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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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죽을 준비
  • 김덕권
  • 승인 2022.04.18 2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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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살다 가는 것도 실력입니다. 잘 살다 가려면 ‘잘 죽을 준비’를 평소에 준비해 두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럼 잘 죽을 준비는 어찌하면 좋을까요? 끝까지 존엄하게 살다 가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요?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육도와 사생(六道四生)의 세계를 널리 알지 못하면, 이는 한편 세상만 아는 사람”이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인간은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생각하고 거기에 몰두하고 집착하여 정열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도무지 죽을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이지요. 최소한 우리는 첫째는 평소 생사 교육을 해두는 것이고, 둘째는 장례와 관련된 문제를 준비해두는 것이며, 셋째는 천도(薦度)와 사후와 관련된 문제를 준비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잘 죽을 준비해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반년 전 암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갑자기 닥친 죽음 앞에서 당황할 법도 하지만, 그분은 차분히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했습니다.

첫째, 미리 재산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혼자 살 아내를 위해 자그마한 집으로 이사를 하고, 재산을 정리해 자식들에게 선물처럼 조금씩 나눠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이런 말씀을 남기셨지요. “사람은 마지막까지 잘 아파야 하고, 잘 죽어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플 때 쓸 비용, 죽을 때 쓸 비용을 다 마련해 놨다.

너희들 사는 것도 힘든데 부모 병원 비용까지 감당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냐? 아버지가 오랫동안 준비해 놨으니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나 죽기 전까지 얼굴만 자주 보여줘라.”

둘째, <의료거부 의정서> 작성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스스로 다니던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의료거부 의정서>를 작성해 두었기 때문에 임종을 앞두고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셋째, 유언을 해 두는 것입니다.

생전에 가족들에게 각각의 영상편지를 남긴 것입니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그리고 손자들에게 가슴 뭉클한 작별인사를 하며, 영상 끝에 이런 당부를 남기셨다고 하네요.

“사랑하는 딸아! 아버지가 부탁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하늘을 봐라! 아버지가 거기 있다. 너희들 잘되라고 하늘에서 기도할 테니, 꼭 한 달에 한 번씩은 하늘을 보면서 살아라. 힘들 때는 하늘을 보면서 다시 힘을 얻어라.”

그분은 자식들에게 마지막까지 존경스러운 스승의 모습으로 살다 가신 것입니다. 어떻게 아파야 하는지, 죽는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존엄성을 지키면서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신 것이지요.

우리는 주로 뭔가를 ‘시작할 때 준비라는 단어를 붙입니다. 그러나 마무리에는 준비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식들 공부시키고 먹고 살기 바쁜 현실을 버티다 보면 어느새 거짓말처럼 노후가 눈앞에 다가옵니다. 그때부터라도 우리는 정말 ’잘 죽을 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식들 형편에 따라서 아프고, 자식들 돈에 맞춰서 병원에 끌려 다녀야 합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존엄성이 사라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있는 대로 자식들에게 주지 말고, 내 자존감을 지키며, 마지막을 잘 정리할 수 있는 비용을 반드시 남겨둬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평소 자녀에게 후회와 원망 대신 아름다운 추억과 스승다운 모습을 남길 수 있도록,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면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마지막 실력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게 어디 보통 실력인가요? 나이 들수록 부지런히 수행하며 생사연마를 하지 않으면 그런 내공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수행을 스승도 없이, 전문적인 공부도 없이 스스로 배우고 깨닫기는 아마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당(敎堂)에 가서 도반 동지들과 함께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담긴 진짜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이지요.

그런 생사 공부 없이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평소 죽음에 대해서 완전히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죽음이 닥쳐서야 종종걸음을 치는 것입니다.

범상한 사람들은 현세(現世)에 사는 것만 큰일로 알지만, 지각이 열린 사람들은 죽는 일도 크게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 죽는 사람이라야 잘 나서 잘 살 수 있으며, 잘 나서 잘 사는 사람이라야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조만(早晩)이 따로 없습니다. 나이가 사십이 넘으면 죽어 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여야 죽어 갈 때에 바쁜 걸음을 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따라 소태산 부처님의 법문이 가슴에 사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떻습니까? 어제도 40년을 함께한 도반 한 분이 열반에 드셨습니다. 잘 죽고, 잘 오는 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하는 ’진짜 실력‘이 아닐까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4월 1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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