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는 또 가난 먼저 덮친 재난…"재해가 계층 격차 따라 쏠리지 않아야"

▶ 서울과 수도권, 강원 지역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9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다. 재난은 늘 가난 먼저 덮치는가.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8일 밤. 서울에서는 반지하에 사는 일가족과 혼자 거주하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목숨을 잃었다.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은 이웃들의 필사적인 구조에도 수 분 만에 집 안에 물이 차오르면서 모두 숨졌다. 계속 불어난 물에 두 시간 넘게 지나서야 발견됐다.

지난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은 사고 현장.
지난 8일 오후 9시 7분께 서울 관악구 부근 한 빌라 반지하에 폭우로 침수된 일가족 3명이 갇혀 신고했지만 결국 사망했다.주민들에 따르면 사고가 난 빌라 바로 앞 싱크홀이 발생해 물이 급격하게 흘러들었고, 일가족이 고립돼 구조되지 못했다. 사진은 사고 현장.

주택 2천여 채가 침수돼 이재민도 속출했다. 사망자 중 40대 여성이 발달장애가 있었다고 한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었다"고 말했다. 동작구 상도동에서 폭우로 변을 당한 50대 역시 반지하에 살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 공식적으로 장애 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이웃들은 지적 장애가 있었다고 전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예산 차이도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에서 그 격차를 해소할 만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 서울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일부 구간 등 서울 도심 곳곳의 차량운행이 여전히 통제되고 있어 출근길 불편이 예상된다. 10일도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장마 아닌 장마'는 당분간 이어지겠다. 9일 오후 4시 30분 현재 서울·인천·경기북부·강원북부 중심으로 시간당 30~60㎜의 비가 쏟아지고 있다. 나머지 중부지방에는 시간당 10㎜ 정도 비가 내린다.

침수로 한때 운행이 중단됐던 지하철 3호선과 9호선은 어제 저녁 정상화됐다. 기상청은 퇴근길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돌풍·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시간당 50~100㎜의 강도로 내릴 수 있으니 대비해달라고 당부했다. 중부지방과 경북북부을 중심으로 11일까지 정체전선 영향 비가 오겠다.

▶ 인천 서구 검단동에서 국도 주행 중 갑자기 도로에 물이 차 승용차 여러 대가 고립됐고, 지난밤 기록적 집중 호우로 전국 곳곳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9일 재건, 폐기물 처리 등과 관련된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9일 코스닥시장에서 철도 및 도로 지하 횡단구조물 시공 업체인 특수건설[026150]은 전 거래일 대비 3.82% 오른 1만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 초반에는 17.25%까지 치솟기도 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8일 0시부터 이날 오후 3시까지 서울 452.0㎜, 여주 419.5㎜, 양평 408.0㎜, 경기 광주 402.5㎜ 횡성 275.0㎜, 홍천 212.0㎜, 평창 207.0㎜, 제천 124.5㎜, 서산 119.5㎜ 등 중부 지방에 폭우가 내리고 있다. 서울 방화대교 인근에서도 차량 22대가 고립됐다. 도로에 구멍이 뚫리거나 대형 땅 꺼짐이 발생한 곳도 있었다.

▶ 서울 서초구 우면산에서는 토사가 흘러내려 나무가 뽑히고 등산로가 파손되는 피해가 잇따랐다.수도권을 중심으로 역대급 폭우가 쏟아지면서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이 사실상 마비되고 각종 피해가 속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8일부터 내린 호우로 9일 오전 11시 현재 사망 8명, 실종 6명, 부상 9명 등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재민은 수도권에서만 230세대, 381명으로 집계됐다. 병원, 학교, 주택 등 각종 시설의 침수와 산사태에 따른 피해도 잇따랐다. 또 지하철 역사와 선로에 빗물이 들어차면서 열차가 곳곳에서 멈춰 서고, 주요 도로가 통제되면서 출·퇴근길에 '교통 대란'이 빚어졌다. 서울의 고질적인 침수 지역인 강남역 일대는 다시 물에 잠겼다. 처리 용량을 넘어선 강우량이 일차적 원인이지만, 최근 국지성 호우가 잦아진 상황에서 예방 대책이 미흡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가 중대본을 2단계에서 3단계로 격상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9일 오전 집중호우 대처 관계기관 긴급 점검 회의를 열어 철저한 대응과 신속한 복구를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안타까운 인명피해를 포함해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위로를 드린다"며 "소중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도록 상황 종료 시까지 총력 대응해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2011년 산사태로 18명이 숨진 적이 있어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천재지변은 자연의 영역이지만, 그에 대처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 이번 폭우는 예견됐던 만큼 침수나 산사태 위험 지역에 대한 선제적 조치와 사회 구성원들의 경각심이 뒤따랐다면 피해 규모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발생한 피해의 일정 부분은 '인재'(人災) 에 해당한다. 이유가 어떠하든 지난 2010년 9월과 2011년 7월 물에 잠겼던 강남역이 또다시 물바다가 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폭우가 며칠간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장은 시설물 점검 등을 통한 피해 최소화가 시급하다. 국민 개개인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비가 그치고 나면 신속한 복구와 피해자 지원에 정부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당면 과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상기후에 맞설 근본적인 대책이다. 장마기가 끝난 8월 초에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데, 지구 온난화로 이런 현상은 더욱 잦아질 개연성이 크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정부는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기상이 일상화된다는 점을 고려해 현재 재난관리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는데 말로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 정체전선이 남하하며 서울은 빗줄기가 약해졌지만, 강원 남부와 충청 지역에는 폭우가 내리고 있다. 수요일인 10일에도 충청권을 중심으로 매우 강한 비가 오는 곳이 있겠다. 수도권과 강원도에서는 소강상태를 보이는 곳도 있을 전망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아침 강원 남부 내륙 산지에 시간당 15mm 이상의 강한 비가, 충청권에는 시간당 30∼40mm의 매우 강한 비가 내리는 곳이 있다.

목요일까지 충청은 300mm 이상, 경북 북부와 전북 북부에도 최고 200mm의 호우가 쏟아지겠다. 이날도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50∼80㎜의 매우 강한 비가 내리는 곳이 있겠다. 이날 오전 5시부터 11일까지 예상 강수량은 충청권, 경북 북부 내륙, 전북 북부 100∼200mm지만 충청권에서는 300㎜ 이상 내리는 곳도 있겠다. 경기 남부, 강원 영서 남부, 전북 남부, 울릉도·독도는 50∼150mm, 서울, 인천, 경기 북부, 강원도(영서 남부 제외), 경북권(북부 내륙 제외)은 20∼80mm다. 전남권, 경남권, 제주도 남부·산지, 서해 5도는 5∼40mm다.

▶ 9일밤 9시까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4만 6천여 명으로 집계됐다. 전날 동시간대 집계치(14만3천168명)보다 3천196명 많다. 4월 13일(14만4천512명) 이후 118일 만에 최다 기록이다. 통상 주말 진단 검사 감소 영향에서 벗어나며 주 중반에 확진자가 급증한다. 이날 오후 9시 기준 확진자는 1주일 전인 지난 2일(11만5천311명)의 1.27배, 2주일 전인 지난달 26일(9만7천617명)의 1.50배 수준이다. 방역 당국은 휴가철 이동량과 접촉이 늘면서 유행 폭이 증가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 한편, 국민의힘과 정부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긴급 협의회를 열고 수해대책과 추석민생안정대책을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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