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한 러시아미술품 공인감정사 이리나 디미트리예비치
탄탄한 리얼리즘 전통 현대미술로 승화돼...경쟁력 갖춰

[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최근들어 러시아 미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높은 그림 수준에 비해 저렴한 작품 값이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회도 많아지면서 러시아 미술애호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컬렉션을 가지고 있는 mM아트센터 초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이리나 디미트리예비치(Ирина Димитриевич, Irina Dimitrievich) 러시아 문화부 소속 문화유산 공인감정사로부터 구소련과 러시아미술 현황에 대해 들어보았다.

30년간 러시아미술품 감정사로 활동해 온  이리나 디미트리예비치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후 현대의 러시아 미술은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나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1960년대에 소련에서는 비공식적 예술 (언더그라운드, 비순응 예술)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비공식적 예술은 당시에 계승되고 있던 리얼리즘 화풍으로 그려진 작품들이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금기된 예술활동이었습니다.

스탈린 시대에 화가들은 많은 압박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작가들은 리얼리즘 화풍으로만 작품을 제작했어야 했는데, 예를 들면 소련 연방에서 살면서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주제와 같은 작품들만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스탈린 시대 이후에는 해빙기가 소련에 찾아왔으며, 이 시기에 예술가들은 리얼리즘 화풍을 반드시 계승해야 하지도 않았고, 본인이 원하는 창작 활동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는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흐루쇼프가 한 전시회에서 어떤 현대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작품은 흐루쇼프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로 인하여 다시 작가들에게 압박이 가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스탈린 시대만큼 엄격하게 통제가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 시기에 많은 작가들이 해외로 이민을 가기도 하였고, 통제로 인해 작품을 출품할 수 없었던 작가들은 일러스트나 잡지에 작품을 실으며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많은 외국인들은 소련 작품에 큰 관심을 보였고, 비공식적 예술로 표현한 작품들을 자주 사가곤 하였습니다. 소련 작가들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 외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 (미국, 독일 등)로 작가를 초청하여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게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는데, 바로 이러한 경로를 통해 소련 예술이 다른 나라에 더욱 활발하게 소개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러시아 미술계에서는 리얼리즘 화풍을 계승하여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비공식적 예술로 창작 활동을 하던 작가들이 아직도 생존하고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 러시아 미술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대 러시아 미술은 다른 나라의 현대 미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 장르와 형태를 통하여 예술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죠.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 러시아의 작가들은 세계 곳곳을 다니며 직접 눈으로 전 세계의 미술을 접했으며, 예전과 다르게 무조건적으로 리얼리즘 화풍을 계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본인이 원하는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러시아에서는 전통적인 리얼리즘 화풍을 계승하여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도 볼 수 있고, 혹은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표현을 하며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볼 수 있습니다."
 
이리나가 추천한 옐리쿠카 작품.
이리나가 추천한 옐리쿠카 작품.  옐리쿠카는 1985년생 작가 올렉 옐리세예프 (Олег Елисеев, Oleg Yeliseev) 와 1984년 작가 예브게니 쿠코베로프(Yevgeny Kukoverov)로 이루어진 아트 듀엣이다.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은 매우 우수하지만 서구에 비해 저평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서구작가들과 비교해서 현재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어느 정도로 형성되어있나요?

” 현재 러시아 미술시장은 좋지 않습니다. 이는 정치적인 상황, 세계적인 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는데, 현재 러시아의 미술시장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작품 가격이 크게 하락한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작가들에게는 작품을 판매하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고, 반대로 컬렉터들에게는 작품을 구입하기에 좋은 시기입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타계하신 올렉 첼코프(Олег Целков, Oleg Tselkov)라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감정사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가끔씩 작품을 평가해달라고 의뢰가 들어오는데요. 약 10년전에 어떤 분이 저에게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해 평가해달라고 의뢰가 들어왔었고, 그 당시에 그 작가의 작품 가격은 대략 30만-40만 파운드였습니다. 최근 5년간 이 작가의 작품 평가 의뢰가 다시 들어왔었는데, 가격이 대략 3만-4만 파운드로, 10분에 1정도로 가격이 떨어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30만-40만 파운드에 거래가 된 작품들은 작가의 작품들 중 가장 우수한 작품들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작품 가격이 근래에 들어 현저히 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반면에 매우 유명한 작가들의 명작들은 작품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은 계속해서 소더비나 크리스티와 같은 경매회사에 출품 되고 있기 때문이죠.

여러상황을 고려할 때 올렉 첼코프 같은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은 오히려 지금이 구입 적기로 보고 있습니다. 저평가된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가격은 이제 바닥을 쳤다고 생각합니다. 상승세만 남기고 있지요. 러시아미술의 질과 저력을 주목해야 합니다.“

- 러시아에 활동하는 작가들 중에 말레비치,칸딘스키의 후예들이 있나요?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러시아 작가들은 말레비치의 스타일을 계승하고자 하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는 2년마다 한 번씩 우수한 창작 활동을 하는 현대 미술 신진 작가(40세까지)에게 말레비치 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매년 현대 미술 작가에게 칸딘스키 상이 수여가 됩니다. 칸딘스키 상은 현대 미술계에서 영국의 터너상, 프랑스의 마르셀 뒤샹상과 함께 가장 중요한 상중에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리얼리즘 화풍으로 창작 활동을 하든지 아니면 리얼리즘 화풍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을 하든지 간에 모든 작가들은 말레비치의 후예자라고 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말레비치는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언어, 자신만의 철학을 탐구하며 발견한 작가이고, 모든 작가들도 말레비치처럼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 탐구하며 창작 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 소련이 붕괴 된 이후에 각각의 나라들이 독립되었는데, 이 독립 국가들의 미술을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소련 시절에 소련의 많은 지방에서는 국립 예술전문 학교가 존재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도시에서 전통 리얼리즘 화풍을 계승한 예술가들이 지방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1940년대 전쟁이 만연하던 시기에는 많은 작가들이 중앙 아시아로 이주하였고, 그 곳에서도 예술 학교를 세우며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죠.

그 이후에 소련 정부는 국민들이나 작가들에게 예술을 교육하기 위하여 각각의 지방에 질 높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레핀과 같은 19세기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도 많은 지방 미술관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아직도 수 많은 지방 미술관에서 유명 작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보면, 소련 시절에 예술과 관련된 정책은 장점도 존재했습니다. 많은 지방(현재는 러시아 내 공화국 혹은 구소련 독립 국가들)의 미술들이 성장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인프라가 갖춰진 것이지요. 현재까지도 이 시기에 교육을 받은 많은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소련이 붕괴되었다고 해서 소련 예술도 함께 붕괴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각각의 나라(소련 시대 때는 지방, 현재는 독립된 나라)에서 자신들만의 미술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소련 시대 때 각각의 지방들에 예술과 관련된 기본 인프라를 제공한 것이 바탕이 되고 있지요. 물론 현재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소련 시절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슬람 고유의 미술이 생겨나 발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러시아 현대 미술의 경쟁력과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러시아 현대 미술 중에서 리얼리즘 화풍을 계승한 작가들의 작품들은 매우 수준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는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표현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학생들을 양성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에서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어떤 창작 활동을 하던 상관하지 않지만 최소한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의 기본 베이스는 리얼리즘 화풍을 계승 받아 최상급 실력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술전문 학교들과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습을 통해 꾸준히 엄격한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만약 리얼리즘 화풍을 계승 받아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면 예술 특화 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한 언어에서 문자 10개밖에 모른다고 가정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 언어의 모든 문자를 알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죠. 모든 문자를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든 문자를 통해 표현을 할 수가 있고, 문자를 10개밖에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문자 범위 내에서 의견을 표현해야 합니다. 러시아 예술전문 학교도 이와 같습니다. 미술에 대해서 모든 것을 가르친 다음 각각의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게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줍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우위점입니다. 각자의 아이덴티티나 재능에 따라 아무도 그들이 나중에 어떤 창작 활동을 하며 무엇을 달성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러시아의 예술 학교에서 리얼리즘을 계승한 학생들과 신진 작가들의 작품 질은 전 세계와 비교해봤을 때 러시아만큼 높은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리나가 추천한 리사이클 그룹  작품
이리나가 추천한 'Recycle Group'  작품.      Recycle Group은  1987년생 작가 안드레이 블로힌 (Андрей Блохин, Andrey Blokhin)과 1985년생 게오르기 쿠즈네초프 (Георгий Кузнецов, Georgy Kuznetsov)로 이루어진 아트 그룹이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과 과도기의 러시아 시절 많은 작품들이 여러 나라로 유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과 어떠한 작품들이 세계 곳곳에 흩어졌는지 궁금하네요. 

”러시아 혁명 (1917년) 이후인 1920년부터 해외로 많이 나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생 정부에서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돈이 되는 예술품들을 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유럽이나 아메리카와 같은 대륙으로 많은 양의 작품들이 정부에 의해 팔려나갔지요. 주로 미술관 급 작품들이 반출됐습니다. 그 이후에는 궁핍한 생활을 하던 작가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하나 둘씩 모여서 대규모 전시회를 해외에서 열었습니다. 이런 전시회에 작품을 보내고 판매를 하여 생활을 이어나갔지요.

닫혀있던 사회였지만 소련 시절에는 국외로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정부 기관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소련예술품수출협회로 1920년대-193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하였고, 주로 1970~198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습니다. 리얼리즘 화풍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된 mM아트센터 컬렉션도 소련예술품수출협회를 통해 구입한 것입니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 1990년대에 소련예술품수출협회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2016년에 기업이 청산되었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활동하지 않았지요.

소련예술품수출협회는 소련 시절에는 국외로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관이었습니다. 작품을 해외로 판매할 수 있는 방법이 이 기관을 통해서 판매하는 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소련 시대의 작가들은 이 기관에 본인들의 작품을 선보여 판매하는 것을 매우 강렬하게 원하곤 하였습니다. 해외에 수출이 되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작가가 작품을 출품하는 것에는 여러 조건이 따랐습니다. 예를 들면 소련예술품수출협회에 출품하는 작가들은 모두 소련 예술가 연맹 회원이어야만 했고. 이렇게 모아진 여러 작품들을 내부에서 2-3단계 심사를 거쳐 수출할 수 있는 작품들이 최종적으로 선정됐지요.“

-현재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 반출은 자유로운 편인가요?

” 현재 러시아에서 이 문제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일단 작품이 제작된지 50년 미만이면 자유롭게 반출이 가능합니다. 작품이 제작된지 50년이 넘었다면 저 같은 감정사의 감정서를 기반으로 하여 러시아 문화부에서 반출 허가증을 받아야 합니다.“

-어느 나라나 작품 값이 비싼 작가들의 작품은 생존 작가일지라도 가품이 만들어지곤 합니다. 러시아 감정사들은 이러한 가품을 어떻게 통제하고 계신가요? 

” 진품과 가품을 구별하기 위하여 5년, 6년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저 같은 전문 감정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간혹 눈으로 보기만해도 바로 가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있죠. 하지만 때때로 판별이 어려운 경우, 진품과 가품을 구별하기 위하여 특수 장비나 기계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도 판별이 어려운 경우에는 진품과 가품을 전문적으로 판별하는 연구소에 보내지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현재는 기술이 매우 발전해서 가품을 비교적 쉽게 잡아낼 수 있기 때문에 가품을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주로 유명하거나 인기 있는 작가들의 가품이 제작되는데, 감정사들은 작품에 사용된 재료, 프로비넌스(출처), 작가의 생애, 작가만의 스타일을 보고 대부분의 가품들을 판별해낼 수가 있습니다.

작가의 유족들이 돈을 벌기 위하여 가품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고, 미완성이었던 작가의 작품을 찾아내 유족 등이 마무리를 해 속여서 판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완전한 진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감정사와 같은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구매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푸틴을 만나고 있는 이리나의 외삼촌인  러시아 인민예술가 세르게이 카잔체프(왼쪽) 

국립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이리나 디미트리예비치는 모스크바시 문화유산보존 부서에서 예술 평론가, 감정사로 근무했다. 현재는 러시아 문화부 소속 문화유산 공인감정사로 활동하고 있다. 미술관들이 구입한 작품에 감정서를 작성해 주거나 개인이나 법인의 작품 국내 반입, 국외 반출 감정서나 일반 작품 감정서를 작성하는 일을 지난 30년간 해 왔다. 러시아 인민예술가 세르게이 카잔체프 (Сергей Казанцев, Sergei Kazantsev,조각가)가 그의 외삼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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