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개인전 갖는 사진작가 곽동경

말해지지 않는 ‘나머지들'의 울림

날숨
날숨

[서울 =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벨기에 극작가이자 시인인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희극 ‘파랑새’에는 주인공 남매 틸틸(Tyltyl)과 미틸(Mytyl)있다. 우리에게는 일본어 번역본에서 음차를 한 이름인 치르치르, 미치르로 알려져 있다. 틸틸과 미틸 남매가 파랑새를 찾아가는 모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파랑새’는 희망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23일까지 서대문 플랜비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사진작가 곽동경의 첫 개인전 전시명이 ‘틸틸미틸 Tyltyl Mytyl’이다.

Landscape
Landscape

곽 작가의 풍경 사진은 욱여넣거나 화면을 가득 채우려는 사진이 아니다. 말할 수 없고, 비어 있는 것들이다. 작가는 주변의 소소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연속적인 평이한’ 것들을 수집하고자 한다. 이러한 한계 설정 안에서 사진이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모든 행위가 ‘파랑새’의 희망과 닮아 있다. 명확한 서사 없이 최소한의 지시만이 담겨 있는 사진들은 ‘틸틸’, ‘미틸’이라는 이름처럼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곽 작가는 시간성은 사라지게 하고, 상징적인 것들을 배제한다. 스펙터클한 이미지보다 밋밋한 것들을 집중해서 관찰한다. 내러티브 방식을 지우고 우연에 맡기면서 촬영을 하고 이미지를 수집한다.

501
510 kilometer

수집된 이미지를 통해 의미가 없는 것들, 의미의 나머지들, 중립적으로 포기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진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내러티브를 형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는 다는 얘기다.

“사진이 역사적인 것을 말한다면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 스스로 말하지 않을까.” 작가의 파랑새 같은 희망이다.

전시에는 작가가 지난 10여년간 촬영한 ‘510 kilometer’, ‘LAND landscape’, ‘나머지정리’, ‘날숨’시리즈 중에서 엄선한 대표작 40여 점을 사진과 영상 작업으로 보여준다.

‘날숨’시리즈는 렌즈 앞에 숨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필터 처리의 느낌이 나도록 바다를 찍은 연작이다. ‘나머지정리’ 시리즈는 관심이 가는 것, 평이하고 연속적인 것이면서 이색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풍경을 찍은 연작이다. 태백에 있는 민둥산역 앞 철도아파트가 첫 대상이었다. 탄광 산업의 쇠퇴로 쇠락한 태백 지역의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 중 하나였던 철도아파트 주변에 재개발의 열망에 비례해서 엄청난 수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던 광경을 보면서 작업한 것이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사진에 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스스로의 사진에 대한 태도를 다짐하는 계기가 된 시리즈다. 의미가 없는 것들, 의미의 나머지들, 중립적으로 포기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적 태도가 형성됐다.

‘LAND Landscape’시리즈는 작가의 유년시절 기억에서 출발한다. 휴일 없이 일주일 내내 회사에 출근을 해야 했던 아버지를 졸라서 놀이공원에 갔던 유년시절을 문뜩 되돌아보면서 작업한 것이다.

“아버지의 휴식을 빼앗은 동시에 아버지 대신 출근을 해야 했던 어머니에게 노동을 강요하였음을 자각했다.”

작가는 일부러 흐린 날이나 안개 낀 날에 촬영을 하고, 채도를 가급적 빼내려 하거나, 이미 찍어 놓은 사진은 후반 작업으로 원하는 색상으로 바꾸는 수고스러움을 더하면서 작업을 진행한다.

나머지정리
나머지정리

‘510kilometer’는 작가가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사진이라면 당연히 사회적인 메시지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작가는 당시 4대강 사업이 한창이었던 낙동강을 찍기 시작했다. 작가의 고향이 부산이기 때문에 친숙한 곳이기도 했고, 사진 속에 ‘메시지를 욱여놓으려고 하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하기에 적정한 대상이었다. 지역적으로는 부산에서 낙동강의 큰 지류가 시작되는 안동까지 걸으면서 촬영을 한 작업이다. 흑백 필름으로 3년 정도 촬영을 했다.

곽동경 작가는 상명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상문화학을 전공했다. 바깥의 풍경과 내면의 풍경이 겹치는 지점을 탐사하며 사진으로는 현실을 붙잡아 두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얕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는 선명하지만 보이지 않는 역설적인 현상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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