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면장(免牆)을 하지’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의 정확한 뜻을 알고 쓰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상으로 사용하는 말 가운데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적지 않습니다. 흔히 말하는 ‘알아야 면장을 하지’가 바로 그런 것 중의 하나이지요.

면장의 사전(辭典)적인 뜻은 ‘어떤 일이든 그 일을 하려면, 그것에 관련된 학식이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즉, ‘담장을 마주한 것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남’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면장을 동장, 읍장 등, 행정기관장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속담은 행정기관의 면장(面長)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말입니다.

《논어(論語)》에 보면, 공자(孔子)가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행하는 장면에서 군자(君子)의 덕목 중에 특히 시(詩)에 대한 소양을 힘주어 강조하는 대목이 종종 눈에 띱니다. 바로 시 공부를 통해서 터득할 수 있는 게 의식을 평정하고 하늘의 뜻을 받드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자는 스스로 고백하길 《시경(詩經)》 삼백여 편의 시를 모두 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할 수 있다고 했고, 아울러 이를 한마디 말로 압축해서 ‘생각이 삿되지 않음(思無邪)’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안목의 소유자였습니다.

한편 '담장을 마주한 것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남'이란 뜻의 '면장(免牆)'이란 말의 발단은 《논어》 <양화(陽貨)>편에 보입니다. 공자가 자신의 아들 백어(伯魚)에게 말하기를, “아들아 너는 어찌 《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의 시를 배우지 않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는 ‘바로 담장을 마주해 서있는 사람(正牆面而立)’과 같이 답답하단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 중기의 선비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 1607~1689), 최립(崔笠) 등의 문집에 실린 시문에 보면,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면장면(免牆面)’이란 표현을 쓴 사례가 등장합니다. 이것을 다시 풀어보면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나다’란 뜻이 되지요. 그러고 보면 본래 ‘장면(牆面)’에서 비롯된 이 말이 ‘면장면(免牆面)’으로 이어졌다가 이의 준말로 ‘면장(免牆)’이 되었음을 추정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정작 ‘알아야할 대상’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공자의 지론을 빌린다면 다름 아닌 ‘시(詩)’가 아닐까요? 곧 ‘시를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게 본래의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대상이 어찌 시 하나에 국한되겠습니까?

‘《논어》를 알아야’, ‘지식이 있어야’ ‘지혜가 있어야’ 등으로 더욱 다양하게 확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분야의 일을 제대로 하려면 그 분야의 관련된 학식이나 실력을 갖추어야 함은 기본입니다. 아울러 현대를 살아가는 교양인의 처세(處世)를 요약해 말할 양이면, ‘알아야 면장을 한다!’ 이 말 한마디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공자는 ‘주남’과 ‘소남’을 모르는 것이 마치 담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서 지극히 가까운 곳에 나가지도 못하고, 한 물건도 보이는 것이 없으며, 한 걸음도 나아가갈 수 없다고 한 말인 것 같습니다. 어떻든 벽을 향해서 서있는 암흑의 세계를 형용하는 말이 바로 장면(牆面)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꼴을 ‘면(免)한다’는 말이 바로 ‘면장(免牆)’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것은 지식(知識)만 풍부해서는 안 됩니다. 지혜(智慧)가 따라야 하지요.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아주 큽니다. 지식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말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적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지요. 지식과 지혜는 이렇게 다릅니다. 학문은 날로 더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식은 자꾸 더 배워야 됩니다. 그러나 책을 많이 보더라도 빈 마음으로 보면 다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욕심으로 보면 ‘도(道)’와는 멀어집니다. 오히려 지식이 많을수록 ‘도’와는 더욱 멀어지기 쉽습니다. 도를 닦는다는 건 날로 덜어내는 것입니다. 부자연한 것을 자꾸 덜어내는 것이 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도를 닦는다는 것은 학문을 하더라도, 자꾸 부자연스러운 것, 양심에 맞지 않는 것을 자꾸 덜어내야 됩니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것은 도를 깨치기 위한 수행(修行)을 통하지 않으면 결코 지혜를 얻기란 지난(至難)할 것입니다.

정산(鼎山) 종사께서는 “마음의 본말을 알고, 마음 닦는 법을 알고, 마음 쓰는 법을 잘 아는 것이 모든 지혜 중에 제일 근본 되는 지혜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근본 되는 진리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진리>와 <불생불명(不生不滅)의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마음이 열려 직관하는 세계이지요.

지혜를 얻어야 면장을 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어서어서 이 근본 되는 진리를 깨쳐 진정한 ‘면장’이 되어보면 어떨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2월 2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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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공자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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