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칼럼] 우파와 좌파 혹은 보수와 진보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정책을 실시

우리 《덕화만발》의 <4대강령(四大綱領)>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중도(中道) 중화(中和) 중용(中庸)』입니다. 중도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 중간을 지향하는 태도나 경향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중도주의(中道主義)’는 우파와 좌파 혹은 보수와 진보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정책을 실시하자는 이념이지요.

중(中)과 화(和)는 중용의 두 가지 기본점이고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中’과 ‘和’를 연결시켜 ‘중화’라고 칭합니다. 그러니까 ‘중화’는 중용의 기본적인 주장인 것입니다. 이렇게 공자의 중용사상은 ‘和’에 관한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

공자는 《논어(論語)》 <자로편(子路編)>에서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요즘 대선 판에서는 이 중도주의를 실천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언론도 그렇고, 어느 모임에나 가면 양 극단으로 갈려 죽기 살기로 싸웁니다. 나라를 이끌고 국민을 위한다는 후보자와 그 추종자들이 국민들에게 안심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썩은 과일을 도려내면 먹을 것이 남지 않고, 미운 사람을 걸러내면 쓸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욕을 많이 하다 보면 욕에 둔감해지고, 매를 많이 휘두르다 보면 상대방의 아픔에 둔감해지기 마련입니다. 소중한 나의 것이 남에겐 하찮을 수 있고, 소중한 남의 것이 나에겐 하찮을 수 있습니다.

남 비판하는 자가 저 비판받는 줄은 모르고, 남 비난하는 자가 저 비난 받는 줄은 잘 모릅니다. 남을 잴 때는 성인군자의 도덕적 잣대를 쓰고, 자신을 잴 때는 흉악범의 잣대를 쓰면서 비난과 비판을 합리화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매사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처세하며 사는 것이 ‘중도’입니다.

그래서 선조들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을 그렇게 강조하셨나 봅니다. ‘중화중용’‘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황희(黃喜 : 1363년~1452년) 정승입니다. 자(字)는 구부(懼夫), 호(號)는 방촌(厖村)으로, 현명함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세종대왕의 가장 신임 받는 재상의 한 사람으로서, 세종 치세기간 중 역대 최장수로 18년 동안이나 영의정으로 재임하셨던 분이지요.

하루는 두 여종이 상대방이 잘못했다며 서로 다투는 것을 보고, 두 여종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은 후 한 여종에게 ‘네 말이 옳도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여종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자 역시 ‘네 말도 옳도다.’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부인이 “이 여종의 말도 옳고 저 여종의 말도 옳다면, 누가 잘못했다는 건가요? 한 여종이 옳다면 다른 여종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황희정승은 “부인의 말도 맞소.”고 하며 모든 사람의 손을 들어주어 누구하고도 적을 만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아들 황수신(黃守身)이 기생집에 자주 드나들자, 황희는 아들에게 기방(妓房)출입을 끊으라고 여러 차례 엄히 꾸짖었으나 아들은 말을 듣지 않았지요.

그러자, 어느 날 아들이 기생집에서 돌아오자, 황 정승은 관복 차림으로 차려입고 대문까지 나와 마치 큰 손님 맞이하듯 했습니다. 아들이 놀라 엎드리며 그 까닭을 묻자 황 정승은 말합니다. “그동안 나는 너를 아들로 대했는데, 도대체 말을 듣지 않으니, 이는 네가 나를 아비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너를 손님으로 맞는 예로 대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크게 뉘우친 아들은 기방 출입을 끊고, 학문에 매진함으로써 아버지를 이어 세조시대에 큰 재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중화중용’은 쓰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삶의 지혜가 될 수도 있고, 줏대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도’를 지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덕화만발 가족은 <덕화만발의 4대강령>대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평범함 속에서 진실한 도리를 찾아가는 처세로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 중도주의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제(二帝)와 삼왕(三王)은 이 마음을 보존한 이요, 하걸(夏桀)과 상수(商受)는 이 마음을 잃은 이라는 말씀이 돌아오는 시대에 큰 비결(秘訣)이 되리라.

부귀와 권세를 탐하여 마음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장차 집이 패하고 몸이 망할 뿐 아니라, 국가나 세계의 영도자가 그러하면, 그 화가 장차 국가와 세계에 미치리니, 그대들은 부귀와 권세에 끌리지 말고, 오직 의·식·주생활에 자기의 분수를 지켜서 본심을 잃지 아니하여야, 어떠한 난세를 당할지라도 위험한 일이 없을 것이요, 따라서 천지의 좋은 운을 먼저 받으리라.」

어떻습니까? 이렇게 중도⸳중화⸳ 중용지도를 외면하고, 한쪽에 치우쳐 극단으로 치닫는 다면, 장차 집이 패하고 몸이 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부터 이 <중도주의>로 가정과 사회, 국가에 안정을 꾀하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월 1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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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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