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칼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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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 김덕권
  • 승인 2022.01.0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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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임인 년(壬寅年) 첫 시무식입니다. 새해 소망은 무엇으로 정하셨는지요? 저는 ‘사랑’으로 정했습니다. 사랑이 무엇일까요? 사랑은 섬김입니다. 저는 오랜 세월 ‘일체생령을 사랑한다.’는 다짐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제 생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릅니다. 생각해 보면 일체생령은커녕 지금 제 한 몸도 가누기 어려워 회한(悔恨)의 눈물만 흐릅니다.

한 여인이 말을 타고 전라도 일대를 한 달 여간 순회한 뒤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간호선교사로 조선에 발을 내디딘 ‘엘리자베스 쉐핑(Elisabeth Johanna Shepping,’ 한국명 서서평(徐舒平 : 1880~1934)의 기록입니다.

“이번에 만난 여성 500명 중 이름이 있는 사람은 열 명뿐입니다. 1921년, 조선 여성들은 ‘큰 년이’, ‘작은 년이’, ‘개똥 어멈’으로 불립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글을 가르쳐 주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서서평은 독일 출신의 미국 선교사로 한국 최초의 ‘간호선교사’로 파견되어 왔습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이 가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전염병으로 병자가 넘쳐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 눈과 마음을 뗄 수 없었던 그녀는 서양식 삶을 고수하던 여러 선교사와는 달랐습니다.

조선말을 익혀 ‘서서평’이라 이름 짓고, 한복을 입고, 된장국을 먹으며, 헐벗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선교사에게 주어진 하루 식비는 3원, 그러나 서서평은 10전으로 허기를 채우고 나머지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썼습니다. 걸인들을 데려와 씻기고 옷을 사 입혔습니다.

그리고 환자가 버린 아이들을 수양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데려다 키운 아이가 14명, 아이 낳지 못해 쫓겨나거나 오갈 데 없는 여인 38명도 거두어 보살폈습니다. 한번은 병원 앞에 버려진 아기를 어느 집에 맡겼는데, 잘 키우겠다는 약속과 달리 술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보고, 그동안의 양육비를 주고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서서평이 광주에 한국최초의 신학교인 ‘이일학교(裡一學敎)’를 1961년 전주로 이전, ‘한일장신 대학교’로 개명하고, 대한 간호협회의 전신인 ‘조선 간호부회’를 세운 것도 이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조선에서 이렇게 헌신하다 휴가를 받아 잠시 미국에 가 어머니를 만났을 때입니다. 고된 생활에 찌든 딸을 보고 “몰골이 부끄러우니 돌아가라!” 하며 매몰차게 외면했습니다.

서서평이 22년간의 조선에서 선교사의 생활을 하는 도중, 언제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부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은 영양실조로 삶을 마치고 세상을 떠날 때, 남긴 유품이 <강냉이 가루 2홉, 현금 7전, 반쪽짜리 담요 한 장>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거적 떼기를 덮고 자는 사람에게, 그녀의 담요 반쪽을 찢어주고, 남은 반쪽으로 가냘픈 몸을 가린 채 이 땅의 삶을 그렇게 마쳤습니다. 그의 장례 행렬을 뒤따르던 천 여 명은 통곡하여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그로부터 80여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서서평이 묻힌 광주광역시 양림동 뒷동산에는 그의 참사랑과 헌신을 추억하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침대 맡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Not Success, But serve)”

불가(佛家)의 용어에 ‘대자대비(大慈大悲)’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없이 크고 넓은 부처님의 자비. 한없이 크고 끝없이 넓어서 끝이 없는 불보살의 자비. 대원정각을 한 불보살이 중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일컫는 것이지요.

특히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불보살들이 우리 중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 소극적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을 비(悲)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대자대비는 모든 종교인이 갖기를 염원하는 공통적인 이상(理想)입니다. 또한 종교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마음인 것이지요. 그래서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대자대비에 대해 이런 법문을 내리셨습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는 저 태양보다 다습고 밝은 힘이 있나니, 그러므로 이 자비가 미치는 곳에는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이 녹아서 지혜로운 마음으로 변하며, 잔인한 마음이 녹아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변하며, 인색하고 탐내는 마음이 녹아서 혜시하는 마음으로 변하며, 사상(四相)의 차별심이 녹아서 원만한 마음으로 변하여, 그 위력과 광명이 무엇으로 가히 비유할 수 없느니라.”

이 모든 불보살의 염원이 다 이 대자대비를 갖추는 것이지요. 그런데 ‘일체생령을 사랑한다.’고 큰소리치던 이 못난 중생은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꼼짝도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앉아 회한의 눈물만 흘리고 있는 힘없는 늙은이로 보내는 것만 같아 한숨만 나옵니다.

이제 남은 소원이 있다면 어서 갔다가 어서 다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생에서 못 다한 <성공이 아니라 섬김의 삶>을 유감없이 펼치고 싶습니다. 누구나 다 이런 섬김의 살은 살아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덕화만발 가족 중, 단 몇 분이라도 저와 함께 이 ‘대자대비의 큰 사랑’을 펼쳐보면 어떨 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월 4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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