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5월 16일 충남 보령 갤러리 벨라코스타 초대전
말고 꼬는 무한반복의 몰입 작업으로 피안세계 구축
김환기의 '우주'연상 ...검박한 미니멀리즘 미학 추구

[서울 =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그림이 내게 걸어왔다. 아니 달려왔다. 17일부터 5월 16일까지 충남 보령 갤러리 벨라코스타 초대전을 갖는 지정연 작가의 말이다. 경북 상주 외서면 산골 마을, 기찻길이 멀리 보이는 과수원집 막내딸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 철커덕 철커덕 길게 꼬리를 물고 산허리를 돌아 기차가 머리를 보이면, 시장에 사과를 팔러갔던 엄마를 향해 기차역으로 내달렸다. 작은 두발이 땅에 닿지 않을 속도의 그리움으로 기차보다 빨리 기차역에 도착하고 싶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기차길과 기차소리는 예민한 그리움이 되어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이제 그토록 그리워 했던 것들은 그를 두고 모두 떠났다. 어느날부터 그 빈자리에 그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림의 어원이 그리움에서 나왔다고 하니 어쩌면 자연스런 현상일지 모른다.

“우리 인생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덧없이 짧다는 것을 나이 50줄에 들어서야 비로서 체감하게 됐다. 누구나 그렇듯 우산 없이 비를 맞아야 하는 날도 있었고, 속옷 바람으로 함박 눈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날들도 있었다. 견뎌낸 세월이 때론 누더기옷처럼 몸을 칭칭 감기도 한다.”

한지를 '그리움의 대상을 환기시키는 매체'로  사용하고 있는 지정연 작가.
한지를 '그리움의 대상을 환기시키는 매체'로 사용하고 있는 지정연 작가.
별밤
별밤

그가 오십 줄에 걸터앉아 턱에 차는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어렸을 적 허름한 초가집에서 새어나오는 따스한 불빛과 찬바람을 막아 주던 한지가 마음의 바람막이 같이 다가왔다.

“엄마 품 같이 따듯한 그 아이(한지)가 떠난 그리움(엄마)으로 사박사박 다가 와 슬그머니 손을 잡아 나를 이끌었다. 함께 가보자고...”

그는 하던 일을 모두 접고 ‘한지’를 따라 나섰다. 그의 그림인생의 시작이었다. 작업도 붓이 아닌 손끝으로 한지를 말아 화판에 붙이는 방식이다. 먹을 머금은 듯한 한지와 색한지,그리고 한지를 꼬아 만든 지끈으로 화폭을 구성한다.

와류
와류

한지는 은은하고 부드럽지만 질긴 성질을 갖고 있어 엮고, 구기고, 말고,비틀어서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가변성의 물성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무한반복의 몸노동만이 이를 제대로 다를 수 있다. 장인정신이 요구된다는 얘기다.

“고된 작업 끝에 탄생된 나의 작품은 지난 실패의 과거를 이해하게 하고, 모든 아픔을 치유해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했다. 장인적인 노동은 늘 새로운 사유를 촉진시킨다. 그리고 이런 노동 속에서 나오는 사유는 삶에 굳건한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 같다.”

심안의 눈
심안의 눈

그는 요즘 한지를 더욱 가늘게 말아간다. 몰입도를 최고조로 몰아가 그 어떤 한 지점에 이르겠다는 의지다.

“가늘다는 것은 최적의 상태에서 얻어지는 ‘적절히 비어 있는 검박함’이라 할 수 있다.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하고 난 후 비로소 얻어지는 아름다움이다.  단순함에서 우러나는 미(美)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맥락이라 하겠다."

하모니
하모니

작가는 지끈의 끝에 색을 찍어 발라 한지로 말아서 화판에 붙여나가기도 한다. 마치 지끈의 끝이 점이되어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듯하다. 점으로 수놓은 김환기의 ‘우주’를 연상시킨다.

“보는 이들에게 각자 필요한 위로와 평안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따듯한 피안의 세계가 됐으면 한다.”

그의 그림은 이제 그리움을 넘어  심상을 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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