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늦은 때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젊어 한때, 힘든 인생을 살다가 천만다행하게도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歸依)해 이 나이까지 낙도생활(樂道生活)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스승님께서는 “지옥에 퐁당 떨어지는 걸 건져 내었으니, 행복 값을 내 놓으라.”며 웃으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지옥에 퐁당 떨어질 만한 완강한 중생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오늘의 행복을 누리는 것은 지칠 줄 모르는 정열(情熱)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먹은 마음 변치 않는 정성 때문이었지요.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거나 탐스러운 과일이 달린 나무 밑에는 어김없이 길이 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기 때문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향기 나는 사람에게 사람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은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상대를 위해 넉넉하고 너그럽게 베푸는 인품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 사람이 향기 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한결같은 정성으로 일을 <지성여불(至誠如佛)>의 정신으로 추진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이지요. 한 번 준 마음 영원히 이어가는 사람이 향기 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건 바로 고통을 참아내는 인내심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창작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저처럼 졸문(拙文)을 쓰는 사람도 덕화만발 이라는 글을 매일 쓴다는 것은 말 못할 인내심과 고통이 수반되지 않으면 쓰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불후(不朽)의 명작을 써내는 소설가의 작업은 인내심 그 자체라고 합니다.

수천 매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한 글자 한 글자씩 매일 써 내려가야 합니다. 요리사, 운전기사, 노동자, 농부 등, 수많은 직종의 사람들이 인내를 기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인내가 가장 필요한 곳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을 버텨주는 힘이기 때문이지요.

바로 그 인내를 통해서 우리가 목표하는 일들이 성공으로 다가옵니다. 영국의 정치인이자 정치철학자인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1729~1797)‘는 “힘보다는 인내심으로 더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단계 변하고 싶다면, 먼저 지금의 나약한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더불어 실패를 두려워 말아야 하지요.

왜냐하면 실패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삶에 늦은 때란 없습니다. 저도 45세 때에야 비로서 대도 정법 회상(大道正法會上)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칠전팔기(七顚八起) 끝에 오늘의 영광을 차지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가슴을 뛰게 하는 원대한 꿈을 가집시다. 우리 그 꿈의 실현을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인생은 곱셈이라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큰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정작 자신이 제로(0)가 되어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한 글자로는 ‘꿈’이요, 두 글자로는 ‘희망’이고, 세 글자로는 ‘가능성’이며, 네 글자로는 ‘할 수 있어’라고 합니다.

이 네 가지 목표는 ‘빈 마음’ 즉, 무심(無心)이 되지 않으면 이룰 수 없습니다. 빈 마음이란 우리들의 본(원래)마음입니다. 무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닙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서 울림이 전해지듯,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를 띨수 있는 것이지요.

봄꽃으로 기쁨을 주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가 분노와 질투로 좋은 시간 낭비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슬프겠습니까? ‘인생은 고해’라고 했습니다. 고통의 바다! 이런 고해의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근심과 걱정은 삶의 과정이고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 이 과제를 불행이라 여기며 피할 것이 아니고, 안으로 파고들어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을 지키는 것도, 적당한 스트레스가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차라리 그 스트레스를 즐길 줄 알아야 건강을 잃지 않는 아이러니가 있는 것이지요.

아무 걱정 없는, 아무 스트레스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삶을 즐길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노풍당당(老風堂堂)’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몸은 늙어 가도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노인의 모습에는 편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노년의 향기는 얼굴 모습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지요. 노년의 향기는 그것은 오래 살아본 삶에서 배어나는 향기입니다. 애써 걷어 들인 풍족함이 아니라, 인고(忍苦)로 견디어 온 초월함과 여유입니다.

삶의 성숙은 곧 오래된 향기로 남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향기는 노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요? 노년의 성숙함은 다음 세대를 위한 희생입니다. 그리고 기다림입니다. 젊음의 상징이 아름다움이라면, 노년의 상징은 원숙함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향기입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용서하며 내어줄 수 있는 것. 그것은 일체중생(一切衆生)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삶에 늦은 때란 없습니다. 비록 몸은 늙어도 노풍 당당하게 나의 길을 걸어가면 어떨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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