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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 2주기 추모전시회…"곳곳에 살아 숨쉬는 가르침"신영복 선생님은 누구?
  • 김현태 기자
  • 승인 2018.01.14 17:11
  • 수정 2018.01.25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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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신영복

[뉴스프리존=김현태기자] 성공회대(총장 이정구)는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2주기 추도식이 14일 오후 성공회대 성미가엘 성당에서 열렸다. "선생님은 멀리 계시지 않는다. 선생님의 사상은 기억으로 부활해 우리와 함께하며 앞으로도 우리나라 사회와 역사 속 곳곳에서 살아 숨 쉬며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의 스승으로 기억될 것이다."

올해는 신 교수가 출소하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한 지 30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다. 추모식은 성공회 예배의식과 함께 영화배우 권해효의 사회로 추모영상 상영, 추모사 낭독, 추모연주 등으로 진행된다. 추모사는 △이인영 국회의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이혜숙 총동문회장 등이 낭독하고, 성공회대 교수밴드인 ‘더숲트리오’가 추모의 노래를 부를 예정이다. 이어 김창남 (사)더불어숲 이사장이 추모사업 경과를 보고한다.

찬 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도 신 교수를 기억하려는 추도객들이 모여 100여명이 넘게 들어가는 성당과 아래층에 마련된 260석 규모의 대강당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일부 시민은 선 채로 1시간 넘게 진행된 추도식을 지켜봤다. 이정구 총장은 “신영복 선생은 한 그루의 나무였지만 그 나무는 나무를 넘어 모든 이들에게 숲이었다”며 “선생께서는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올해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루라고 하실 것”이라고 전했다.

신 교수가 생전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며 동료·제자와 구성된 밴드 '더숲트리오'와 함께 '떠나가는 배'를 부르는 영상이 화면에 나오자 추모객들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과 콧물을 연신 닦아내기도 했다. 추모식에 앞서 추모전시회 개막식이 10일 동산방화랑(인사동)에서 (사)더불어숲 주최로 열린다. 전시회는 20일까지다. 이번 전시회에는 신 교수의 옥중 작품 17점을 포함한 서화 29점, 옥중 엽서 원본 10점, 옥중 낙관 등을 전시한다. 올해는 출소 30년, 유명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30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하기 위한 작품이 다수 전시될 예정이다.

성공회대 교목실장인 김은규 신부의 집례로 별세기도가 끝나고 나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먼저 추모사를 띄웠고, 박원순 서울시장·안희정 충남지사·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정치인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유 교수는 "선생님이 남긴 글과 글씨는 저 하늘의 별처럼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밝게 빛나고 있다"며 "힘들고 강박한 삶을 살면서도 선생님이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게 큰 힘이고 위안이었다"고 기억했다.

성공회대 교수회 의장인 백원담 교수는 이따금 눈물을 보이며 "대학은 10년, 20년 후의 삶을 내다보고 대안 담론·저항 담론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던 선생님의 뜻을 받들겠다"고 목이 잠긴 채 다짐했다. 유족을 대표해 강단에 오른 이정구 성공회대 총장은 "2년 전 오늘 학교장으로 선생님을 보내고 나서 유족을 대표해 이 자리에 섰다"며 "한시도 선생님이 남기신 가르침의 끈을 놓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성당으로 보내 고인의 넋을 기렸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1주기 추도식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15일 별세한 신 교수는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했으며, 2006년 정년퇴임 뒤에도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양성에 힘썼다. 2016년 1월 15일 별세한 故신영복 교수는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했으며, 2006년 정년퇴임 후에도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및 대학원 졸업 후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1988년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기까지 20년 간 수감됐으며, 1998년 출소 10년 만에 사면복권 됐다.

신영복 선생님은

8~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 중 많은 이가 삶의 지침서로 꼽는 책 중에 故 ‘쇠귀’ 신영복 선생님의 옥중수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있다. 결혼을 앞두고 미국에서 귀국한 1995년 1월, 나는 이 책을 폐포파립 현기스님의 추천으로 읽었다. 이 책은 1975년부터 1988년까지 쇠귀 선생님께서 본인의 부모님, 형수님, 계수씨 그리고 조카에게 보낸 엽서와 편지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감옥이라는 세상에서의 깨달음과 경험을 정리한 수필집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말씀이 옛 성현의 말씀이나 여타 삶의 지침서/철학서보다 더 큰 가르침을 주는 이유는 고귀한 지혜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어조의 문장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면 책장을 넘기는 것이 죄송해 눈을 감고 방금 읽은 내용을 마음 속 서첩에 한 폭의 그림으로 정리하는 나를 발견한다.

▲ 신영복선생의 감옥으로부터 사색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1968년 무기형을 받고 20년 20일을 감옥생활을 한 후 1988년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됐다. 쇠귀 선생님은 감옥이 ‘닫힌 공간’이 아닌, 우리 사회, 우리 시대와 가장 끈끈히 맺어져 있는 공간임을 인식하셨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깨달음을 얻으셨다. 운명인지, 대전교도소 수감 중에는 서예에 조예가 깊은 한학자 老村 이구영 선생님과 4년 동안 한 방 생활을 하셨다. 투옥기간 동양고전을 연구하시고 면벽명상과 성찰을 통해 큰 학자로 거듭나셨다. 원래 타고난 기량과 모양이 훌륭한 분이 거기에 가락과 장단을 얹어 큰 학문을 이루신 것이다. 쇠귀 선생님 본인도 감옥생활을 ‘대학기간’이라 부르셨다. 또 전주교도소 수감시절에는 7년 동안 일주일에 1회 靜香 조병호 선생님께 서예를 사사하셨고, 이를 바탕으로 당신 어머니의 서체에서 영감을 얻은 현대 대한민국 서예를 대표하는 ‘어깨동무체’(民體, 連帶體라고도 부름)를 완성하신다. 애주가들이 소주병에서 접하는 ‘처음처럼’이 바로 쇠귀 선생님의 글씨이다.

1995년으로 되돌아 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2~3주 정도가 지난 후, 나는 신영복 선생님의 제1회 개인서화전이 인사동 학고재화랑에서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한다. 大英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국내 서예작품 2점을 구매한 바로 그 서화전이다. 서화전 이틀째 되던 날, 나는 현기스님을 모시고 인사동으로 향한다. 한국전쟁 통에 당신 아버지를 잃은 내 어머니는 우리나라 산업화세대의 보수성향이었고, 따라서 당신의 아들이 통혁당 사건과 연루한 인사를 찾아가는 것이 몹시도 불편하셨다. 그러나 위대한 모성애로써 이를 극복하시고 마침내 아들과 동행하신다. 화랑에 도착한 세 사람은 쇠귀 선생님의 글씨와 그림을 두 시간 정도 관람한다. 어깨동무체에 올라탄 큰 가르침을 온 마음에 담았다. 관람 후 우리는 신 선생님과 화랑에서 가까운 전통찻집에서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내 어머니는 내 옆, 그러니까 신 선생님을 마주보는 자리에서 우리의 대화를 들으셨다. 선생님을 화랑에 모셔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홍서야, 우리 돌아가서 선생님께 주례 부탁드려볼까?” 꿈에도 그리운 내 어머니의 관세음보살 미소가 얼굴에 한가득 펴 있었다.

▲ 신영복선생의 나누야 나무야

신영복 선생의 사색이 담긴 저서나무야 나무야 이 책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옥살이를 했던 그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바쁜 현대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다양한 시각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살고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인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는 20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감한 신영복 교수가 출감 8년만인 지난 1996년에 발표한 에세이다. 이 책에는 그의 사색이 담긴 25편의 글이 담겨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것을 받아 ‘큰 바다’를 이룬 君子 신영복 선생님의 가르침 감옥 생활 동안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엮은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깊은 자기성찰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이후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신영복의 엽서》,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청구회 추억》, 《처음처럼》, 《For the First Time》, 《느티아래 강의실》(공저), 《신영복-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변방을 찾아서》,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등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2008년 ‘제3회 임창순상’, 2015년 ‘제19회 만해문예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 1월에는 1주기를 맞아 유고집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와 대담집 《손잡고 더불어》가 출간됐다.

김현태 기자  kimht10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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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애인 2018-02-05 22:41:22

    신영복선생님의 나무야나무야 를 읽고 느낀 감동을 깊게 각인하고싶어 필사를 하였습니다. 문장을 필사하다보니 내 두발로 선생님과 같은 장소를 거닐며 그곳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것처럼 더큰 감흥이 있었습니다. 읽고 필사하고 낭독하고를 반복하면서 선생님의 조용한 사색에 함께 할수 있는 행복을 가질수있었던 신년의 선물이었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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