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위헌'시 사형수들 운명은…현존 59명 중 5명 재심 가능
헌재법상 2010년 2월 말부터 확정된 사형 판결 무효…54명은 장기수로 국회 통한
'사형제 폐지' 입법 가능성·'사형 존치' 국민 여론도 쟁점

헌법재판소가 12년 만에 '제3차' 사형제 헌법재판 심리를 본격화하면서 사형제를 둘러싼 쟁점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인간의 존엄이나 응보(응징과 보복)의 정당성 등 오랜 철학적 문제가 아니더라도 당장 사형제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국회 입법이 아닌 헌재의 결정으로 사형제의 존치·폐지를 결정하는 것이 옳은지 등 구체적인 논쟁거리도 적지 않다.

'사형제' 공개변론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22.7.14 [공동취재]
'사형제' 공개변론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22.7.14 [공동취재]

◇ 국내 사형수 59명…'2010년 2월 합헌 결정' 이후 사형 확정자 5명

17일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판결이 확정돼 국내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는 모두 59명이다.

하지만 헌재가 "사형제는 위헌"이라고 결정한다고 해도 이미 내려진 처벌의 종류를 재심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이 가운데 5명뿐이다.

헌법재판소법은 '형벌에 관한 법률과 조항'이 위헌으로 결정될 경우 '종전 합헌 결정이 있었던 날' 이후부터 효력을 상실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앞서 헌재는 1996년 11월 28일과 2010년 2월 25일 사형제를 규정한 형법 41조 등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이번 '제3차' 헌법재판에서 위헌 결정이 나온다면 2010년 2월 26일부터 확정된 사형 판결이 무효가 된다.

'미집행 사형수' 59명 중에는 영암 연쇄살인사건(2009년)의 범인 이모씨부터 보성 연쇄살인사건(2007년)의 오모씨, 해병대 총격사건(2011년)의 김모 상병, 2014년 대구에서 전 연인의 부모를 살해한 장모씨, 22사단 GOP 총기난사사건(2014년)의 임모 병장 등 5명이 헌재의 두 번째 합헌 결정 후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따라서 이번 헌법소원을 통해 사형제의 효력이 사라지면 이들 5명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되고, 나머지 사형수는 사실상의 '장기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법조계에서는 사형제 위헌 결정이 나오더라도 법적 '공백'은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재심의 길이 열린 사형수 5명을 구금할 법적 근거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지난 14일 공개변론에서도 언급됐다. 이미선 재판관은 "사형 확정자가 재심을 청구하면 석방돼 사회에 나와야 하는가. 대체 형벌이 제정되기까지 그들을 계속 구금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법무부 대리인은 "위헌 결정이 나왔을 때 (재심 청구 대상인) 사형 확정자가 석방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형벌 조항이 무효가 된다면 흉악범이라고 해도 현재의 형 집행 체제에서는 구금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

반면 재심이 시작돼도 법원의 판단에 따라 구금이 가능하고 해당 사형수에게는 곧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질 것이므로 이런 법무부의 입장이 '기우'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사형제 폐지 진영에서는 헌재가 사형제 효력을 곧장 없애는 '단순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방법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헌법불합치는 법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즉각 무효화했을 때 초래될 혼선을 막고 입법부가 대체 입법을 할 수 있도록 시한을 정해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사형제 폐지 찬반론
사형제 폐지 찬반론

◇ "민주적 정당성 가진 국회가 결정해야" vs "헌재 판단이 필요"

사형제 존치·폐지 문제를 입법부가 아닌 헌재가 결정하는 것이 합당한지도 여전히 논쟁거리다.

법무부 측은 사형제를 폐지한 대다수 국가가 재판기관의 결정이 아닌 헌법·법률 개정 방식을 택했다고 지적한다. 헌재도 2010년 합헌 결정 당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입법부가 결정할 입법정책적 문제이지 헌재가 심사할 대상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헌재가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1992년 이후 지금까지 9차례 국회에서 사형제 폐지 입법이 추진됐지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도 못했다. 지난해 발의된 '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 제안자 중에는 올해 보건범죄단속법의 최고 형량을 사형으로 상향하는 개정안에 참여한 의원도 있다. 상반되는 두 법안에 큰 고민 없이 '숟가락만 얹었다'는 뜻이다.

14일 공개변론에서 헌법소원 보조참가인 측은 이런 사례를 언급하며 "입법정책에 의해서도 사형제 폐지는 가능하지만 국회가 심도 있고 본질적인 논의를 꺼리는 상황에서는 헌재의 판단만이 사형제 존폐를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최종적인 해결은 국회를 통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사형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 대체 형벌 수단도 입법이 필요한 사안이다.

국민 여론이 대체로 사형제 존치에 우호적이었다는 점 역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포인트다. 지난해 국내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7.3%가 사형제 존치를 택했다.

이종석 재판관은 공개변론 당시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난 사형제도에 대한 의사는 압도적으로 존치를 찬성하는 쪽"이라며 "국민이 법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형벌제도, 응보, 범죄예방 정도의 개념은 충분히 이해하고 내린 이성적인 판단일 수 있다는 것을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인인 허완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은 이성의 산물이고 여론조사를 빙자한 법 감정은 사형제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며 "지금의 여론조사는 '흉악범을 사형해야 하는가'라는 판단자의 입장에서 질문하는데, 제대로 된 여론조사면 '당신이 흉악범이라면 교수대에 설 것인가'라는 당사자의 입장으로 물어야 한다"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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