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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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끈
  • 김덕권
  • 승인 2022.01.25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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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인과응보의 원리 법칙

인생을 살만큼 산 저는 참 많은 인연을 맺고 살아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많은 인연 중에 제가 먼저 떠난 인연도 있고, 나를 떠난 인연도 많습니다. 더군다나 《덕화만발》을 시작한지 15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저를 스쳐간 인연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가슴이 쓰라릴 때가 많았습니다. 서로 믿고 아끼던 사람이 어느 날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날 때에는 가슴이 쓰리다 못해 아프기 짝이 없습니다. 그야 물론 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떠났을 것입니다. 아니면 자신의 실수 때문에 떠난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직까지 저는 그 ‘인연의 끈’을 끊어내지 못합니다. 어쩌면 영생을 통해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제 아내 정타원(正陀圓)이 택배가 올 때마다 가위를 찾아 포장된 끈을 자르려는 저를 말립니다. 그리고 손수 매듭을 풀어 그 끈을 꼭 모아둡니다. “잘라버렸으면 쓰레기가 되었을 텐데 예쁜 끈이니 나중에 다시 써먹을 수 있잖아요!” 하고 웃습니다.

인연도 마찬 가지입니다. 잘라내기 보다 푸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 것이지요. 혹시나 얽히고설킨 삶의 매듭들이 있다면,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인연과 연분 속에서 더불어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잠시의 소홀로 연이 끊겨 후일 아쉬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영생을 사는 동안 그 인연을 언제 어디서 또 만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인연의 끈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것입니다. 인연은 이유가 붙지 않는 그냥 좋은 사람이 가장 좋은 인연입니다. 이유가 붙어 좋아하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서 그 이유가 없어지게 되는 날, 그 이유가 어떠한 사정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는 날, 얼마든지 그런 사람은 떠날 가능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말리지 않습니다. 언제나 서로 오해가 풀리면 다시 돌아 올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인연의 끈을 싹둑 자르지 않고 그 끈을 고이 간직해 두기 때문이지요. 그래야 한번 맺은 인연이 영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목마르지 않다 하여 우물에 돌을 던지면 안 됩니다. 오늘 필요하지 않다 하여 도반 동지를 외면하면 안 됩니다. 오늘 배신하면 내일은 배신당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연의 법칙입니다. 그 법칙을 모르고 자신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도움 주었던 사람들을 까맣게 잊고 배은(背恩)하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 올 때만 이용하는 우산처럼, 사람을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배신해 버리는 행위는 참으로 무참한 일입니다. 우물물을 언제든지 먹기 위해서는 먹지 않는 동안에도 깨끗이 관리해 놓아야 하듯이, 필요할 때 언제고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동안에도 인연의 끈을 자르지는 말아야 합니다.

한번 맺은 인연은 소중히 간직하여 오래도록 필요한 사람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등을 돌리면 상대방은 마음을 돌려 버리고, 내가 은혜를 저버리면 상대방은 떠나가고, 내가 배신하면 상대방은 아예 무시하는 태도로 내게 맞섭니다. 만남의 인연은 소중하게 하고 인연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우주의 진리는 원래 생멸(生滅)이 없이 길이 돌고 도는 지라,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 되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되며, 주는 사람이 곧 받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이 곧 주는 사람이 되나니, 이것이 만고에 변함이 없는 상도(常道)니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인과응보란 인과(因果)의 법칙’입니다. 곧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 말과 행동들이 인(因)이며, 이것들이 나중에 어떤 연(緣:조건)을 만나 그에 상응하는 과(果)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인과응보의 원리’는 네 가지 법칙에 의해 작동됩니다.

첫째,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남을 괴롭히면 미래의 불행을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 현재는 괴롭더라도 그것을 참고 견디면 미래가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셋째, 선(善)한 일을 한 결과로 미래에 더 좋은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넷째, 나쁜 짓을 한 결과로 나중에 고약한 과보를 받는 것이지요.

이 네 가지 길에서 우리가 결코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또 정의나 의리를 내세우면서 남을 이용하는 일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선인선(善人善果)과 악인악과(惡人惡果)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인(因)과 연(緣)을 자신이 만들며, 그 과(果) 또한 자신이 받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세계를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인연이라는 예쁜 끈을 무 자르듯이 싹둑 잘라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곱게 풀어 고이 간직하는 것입니다. 영원을 사라아가는 우리에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또다시 만나 무슨 일을 도모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월 2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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