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예졸물공(銳卒勿攻)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뉴스프리존] ‘손자병법’ ‘군쟁편’에서 제기하고 있는, 용병 8원칙 중 하나다. 간단하게 말해 적의 강한 부분이나 날카로운 곳은 공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손자는 ‘피기예기, 격귀타귀’의 원칙을 제기한 바 있다.(‘피기예기, 격기타귀’ 참조)

‘예졸(銳卒)’이란 적의 ‘사기’를 가리킬 뿐 아니라, 특히 적 부대의 우수한 장비‧평소 훈련‧우수한 병사 등과 같은 부분을 가리킨다. 이런 적에 대해서는 잠시 피했다가 기회가 무르익은 다음에 공격해야 한다.

‘관자(管子)‘ ’제분(制分)‘을 보면, 적을 공격할 때 강하고 날카로운 부분을 공격하는 것은 못 끝을 때리는 것과 같이 장애에, 부딪치지만 약한 곳을 공격하면 성공하기 쉽다는 요지의 내용이 있다. ’예졸물공‘은 우리들에게 강한 적군에 대해서는 강공을 취하지 말고 가능한 한 피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29년, 광무제 유수는 마무‧왕패 등으로 하여 봉기군을 공격하도록 했다. 2월, 봉기군의 장수 소무(蘇武)가 오교병(五校兵)을 이끌고 구원했다. 소무와 주건의 군대는 연합하여 마무의 군대를 공격했고, 마무의 군대는 참패했다. 일부 병사들은 왕패의 군영으로 몰려와 구해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왕패는 냉정히 거절했다.

“오교병의 기세가 저렇듯 사나우니 우리가 섣불리 나서 싸웠다간 깨질 것이 뻔하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적을 상대하게 놔두는 것이 상책이다.”

왕패는 전군에게 철저한 방어 태세를 취하라고 명령했다. 일부 장수들이 출격을 주장했지만 왕패는 여전히 거부했다.
“소무의 군대는 현재 그 기세가 대단하니 우리가 나가 싸워봤자 패할 것이 뻔하다. 우리는 지금 이 자리를 고수할 것이며 구원하러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 적은 경솔하게 공격해올 것이고, 마무의 군대도 구원의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 지금보다 더 힘을 내서 분투할 것이다. 그리하여 소무의 군대가 피로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 허를 찌르면 승리할 수 있다.” 

얼마 후 왕패의 부하 장수 수십 명이 삭발까지 하고 싸우겠다고 나섰다. 그제야 왕패는 정예병을 이끌고 소무의 배후를 공격했다. 소무와 주건은 앞뒤에서 공격을 받고 혼란에 빠져 패주했다.

얼마 뒤, 소무와 주건은 다시 군사를 모아 도전해왔다. 그러나 왕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병사들을 위로하는 연회를 베풀며 즐겁게 마시고 놀았다. 소무의 군대는 빗발처럼 화살을 군영으로 날렸고 그중 하나가 왕패가 앉아 있는 술상 위의 술병 속으로 떨어졌지만, 왕패는 앉은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일부 장수들이 출전하자고 졸라댔다.

“소무의 군대는 지난번 이미 기세가 꺾인 상태라 이제는 쉽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패는 여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소무가 여기까지 장거리 길을 달려온 것은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의 속셈은 몇 차례 도전해서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병사를 쉬게 하는 것은 말하자면 ”싸우지 않고 적군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소무와 주건은 몇 차례 도전해 보았으나 왕패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병사들을 이끌고 군영으로 되돌아갔다. (‘이수대공’ 참조)

778년, 당나라 대종(代宗) 때 회흘(回紇)의 군대가 변경을 대거 침략하여 그 선봉이 태원성(太原城)까지 이르렀다. 이때 이자량(李自良)이 건의하고 나섰다. 지금은 회흘의 기세가 날카로워 맞상대하기 어려우니 적의 귀로에 급히 보루를 쌓고 병사를 보내 지키게 한다. 회흘 군이 이쪽에 닿으면 우리는 출전하지 않고 굳게 지키고 있다가 적군이 지쳐 물러갈 때 추격함과 동시에 미리 쌓아둔 보루의 군사들이 귀로를 막으며, 앞뒤로 협공을 가할 수 있어 틀림없이 대승을 거둘 것이다. 그러나 하동 절도사 유후포(留后鮑)는 이 건의에 동의하지 않고 대장 초백유(焦伯瑜)로 하여금 50리 밖에서 적과 교전하게 했다. 초백유는 단 한 번의 전투에서 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는 처참한 패배를 맛보고 말았다. 유후포는 ‘예졸물공’의 원칙을 인식하지 못하는 바람에 실패를 자초했던 것이다.

‘예졸물공’은 양 군대의 병력 비교에 근거를 둔 책략이다. 만약 내 병력이 적보다 절대적으로 우세하여 적을 완전히 섬멸할 수 있는데도 ‘예졸물공’을 고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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