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일의 시사직격] '청와대 화보' 논란은 본질 아냐, 국격은 좋은 정치제도와 문화에서 나온다

지난 22일 '보그(VOGUE) 코리아'에서 ‘청와대 그리고 패션!’이라는 이름의 화보를 공개했다. 보그 코리아가 청와대와 협업하여 영빈관 등에서 모델 한혜진을 비롯해 여러 모델들이 한복을 비롯한 화려한 의상의 패션화보를 선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때 아닌 '국격'논란이 한창이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이를 두고 "국격이 떨어진다"며 윤석열 정부의 청와대 개방과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비판했다. 일부는 일리 있는 주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시작도 전에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이 청와대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긴 것이다. 그것도 기존 국방부 직원들이 사용 중이던 사무실을 다 비워서 쫒아내다시피 속전속결로 추진했다. 물론 민생과는 아무 상관없는 정책이다. 취임 100일이 지난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 10%대로 떨어졌고, 실로 우려가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격이 실로 걱정된다. 그런 면에서 탁 전 비서관의 윤 정부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일리가 있다.

문제는 시민들에게 개방된 청와대에서 패션 화보를 찍은 것에 대한 비판이다. 탁 비서관의 비판을 시작으로 일부 민주당 진영의 인사들과 누리꾼들의 비판이 논란을 키웠다. 대통령 역사가 깃든 청와대에서 패션화보를 촬영한 것이 국격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 중 일부는 패션화보 자체를 지적하기도 했다. 화보의 일부 의상이 조선의 기생을 연상케 하는 한복 디자인으로 청와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지난 22일 개방된 청와대에서  패션 잡지 보그 코리아의 모델 한혜진이 영빈관에서 의자에 누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와대가 촬영무대가 되자, 국격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보그 코리아
지난 22일 개방된 청와대에서 패션 잡지 보그 코리아의 모델 한혜진이 영빈관에서 의자에 누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와대가 촬영무대가 되자, 국격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보그 코리아

이쯤에서 '국격'이란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국격(國格)은 나라의 품격(品格)이다. 즉 한 국가가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품격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품격은 어디에서 오나. 품격은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또는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제 품격 있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함께 떠올려보자. 흔히 우리는 OECD국가들 중 핀란드,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등의 국가들을 선진국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대개 우리는 이들 국가들에 대한 동경이 있다. 여기서 선진국의 기준을 따로 열거하지는 않겠다. 저마다 선진국에 대한 기준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으나 대개 공통적으로 바로 떠올리는 것은 민주주의 지수가 높은 정치선진국들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나라들에 있는 수백 년된 건물과 전통, 압도되는 자연경관이 예뻐서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진 것을 실감한다. 유럽과 아시아는 물론, 남미와 아프리카에서까지 '코리아 Korea'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졌고 또 많은 이들이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다른 나라와 민족들에게 좋은 이미지가 생겼다면 이것이야말로 나라의 위상, 즉 국가의 품격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바로 'K-pop'과 'K-drama'로 세계에서 차트를 갈아치우는 대한민국의 문화의 저력 때문이다. 국가로서 한국의 품격이 문화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오래 전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나라가 문화강국 코리아였다.

물론 세계 10위 경제력과 세계 6위의 국방력 등 기본 체력도 갖추어졌기에 문화적 힘도 창조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정치적 매력으로 품격이 올라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여전히 세계 20위권 밖에서 맴돌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청와대 패션화보 촬영으로 논란 중인 '국격'으로 돌아가 보자. "국격은 어디에 오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의 주장처럼 청와대에서 패션화보 촬영하면 국격에 떨어지는 것일까. 정녕 대한민국의 '국격'이 청와대라는 건물에서 나온다는 말인가.

나는 국격은 좋은 정치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좋은 문화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일부 사람들의 패션 화보에 대한 '국격' 비판에 동의하기 어렵다. 또한 윤석열 정부가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면서 내놓은 "왕궁 같은 청와대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원인"이라는 변명도 우숩기는 마찬가지다. 둘 다 청와대를 '건물이 갖고 있는 역사나 품격 또는 기운'을 국격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인데, 이건 조금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좋은 정치를 했더라면 청와대가 왕궁같든, 거기에서 패션 화보를 찍든 우리는 지금보다는 더욱 포용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에서 패션화보는 격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우려스럽다. 패션을 2류 또는 3류로 취급하며 격이 낮은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혜진은 세계적 모델이다. 나는 패션의 종주국 유럽이나 서구를 넘어 한국이 새로운 패션문화를 선도하는 K-패션 나라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구 선생의 한 가지 소원이었던 문화강국의 힘, 국격이 어디에서 오겠나. 적어도 오늘의 대한민국, 거대 양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피아(彼我)를 구분하여 적으로 규정하고 상대의 실책만이 집권의 명분이 되는 이 정치에서는 국격을 기대하기에는 어렵지 않겠는가.

조경일 작가

나는 국격은 좋은 정치제도와 문화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좋은 정치문화를 만들면 국격이 절로 나올 것이다. 2017년 촛불 든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세계의 부러움을 샀듯이 말이다.

지금이라도 청와대를 대통령 집무실로 다시 써도 좋다. 청와대에서 패션쇼도 하고 콘서트도 하라.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 이제부터라도 포용하는 정치, 모두의 품격을 높여주는 정치를 만들어보자.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