 G씨

S산업 공장장 B씨 : 그러니까 D상무가 뭐라는데?

A씨 : 아이 좀, 만나자 그랬지. 이거 결과도 나왔는데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지. 한번 좀 만나서 무슨 대책을 좀 한 번 의논 한 번 해야 될 것 같은데 언제 시간 나요? 그랬더니만 아, 만나자고. "언제가 좋겠느냐?” 그러는 거야, 날 보고 무대포로. “그건 또 무슨 얘기냐고?” 그랬지. “언제가 좋겠냐고요.” 그러는 거야. “뭐가 언제가 좋으냐고.” 그랬더니 “아, 나랑 만나기로 했잖아요.” 그러는 거야. “아이, 글쎄 상무님이 시간이 언제 나는 지를 얘기를 해줘야지. 나야 아무 때 지금이라도 좋고 이따가도 좋고 내 볼일, 내가 뭐 이것저것 궁금해서 내가 여러 가지 문의사항이 있어서 그래서 만나자고 그런 거니까.
 
B씨 : 그랬더니 시간 정해?

A씨 : 1시 출발, 저기, 저, “만나기 1시간 전에 그러면 전화 드리겠습니다.”

B씨 : 오늘? 오늘 만나?

A씨 : 응. 오늘. (G씨가 공개한 녹취록 중)

성산산업 대표 A씨와 아세아손사 조사자 D씨는 사전에 통화를 나눴던 것이다. 녹취를 보면 A씨가 D씨에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지. 한번 좀 만나서 무슨 대책을 좀 한 번 의논 한 번 해야 될 것 같은데 언제 시간 나느냐?"라고 한 부분이 나온다. 이처럼 양측이 화재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듯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한송텍스 측이 확보하자, 아세아손사는 D씨를 조사자에서 제외시키고 대타로 C씨(전무)가 투입했다고 한다. 

이후 아세아손사는 해당 사건을 '원인 미상'으로 결론냈다. 아세아손사는 현장조사 과정에서 B씨가 1m정도의 받침대를 밟고 올라가는 모습을 직접 사진촬영했고, 그의 3m의 창문을 올라가서 소화기를 발사했다는 진술을 받아들여 손해사정보고서에 '혐의 없음'으로 작성했다. 

아세아손사 측이 작성한 손해사정보고서 중, "S산업 관련자들의 진술내역을 근거하여 재연한 결과 올라갈 수 있음을 확인함"이라고 적어 '혐의 없음' 처분했다. 약 3m의 담을 넘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 손해사정사 G씨
아세아손사 측이 작성한 손해사정보고서 중, "S산업 관련자들의 진술내역을 근거하여 재연한 결과 올라갈 수 있음을 확인함"이라고 적어 '혐의 없음' 처분했다. 약 3m의 담을 넘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 손해사정사 G씨

손해사정보고서의 '방화의견 제시 관련사항 확인' 건을 보면, 한송텍스 측 제시사항에는 "창문이 높아(2.9m) 넘어갈 수 없는데 허위주장하고 있다"고 지적돼 있으나, 이에 대한 확인사항으로 "관련자들의 진술내역을 근거하여 재연한 결과 올라갈 수 있음을 확인함"이라고 적어 '혐의 없음' 처분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고서를 작성할 때, D씨가 방화현장에서 B씨의 모습을 사진촬영했다는게 한송텍스 측 설명이다. G씨가 공개한 아세아손소 측이 작성한 손해사정보고서에는 조사자로 C씨의 이름과 함께 조사에서 제외됐다던 D씨의 이름도 등장한다.

한송텍스 측 손해사정사인 G씨는 "S산업과 아세아손사가 결탁하여, 방화혐의를 은폐하려고 실제 있지도 않았던 1m 정도 받침판을 밟고 3m 높이의 창문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조작하여 촬영했다. S산업 측의 방화사건임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라고 주장했다.

이보다 앞서, 한송텍스 측은 인천서부소방서에서 화재진화 후 촬영한 현장사진을 S산업 측에 보여주며 "어떻게 3m 높이를 올라갈 수 있었느냐"라고 따졌다고 한다. 이에 B씨는 "플라스틱 시트 300장이 (창문 아래 쪽에)있어 이를 밟고 3m 높이의 창문 위로 올라갔다"고 법정 등에서 증언했다. 

그럼에도 소방서가 공개한 현장 사진을 보면, 창문 아래에서 어떠한 물체가 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손해사정서에는 문제의 플라스틱 시트가 화재 때 손실된 것으로 처리됐는데, G씨는 수소문을 통해 화재현장에서 수십m 떨어진 곳에서 300장 시트를 찾아냈다고 한다. 

한송텍스 측은 인천서부소방서에서 화재진화 후 촬영한 현장사진을 S산업 측에 보여주며 "어떻게 3m 높이를 올라갈 수 있었느냐"라고 따졌다고 한다. 이에 B씨는 "플라스틱 시트 300장이 (창문 아래 쪽에)있어 이를 밟고 3m 높이의 창문 위로 올라갔다"고 법정 등에서 증언했다. 그럼에도 소방서가 공개한 현장 사진을 보면, 창문 아래에서 어떠한 물체가 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손해사정서에는 문제의 플라스틱 시트가 화재 때 손실된 것으로 처리됐는데, G씨는 수소문을 통해 화재현장에서 수십m 떨어진 곳에서 300장 시트를 찾아냈다고 한다. /ⓒ 손해사정사 G씨
한송텍스 측은 인천서부소방서에서 화재진화 후 촬영한 현장사진을 S산업 측에 보여주며 "어떻게 3m 높이를 올라갈 수 있었느냐"라고 따졌다고 한다. 이에 B씨는 "플라스틱 시트 300장이 (창문 아래 쪽에)있어 이를 밟고 3m 높이의 창문 위로 올라갔다"고 법정 등에서 증언했다. 그럼에도 소방서가 공개한 현장 사진을 보면, 창문 아래에서 어떠한 물체가 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손해사정서에는 문제의 플라스틱 시트가 화재 때 손실된 것으로 처리됐는데, G씨는 수소문을 통해 화재현장에서 수십m 떨어진 곳에서 300장 시트를 찾아냈다고 한다. /ⓒ 손해사정사 G씨

S산업 측의 증언이 전혀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이렇게 지적했다. 한송텍스 측은 1월 15일, 1월 17일 이틀 간격으로 동일한 위치에서 화재가 일어난 데 대해, "1차 방화는 2차 방화를 위한 S산업의 연습 또는 방화미수"라고 추론하는 것이다. 손해사정보고서를 작성할 때 있지도 않았던 받침대를 갖다놓고 사진을 찍은 점 등에 대해, G씨는 S산업과 아세아손사 측이 결탁, "사건을 은폐해서 가해자를 피해자로 만들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었다"고 목소릴 높였다. 특히 손해사정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D씨가 S산업 측과 유착된 관계임을 G씨는 강조했다. 
 
실제 모든 것을 태워버린 1월 17일의 2차 화재를 아세아손사가 '원인 미상'으로 결론내면서, 물류창고를 임대한 한송텍스 대표 K씨는 극세사 원단이 모두 불이 타며 엄청난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음에도 보상은커녕 빚더미에 앉아 회사가 도산하는 지경에 처했다. 반면 건물주이자 S산업 대표인 A씨 측은 수억원대의 보험금을 수령한 것이다. 더 나아가 한화손해보험은 A씨 측에 보험금을 지급하면서 K씨 측에 수억원대의 구상권을 청구했다. 그러면서 K씨 측은 벼랑끝에 몰리게 됐고, 결국 회사는 도산하고 말았으며 일하던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이후 G씨는 끈질긴 추적 끝에 수년 뒤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다. 아세아손사가 작성한 최종손해사정보고서가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라는 점이다. 여기엔 아세아손사뿐만이 아니라, 그의 원청인 한화손해보험까지 S산업 측과 유착한 증거라고 그는 목소릴 높였다.

당시 손해사정을 맡은 아세아손사는 해당 사건을 조사한 뒤 총 49페이지의 오리지날 최종손해사정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현장에 없던 1m 높이의 받침대가 놓여있고, 이 받침대를 밟고 올라가 B씨가 화재를 진압한 것처럼 재현한 사진(3페이지 분량)이 들어간 8페이지가 첨부돼 있다. 그런데 한화손보가 보관하고 있는 최종손해사정보고서에는 해당 8페이지가 누락된 41페이지 분량이었고, 한화손보는 해당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처럼 법원에 제출된 보고서에는 현장재현 사진 등이 포함된 8페이지가 사라진 것이다. 

또 사건을 맡아 S산업 관계자들에게 '혐의없음'이라는 불기소 이유서를 작성했던 P검사는 사진자료들이 모두 빠진, 29페이지 분량의 손해사정보고서를 갖고 있었다. 이처럼 손해사정보고서가 하나가 아닌 세 종류였던 것이다. G씨는 검찰청에 7차례 요청한 끝에 손해사정보고서를 입수했는데, 이것이 P검사가 갖고 있던 것이었다.

아세아손소 측이 작성한 손해사정보고서 중, 조사자 이름에는 S산업과 유착관계를 맺었다고 지목된 D씨(상무)의 이름 그리고 이후에 대타로 참여했던 C씨(전무)의 이름도 보인다. /ⓒ 손해사정사 G씨
아세아손소 측이 작성한 손해사정보고서 중, 조사자 이름에는 S산업과 유착관계를 맺었다고 지목된 D씨(상무)의 이름 그리고 이후에 대타로 참여했던 C씨(전무)의 이름도 보인다. /ⓒ 손해사정사 G씨

G씨는 이를 한화손보도 아세아손사와 함께 방화사건을 '원인 미상'으로 조작하는데 가담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지적했다. 한화손보가 49페이지 분량의 오리지날 손해사정보고서를 그대로 법원에 제출하면 됨에도, 왜 결정적인 부분을 누락한 보고서를 제출했냐는 것이다. 

손해액을 결정하고 보험금을 산정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손해사정인이 작성한 손해사정보고서는 보험금 지급의 결정적인 자료로 쓰이는 만큼, 여러 종류가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나가 아닌 여러종류의 손해사정보고서에는 모두 한화손보의 직인도 찍혀 있었다. 보험금은 보험사의 결재없이는 진행이 될 수 없기에, 한화손보와 아세아손사가 함께 연루됐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G씨의 설명이다.

G씨는 "검사도 손해사정보고서가 조작된 사실을 알기에, 방화은폐 보험사기로 들통날 경우를 대비해서 증거인멸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손해사정보고서 작성자인 C씨(전무)를 찾아가 추궁했다. G씨가 공개한 녹취록 내용이다.

한송텍스 측 손해사정사 G씨 : 아, 아니. 내가…. 그럼 한화가 돈이 없어서 이래요? C형도 한 가지 잘못 한 거 있어. 나는 지금 뭐냐면, 한화가 돈 때문에 이러는 것 아니잖아요. 경찰, 검사 따지지 말고 아세아에서 조작 안 했어요? 그것만 물어봅시다. 

아세아손사 조사자 C씨 : 조작이 아니라고 그 (손해사정보고서) 조작이 있을 수 있어. 그 조작은 있을 수 있어요.

G씨 :  가만 있어 봐요. D(아세아손사 조사자, 상무)가 주체적으로 해가지고 결제를 우리 C형, 아니면 Y(아시아손사 대표)가 결제했어요?

C씨 :  조작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게, 

G씨 : 아니 그러니까 그러면 말이 안 되지. 조작이라고 하면 방화지. 에이 그러면 조작 한 것은 인정해요?

C씨 : 그 조작은 일부 좀, 그…. 사실과 약간 다르게 표현될 수 있지만, 

G씨 : 그럼 이 사건은 지금 현재 아세아 Y대표가 단독으로 한 거나요? 아니잖아요. 

C씨 : 그러니까. 그러면, 그러면 차라리 한화를 쳐야 돼. 그러니까 니네(한화)가 니네가 아세아한테 용역을 줬지 않았느냐. 응? 그러면 ‘니네(한화손보)가 먼저 책임이 있다.’

G씨 : 아 그러니까 좋은데, 그럼 한화를 내가 어떻게 내가 말하냐 이거죠. 

C씨 : 한화를 갖다 뒤집어 엎어 버려야지. 협력업체(아세아손사)에서 잘못했으니까. 응? 그러면 ‘니네(한화손보)가 먼저 책임이 있다.’

한화손해보험 건물, 극세사 제품 생산업체인 한송텍스는 한화손해보험 측이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켜' 회사가 도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 한국경제TV
한화손해보험 건물, 극세사 제품 생산업체인 한송텍스는 한화손해보험 측이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켜' 회사가 도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 한국경제TV

G씨 : 아 그러니까 좋은데, 그럼 한화를 내가 어떻게 내가 말하냐 이거죠.

C씨 : 한화를 갖다 뒤집어 엎어 버려야지. 협력업체(아세아손사)에서 잘못했으니까, 애새끼(한화손보)들이 한게 뭐냐하면, ‘다 네가(아세아) 막아라.’ 이거야. 그렇지. ‘아세아에서 막아라.’ 이거야. 그,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들도 뭐 일련의 어떤 역할은 하지만 그래도 ‘아세아에서 모든 것을 좀 총대를 메고 나가라.’ 이거라고. 차 사장(아세아손사 대표)도 지금 그 중 뭐 정말 괴로운 거지. 한마디로. 그래서 한화를 쳐아준다는 얘기예요. 아세아를 쳐가지고는 나올게 없어요. 처음부터 한화를 쳤어야 돼. 끝까지 그래서 한화를 쳐야 돼. (보상할 금액이)몇 억, 몇억 정도면, 5억 정도면 되는 거예요? 12억이라고요? 소송 들어간 게?

G씨 : 12억인가, 13억인가 그럴걸요? 12~13억 그렇게 되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나한테만 7억 정도는 생각하고 있으니까.

C씨 : 한 50% 정도? (G씨가 공개한 녹취록 내용 중)

G씨는 이처럼 손해사정보고서를 직접 작성한 아세아손사 직원 C씨에게 찾아가 "왜 조작했느냐"라고 따져물었다. 그러자 C씨는 "조작은 있을 수 있다"고 시인하며, 실제 책임은 아세아손사가 아닌 원청인 한화손보 측에 있음을 강조했다. C씨는 "(한화손보가) '아세아에서 모든 것을 총대를 메고 나가라'고 했다"라고 증언했다. 한화손보가 하청업체인 아세아손사 측에 "총대를 메라"며 책임을 떠넘겼다는 것이다. 

C씨는 "아세아를 쳐가지곤 나올 게 없다. 끝까지 한화를 쳐야 한다"고 밝힌 뒤, 한화 측에 요청해 일정금액을 한송텍스 측에 배상하겠다고 했다. G씨는 C씨의 이런 증언이, 실화가 아닌 고의적 방화사건임을 증명해주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화손보 측에서는 아세아손사 측에 책임을 넘기며 "막으라"고만 했고, 아세아손사 측도 "돈이 없어서 못 준다"고 나왔다는게 G씨 설명이다. G씨는 "한화손해보험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 방화범에게 눈 먼 보험금 4억원을 지급해놓고는, 피해자에게 돈을 내놓으라 구상권을 청구한 악랄한 보험사"라고 목소릴 높였다.

그는 "그뿐만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변호사를 고용하는 데 비용도 억대 들어갔다. (자체 법무팀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라는 재벌기업 상대로 하니까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당시 불났을 때 직접 손해는 (극세사 원단)7억원, 그게 사라진데다 변호사 비용까지 쓰다보니 돈이 메마를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다보니 공장이 4년만에 부도가 났다. 실제 공장 가치(공장건물, 토지, 기계 등)는 20억원 가량 됐는데 결국 경매로 넘어가고 말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물론 직원들도 일터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2013년 1월 17일 2차 화재당시에는 한송텍스 측의 시가 7억원 상당의 원단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당시 화재현장의 모습. /ⓒ 손해사정사 G씨
2013년 1월 17일 2차 화재당시에는 한송텍스 측의 시가 7억원 상당의 원단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당시 화재현장의 모습. /ⓒ 손해사정사 G씨

"공간을 임차했을 당시 왜 화재보험에 들지 않았느냐"라는 지적에 대해 G씨는 "임차공간은 파이프 골조 구조의 가건물이라, 화재보험에 들기 어려웠던 상황"이라고 밝혔다. 불에 쉽게 탈 수 있는 구조이다보니, 보험사 입장에선 잘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화손보와 아세아손사가 당시의 화재사건을 ‘원인 미상’으로 조작하지 않았다면, 한송텍스는 피해보상을 받았을 것이며 S산업 측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G씨 입장이다. 한송텍스 대표 K씨는 모든 것을 잃은 충격으로 자살시도까지 했었다고 한다.

한화손보 측은 "사법기관의 수사결과, (S산업 측의)방화혐의에 대해 무혐의로 수사종결된 것을 확인 후 화재보험을 지급했다"며 "아세아손사의 손해사정보고서는 고의 방화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조작되거나 위조된 사실이 없음을 알려드린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해당 건에 대해서는 "일체의 위법 행위가 없었다"는 입장이며 G씨 측에는 "화재원인이 (S산업 측의)방화라는 객관적인 추가자료가 확인될 경우, 사법기관에 정식으로 재수사를 요청하라"고 전했다. 

한편, 한화손보의 경우 주요 손보사들 중 소비자들의 평이 좋지 못한 편에 속한다. 2년여전 발표자료에 따르면, 한화손보는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주지 못하겠다"며 소송을 냈다가 패소하거나 민사조정을 신청하는 사례가 주요 손해보험사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금융소비자연맹(금소연)이 15개 손해보험사의 지난 2017년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화손보는 53건 중 35건에서 전부패소(패소율 66.0%)했다. 

다른 손보사들에 비해 소송건수도 단연 많았고, 패소율도 가장 높았다. 또 금소연은 "15개 중 8개 손보사의 신규 소송제기는 한 건도 없었다"며 한화손보의 사례가 이례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울러 손보사들의 민사조정 제기 건수를 봐도 한화손보가 527건으로 15개 손보사 합계(726건)에서 약 73%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업계 1위인 삼성화재(51건)의 10배를 넘었다. 그만큼 한화손보는 소비자들에게 비판 대상이 됐다.

한화손해보험은 올해 3월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부친의 보험금을 상속받게 된, 졸지에 고아가 된 12세 초등학생에게 수천만원대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가 이것이 공론화되며 시민들의 큰 공분을 산 바 있다.  /ⓒ MBC 14F
한화손해보험은 올해 3월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부친의 보험금을 상속받게 된, 졸지에 고아가 된 12세 초등학생에게 수천만원대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가 이것이 공론화되며 시민들의 큰 공분을 산 바 있다. /ⓒ MBC 14F

또 올해에는 한화손보 관련 불미스러운 사건이 알려지며 시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올해 3월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부친의 보험금을 상속받게 된, 졸지에 고아가 된 12세 초등학생에게 수천만원대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으로 파장이 일었다. 일부 네티즌은 "내가 죽으면 내 자식에게 소송할 것"이라며 한화손보와의 계약 해지과정을 인증하기까지 하는 등, 한화손보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일어났다.

파장이 확산되자 한화손보 측은 사장 명의로 "소송이 정당한 법적 절차였다고 하나, 소송에 앞서 소송 당사자의 가정 및 경제적 상황을 미리 당사가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고 법적 보호자 등을 찾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소송을 취하하였으며 향후에도 해당 미성년 자녀를 상대로 한 구상금 청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긴급진화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속 보험설계사를 관리하는 한화손해보험 센터장이 보험설계사가 되기 위해 교육받던 20대 여성을 강제 성추행했다가 피소된 사건까지 알려지며 한화손보의 이미지는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센터장은 보험설계사를 관리하는 한화손보의 정직원이었으니, 한화손보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해당 여성이 언론에 공개한 녹취에 따르면, 센터장은 해당 여성에게 "내가 잘못한 것 같다. 처음엔 와이프인 줄 알았다. 너무 취했었다"라고 말한 뒤, 곧바로 "근데 나중에는 너인 줄 알았지만 제어가 안 됐다. 남자가 안 멈춰지는 게 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해당 여성은 한화손보 측에서 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증언하는 등, 파장은 더 확산된 바 있다. 

G씨의 주장은 "3m 높이의 창문을 어떻게 올라갈 수 있었느냐" 그게 가장 핵심이라는 것이다. /ⓒ 손해사정사 G씨
G씨의 주장은 "3m 높이의 창문을 어떻게 올라갈 수 있었느냐" 그게 가장 핵심이라는 것이다. /ⓒ 손해사정사 G씨

G씨는 "방화은폐 보험사기 범죄사건이냐 아니냐의 판단은 아주 간단하다"며 "S산업과 한화손보 및 아세아손사 직원들이 주장하는 약 1m 정도의 받침대가 화재가 났을 당시 창문아래 존재했는지 그 유무만 확인하면 된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3m 높이의 창문을 어떻게 올라갈 수 있었느냐, 그게 가장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화손보와 아세아손사에 대해 관계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도 해당 사건에 대한 청원글을 여러 차례 올린 적이 있으며, 유력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해당 사연을 역시 올린 바 있다.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는 10년으로 오는 2023년 1월까지다. 그러니 현재 공소시효는 2년가량 남아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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