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문학개론 한 번 읽어보지 못한 문외한이 한때, <원불교문인협회장>을 무려 6년간이나 역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처음 중앙에만 있던 ‘문인 회’를 전 세계의 <원불교 문인협회>라는 조직으로 발전 시켰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에는 기껏 연애편지나 써본 정도의 글 솜씨였습니다. 그런 제가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歸依)하고, 당시 제가 다니는 <원불교여의도교당>에 회보(會報)가 없는 것이 안타까워, 『원불교 여의도회보』를 창립하고 편집장을 맡아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 딴에는 시집(詩集) 3권을 비롯해 무려 열 네 권의 책을 발간했습니다. 그럼 이제 저도 작가이고, 칼럼니스트이며, 시인이 아닌가요? 그 문인협회장 시절 접한 ‘재미난 시 한편’을 소개 합니다.

충남고교 여교사 ‘이정록 시인’이 쓴 <정말>이란 시입니다. 남편을 일찍 여읜 슬픔을 역설적이고, 풍자적이며,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시이지요. 읽다보면 마음이 쨘 해지는, 전혀 외설(猥褻) 스럽지 않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시입니다.

시(詩)/ <정 말> -이정록-

「‘참 빨랐지! 그 양반‘/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 자/ 물어 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 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길에 젖가슴이/ 치근대니까/ 피가 아랫도리로 쏠렸던가 봐/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얼굴을 덮더라고/ 그 순간 수욱~이게 이년의 운명이구나 싶었지/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번에/ 끝장이 났다니까!

초 조루증/ 꽃무늬 치마를 입은 게/ 다행이었지/ 풀물 핏물 찍어내며/ 훌쩍거리고 있으니까/ 먼 산에다 대고 그러는 거여/ 시집가려고 나온 거 아니였냐고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하늘이/ 밀밭처럼 노랗더라니까/ 내 매무새가/ 꼭 누룩에 빠진 흰 쌀밥 같았지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 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 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어떻습니까? 이 장시(長詩)가요! 이 시 참 재미있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이토록 슬픈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을까요? 두 분이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마시고 오토바이에 맞선 녀를 번쩍 안아서 태웠을까요.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후다닥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 번에 벌써 끝장이 났다니까”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 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첫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마지막 3연이 절창입니다.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그야말로 절묘한 묘사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가 나옵니다.

분명 슬픈 이야기인데, 어쩌면 이렇게 슬픔을 웃음으로 단박에 바꿔칠 수 있는 걸까요?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 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 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그리고 마무리는 정말 날랜 양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빨리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힘이라니, 정말 놀라운 내공으로 가득찬 시인의 넉살 때문에 많이 웃었습니다.

시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짧은 시 속에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에는 우리네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데 있습니다. 우리 가끔은 허리띠를 풀어 놓고 한바탕 크게 웃어 보면 어떨 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1년, 원기 107년 3월 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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