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59·사법연수원 11기)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준이 대책 없이 지연되면서 대법관 공백 사태가 73일째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에선 "대법관 공석(空席) 상태가 계속되면서 대법원에 계류 중인 상고심 사건들도 지연되고, 전원합의체 판결과 주요 사건 처리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 연합통신넷, 심종완기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올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받은 사람 3명 중 박 후보자를 차기 대법관으로 판단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했다.

그러나 박 후보자가 고(故)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당시 수사팀에 있으면서 추가 가담자들에 대한 수사를 소홀히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인사청문회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다. 여야의 공방이 계속되던 2월 17일 신영철 전 대법관이 퇴임했고, 이후 1일로 73일째 대법관 자리가 비어 있다. 4월 7일 가까스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면서 결론이 나는 듯했으나 야당에서 "청문회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며 청문 경과 보고서를 채택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공백이 장기화됐다.

또 지난주 초 정 의장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의 면담에서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인준안 직권상정 수순을 밟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어 직권상정 쪽으로 무게가 쏠린다.

면담 이후 이뤄진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야는 입장차만 확인했을 뿐 협상에 진전을 이루지 못했고, 급기야 유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법관 인준 문제는 여야 합의로 처리되기는 힘들 듯 하다"고 말했다.

이에 야당측 인사청문특위 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더이상 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의미가 없고, 경과보고서의 채택 여부를 논의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맞서 협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이러한 가운데 여당은 정 의장이 빨리 결단을 내리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여권 내에서는 정 의장이 여야 합의를 포기하고 직권상정에 나설 경우 4월 임시국회 본회의 일정이 잡혀있는 오는 30일과 5월 6일 가운데 내달을 선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야당의 반대 속에 오는 30일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 표결을 실시한다면 다음 달 6일 본회의에서의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관계자들은 인준 지연으로 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은 연간 3만8000여건, 대법관 1명이 연간 처리하는 사건은 3000건이 넘기 때문에 1명이라도 부족하면 매달 수십~수백건의 사건이 지연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양 대법원장은 3월 3일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친서를 보내 "단 한 명의 대법관이라도 결원되면 대법원의 헌법적 기능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하게 된다"며 공백 사태를 조속히 해결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대법원 소부(小部)는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지만, 신 전 대법관이 속했던 대법원 2부는 일단 이상훈·김창석·조희대 대법관 3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또 신임 대법관에게 배당됐어야 할 사건은 현 대법관 11명이 나눠서 처리하고 있다. 대법원 2부에는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의 재심, 이재현 CJ 회장의 횡령·배임·탈세 사건 등 중요 사건도 모여 있다. 특히 한 의원에 대한 상고심은 2013년 9월 30일 접수된 이후 19개월 넘게 처리되지 않았다. 한 의원은 한신건영 전 대표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과 함께 추징금 8억8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법원 관계자는 "4명이 맡던 사건을 3명이 맡는 상황에서 사건 처리에 속도를 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 대법원은 4월 16일 열 예정이었던 발레오전장 노조 사건 공개변론을 연기했다. 이 사건은 금속노조 산하 노조인 발레오전장 노조가 금속노조를 탈퇴해 기업별 노조로 조직 형태를 바꿀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공개변론 사흘 전에 전격 연기를 결정했다. 원고와 피고에게서 준비서면, 의견서 등 서류를 다 제출받고 생중계 준비도 마쳤으나 대법관 1명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사건과 같이 사회적 의미가 크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건에는 모든 대법관의 다양한 의견이 빠짐없이 반영돼야 한다"며 "대법관 공백 상태에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연 전례가 없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연기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청문회 과정에서 박 후보자가 사건 은폐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대체로 소명됐다고 생각했는데, '성완종 리스트' 사건 이후엔 대법관 공백 사태가 아예 잊힌 것 같다"며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수많은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국회가 빨리 결론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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