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의 투명경영과 조육제 유한양행 사장의 ‘중력이산(衆力移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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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의 투명경영과 조육제 유한양행 사장의 ‘중력이산(衆力移山)’
  • 안데레사 기자
  • 승인 2022.06.24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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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 어록이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가로서도 대한민국 기업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지만 실상은 경세가라는 표현이 더 맞다. 역사는 유일한 박사를 교육가. 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로 기억한다.

유일한 창업자는 9살의 나이로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나 31살에 미국에서 성공한 청년사업가가 돼 1926년 귀국길에 오른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조국의 현실은 비참한 그 자체였다. 일제 식민 치하에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비참한 식민지 조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일한 박사는 이런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국민 건강을 지키는 제약업을 선택했다.

“건강한 국민만이 장차 교육도 받을 수 있고, 나라도 되찾을 수 있다”라는 신념이 바로 그것이다. 유일한 창업자는 1926년 12월 10일 제약회사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유일한은 타고난 사업가였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뛰어난 경영 감각과 혁신적 아이디어로 유한양행을 굴지의 제약회사로 성장시켰다. 그는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었다. 그가 회사를 키운 목적은 개인적 부의 축척이 아닌 ‘사회 환원’이었다. 식민지 치하 기업가가 아닌 혁명가의 기질이 발휘된 것이다.

유일한은 1936년 개인기업을 법인으로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유한양행을 개인 회사로 생각하지 않았기 떄문에 내린 결단이었다. 1962년 제약업계 최초로 주식을 상장하며 자본과 경영을 분리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1969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자식이 아닌 회사 임원에게 사장직을 물려줘 전문경영인 등장의 선구자 역할을 한 것도 유일한만이 가진 기업 철학의 실현이다.

유일한의 ‘투명경영’과 ‘성실납세’는 기업 경영의 제1원칙이었다. 일제시대와 1960년대 권력과 타협하지 않는 유한양행을 향한 세무조사의 칼날은 1원도 탈세하지 않은 사실은 오히려 모범납세기업으로 선정되는 계기가 됐다는 전설을 남겼다. 이에 박정희 정부도 1968년 유한양행을 모범납세기업으로 선정해 동탑산업훈장을 수여 했다.

유일한은 “기업의 존립 바탕인 국가에 성실하게 납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치와 기업이 철저하게 분리돼 투명한 경영을 해야 한다”는 유명한 어록은 아직도 유한양행의 금과옥조가 됐다.

유한양행은 올해 창립 96주년을 맞이했다. 조욱제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2022년 경영지표를 ‘열정, 도전, 창조’로 정하고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해 차별화된 신약의 개발과 신규사업의 확대를 도모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위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굳건히 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특히 조욱제 사장은 ‘One team, One goal’의 경영슬로건으로 유한양행을 글로벌 50위권 제약사로 진입하기 위해 끊임없이 긍정적, 창의적, 열정적 사고를 추구하자고 강조했다.

조욱제 사장은 ‘중력이산(衆力移山)’을 제시했다. 힘을 합치면 산을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조욱제 사장이 유일한 창업자의 유지처럼 ‘중력이산(衆力移山)’의 정신으로 유한양행을 글로벌 50위권 제약사로 만들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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