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가 되고 몸이 되는 노동집약적 작업”
14일~ 11월 19일 학고재 개인전

[서울 =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디지털 이미지 홍수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추구하는 작가가 있다. 가상 디지털 시대에 ‘몸’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허수영 작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허수영 작가
수많은 것들을 결집해 담아내는  허수영 작가 (사진 임장활)

“나는 매일 정원에서 물을 주며 식물과 곤충, 흙과 모래 등을 본다. 그리고 자연의 여러 가지 특징 중에서 셀 수 없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다.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잎사귀들, 무수한 모래알들, 그 하나하나 다 다르게 생긴 수많은 것들을 보면서 내 그림 속에도 다양하고 많은 것들을 담으려 한다. 풀이나 나무들을 하나씩 그려 숲이 될 때까지 그려보기도 하고, 다양한 벌레들을 모아 벌레 떼들을 그려보기도 했다. 계절이 변해가는 모습들을 겹쳐서 시간이 누적된 풍경을 그리기도 했고, 가장 최근에는 여러 우주 이미지들을 합쳐 존재하지 않는 우주를 그려보려고도 했다”

시간의 중첩성을 화폭에 담아내는 허수영(b. 1984, 서울)작가의 개인전이 14일부터 11월 19일까지 학고재에서 열린다. 매일 만나는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아 캔버스 위에 한 겹 한 겹 쌓아 올리는 노동집약적 작업을 하는 작가다. 정원에서 발견한 자연의 소재는 물론, 다양한 우주의 이미지를 합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작가만의 우주를 화면에 담아낸다.

“어떻게 보면 많이 그리고, 겹쳐 그리고 오래 그릴 것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그릴 수 있는 대상들을 선택해서 그린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림 속에 조금이라도 물감을, 붓질을, 노동을, 시간을 쌓으려 한다. 그렇게 남겨진 그리기의 흔적들이 평평함 속에 어떤 깊이를 만들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집착의 응집들이 어떤 생명력처럼 보여서, 자연을 흉내 낸 것이 아닌 한 번도 보여진 적 없는 세계처럼, 우주를 따라 그린 것이 아닌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미지처럼 보였으면 한다.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노동이 축적되어 과포화 된 상태가 한눈에 들어올 때, 발생하는 어떤 효과가 아주 잠깐의 시각적 탕진으로 끝날지라도 이미지의 다수성(多數性)과 압축된 시간성의 혼재가 의미의 피부가 되고 표현의 몸이 되길 바란다”

그는 디지털 이미지 거품시대에 노동집약적 이미지를 고집한다. ‘몸’의 시간을 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가상화되고 있다. 오프라인은 끊임없이 웹으로 옮겨지고, 디지털 이미지는 급속히 복제되고 전파되어 거품처럼 팽창한다. 가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가상이 되면서 오프라인에서도 이미지를 소비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그래서 나는 그 거품들의 빈틈을 메워, 잠깐이라도 멈추게 하고 조금이라도 더 바라보게 하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회화성의 밀도를 높이는 것을 통해 내 삶의 밀도 또한 높아지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루하루 차곡차곡 그림에 나눠 담은 그 시간들이 모여, 지금 당신의 느린 순간이 되길 기대한다"

그는 창작의 주체인 ’몸의 회복‘을 선언하고 있는 것 같다. ’몸 감성‘의 화려한 귀환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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