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적은 추격하지 않는다.

“높은 구릉(丘陵)에 진 치고 있는 적은 쳐다보고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구릉을 등지고 있는 적은 맞서서 응전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으로 패한 척하고 달아나는 적은 추격하지 말아야 한다. 적의 정예병은 정면 공격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손자병법’ ‘군쟁편’에 보이는 용병 8원칙의 하나다.

낚시의 미끼처럼 아군을 유인하기 위하여 보낸 적군은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철수하는 군대는 돌아가는 길을 막지 말아야 한다. 적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구멍을 터놓아야 한다. 벗어날 수 없는 막다른 지경에 빠진 적군은 압박하지 말아야 한다.

이 책략은 본국으로 철수하는 적군을 가로막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당시의 역사적 조건과 자기 인식 능력의 한계 때문에, 이 계략에 대한 손자의 과학적인 인식은 충분하고 전면적이라고 할 수 없다. ‘돌아가는 군대’ ‘귀사(歸師)’를 가로막아 공격할 것이냐 아니면 추격할 것이냐 하는 것은 구체적인 분석과 상황에 따라 선택해야지, 철수하는 적을 무조건 막거나 추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백전기법’ ‘귀전(歸戰)’은 이 책략에 대해 손자에 비교해, 진보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적과 공방전을 벌일 때, 적이 별다른 까닭 없이 퇴각하면 반드시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적이 지쳐 있고 양식이 떨어져 있으면 정예군으로 유린하라. 적이 귀국하려 하면 막지 말라.

이는 ‘귀사물알’이라는 책략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귀사’는 진짜 패해 퇴각하는 경우일 수도 있고, ‘패한 척 적을 유인하는’ 능동적인 퇴각일 수도 있다. 상황을 구분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행동했다가는 적의 덫에 걸려 전기를 잃고 말 것이다.

‘삼국지’ ‘위서(魏書)‧무제기(武帝紀)’에 기록된 경우를 보자.

198년 3월, 조조는 친히 군을 이끌고 양(穰.-지금의 하남성 등현성 밖 동남쪽 귀퉁이)에서 장수(張繡)를 공격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원소가 허창(許昌)을 습격하려 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어 포위를 풀고 북으로 철수했다. 그러자 장수는 군대를 몰아 추격에 나섰다. 이때 유표(劉表)는 험준한 요새와 같은 안중(安衆.-지금의 하남성 등현 동북)을 고수하며 조조의 퇴로를 막았다. 앞뒤로 적을 맞아 조조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조조는 야밤을 틈타 복병을 곳곳에 설치해놓고 장수의 추격을 기다렸다. 날이 밝자 장수는 조조가 패해 달아나는 것으로 오판, 전군을 몰아 추격하다가 복병의 습격을 받고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 일이 있은 후 조조는 순욱(荀彧)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장수의 패배는 ‘퇴각하는 우리 군대를 막아 우리 군대와 사지(死地)에서 전투를 벌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돌아가는 군대를 막을 것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반드시 돌아가는 군대의 특징과 퇴각의 진위를 잘 판단해서 결정해야 한다. 조조의 후퇴는 맹목적 퇴각이 아니라 돋보이는 계략 활동의 일환이었다. 장수는 조조가 그저 황급히 도망가는 줄로만 알았다가 크게 걸려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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