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농사짓는 고통을 온 몸으로 느낀 건, 부끄럽게도 고작 5평짜리 주말농장을 경험하면서다. 내가 직접 주도적으로 나선 것도 아니고 둘째 사위가 제 가족들만 데리고 소풍가는 것처럼 보여 나도 끼어보겠다고 나선 결과다.

처음에는 손녀들과 낄낄대며 좋았는데 점점 더 견디기가 힘들었다. 어느 땡볕 내리쬐는 여름날, 사위 출장으로 2주간 방치해두었던 밭을 갈아엎을 때는 탈진 직전까지 갔다. “오늘은 그만하세” 아무리 호소해도 (사위는) “조금만 더 하면 됩니다. 오늘 안 하면 가을농사 망칩니다”며 끝장을 냈다.

결국 호미질 하던 오른쪽 엄지손가락 안쪽이 훌렁 까지고 말았다. 허리와 허벅지가 끊어질 듯 아팠다. 그냥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위를 도와 5평짜리 밭에 채소를 키우려고 죽을 고생을 했던 그때가 60대 초반이었다.

그런데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부친 같은 이는 70대에 농사를 지으려고 수천 평 땅을 샀다고 했다. 그리고는 마눌님 아픈 탓에 농사를 못 지었을 뿐이라고 입맛을 다셨다니 정말 그 체력과 기개와 기지가 부럽기만 하다.

나는 사위가 무서워서 죽을힘까지 짜냈는데… 이 분 사정을 듣다 보니 그때 사위한테 “이제 주말농장 그만 하세” 하소연할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 땅을 사서 누구에게 농사시키고 가끔 상추, 무, 배추나 상납 받으며 지낼 걸 그랬다.

혹시 언젠가 그린벨트가 해제돼 그 땅에 아파트가 들어설 지도 모르지 않나. 하지만 나는 확실한 정보가 없는 사람이므로 그냥 농사를 포기한 것이 잘 한 것이다. (내 주변에는 LH나 KDI 다니는 사람이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윤희숙 의원은 또, 자기 부친하고는 30년 이상 독립관계로 살아왔으니 부친의 농지 투기의혹이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자식들도 다 결혼하면서 자기들 호적을 따로 차리고 독립적인 생활을 한다. 세상의 평범한 모든 가족들이 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독립관계로 살다가 부자지간, 혹은 형제지간에 무언가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때 가끔 ‘의절’이란 걸 하기도 한다.

나도 나를 너무 농사일에 부려먹는 사위가 미워서 잠시 ‘저강도 의절’까지 생각했지만 그러다가는 오히려 내가 불리해질 것 같아 곧 포기한 바 있다. 그 10초 간을 제외하고 우리 집안은 독립관계임에도 무척 화목하게 지낸다. 한 달에 두세 번씩 서로 오가며 함께 식사도 하고 세상 이야기도 나누고 금전거래도 한다.

물론 딸이나 사위가 부동산 정보를 물어와 땅을 사라거나(그럴 깜냥도 아니지만) 아예 돈까지 대면서 내 명의로 사라고 한다면(그럴 돈도 없지만) 나는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나는 건전하고도 당당한 민주시민이므로…

당당한 민주시민으로서 나는 양극화, 소득 불균형, 그에 따른 사회불안 등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문제가 부동산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부동산 투기범죄자에게는 옛날의 대역죄에 해당하는 엄중한 벌을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대형 아파트를 두 채씩이나 보유한 이가 ‘임차인’ 코스프레를 한다거나 부친 이름으로 개발 예정지에 수천 평 농지를 보유한 국회의원이 ‘사퇴쇼’하는 꼴을 도저히 못 봐주겠다. 자기가 앞장서 정보와 가족을 동원해 부동산투기를 일삼아 왔다는 혐의를 받는 사람이, 그런 자들 때문에 엉망진창이 돼버린 부동산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정책에 실패했다고 공격하면서 “그 최전선에서 싸워 온 제가 정권 교체 명분을 희화화시킬 빌미를 제공할 수 없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 아이러니.(이 대목에서 나는 웃지도 못하겠고 울지도 못하겠다) 그리고 이를 ‘정치인의 품격 보여준 윤희숙’‘의원직 사퇴 강수’, 윤희숙다운‘ 되치기’ ‘부동산 투기 의원들 부끄럽게 한 윤희숙’ ‘윤희숙 의원이 보여준 염치와 상식’ 등등 찬양 일색인 언론.(이 대목에서 나는 또 한 번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다)

글쎄다, 도둑이 창을 들면 강도가 되는 것이지 조자룡이 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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