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좀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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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좀비시대
  • 김예원 기자
  • 승인 2022.10.26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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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뉴스프리존]김예원 기자= 돈과 권력에 물든 우리 시대를 정면으로 비판한 신예 작가의 첫 장편소설 진정한 좀비 이야기를 책을 통해 느껴 본다.

제도권 교육에서 현실 세계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연우와 수아. 그들은 이십 대 젊은이들로 교과서적인 지식은 많이 갖추고 있지만, 현실 세계에 대한 지식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 자본의 세계에 대한 지식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실 세계에 대한 부푼 꿈과 환상을 품은 채 학습지 회사에 발을 내디딘다. 하지만 자본의 세계는 그들이 꿈꾼 세계와는 다르다. 자본의 세계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다. 그들이 보기에 현실 속 사람들은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다. 교과서에 나오는 선하고 바른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 속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어느새 좀비가 되어 있다. 좀비가 되어 자신들과 똑같은 좀비가 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자본 창출을 위해 좀비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려 한다.

작가는 학습지 방문교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물질만능주의 사상으로 사람들에게 더는 순수성을 찾아볼 수 없고, 양심 또한 사라지고 없다. 사람들은 모두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자신을 감추거나, 혹은 처음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 어느 조직, 어느 집단이나 마지막에 드러나는 것은 결국 돈과 권력인 것이다.

작가는 우리 시대가 인간성을 상실한 좀비시대임을 선언한다. 공동의 선 대신에 돈과 권력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아니, 감염된 그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는 좀비시대. 그렇다면, 돈과 권력의 의한 좀비화는 과연 어떤 최후를 맞게 될까?

#작가의 말

어릴 때, 무지개를 본 기억이 있다. 집 앞 방죽 건너에는 조그만 산이 하나 있고, 여름날 소나기가 훑고 간 그곳에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어여쁜 무지개였다.
난 무지개를 보며 뛰었다. 누가 왜 뛰냐고 물으면 무지개를 잡으러 간다고 했다. 어린 꼬마인데도 난 지치지 않았다. 무지개를 잡기 위해 뛴다고 생각하니 기운이 솟고 가슴이 뛰기까지 했다.
산 위에 올랐을 때, 무지개는 여전히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잡지는 못하더라도 바로 코앞에 있으리라 여겼는데 저 언덕 너머에 있는 것이었다. 난 무지개를 바라보았다. 하늘에 반원을 그리며 그것은 영롱하게 펼쳐져 있다. 난 잠시도 무지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눈부심이란, 그 오색찬란함이란…….

내게 있어 글은, 소설은 어릴 때 보았던 무지개와 같았다. 신비하고 환상적이며 꿈속 같고, 또한 아지랑이처럼 몽롱하고……. 그 존재만으로 벅찼기에,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아 가면서도 꿋꿋이 예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
여러모로 힘겨움을 느끼고 있을 때 따뜻한 격려와 힘을 주신 리토피아 장종권 주간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작품에 세밀하고 정밀한 해설을 써주신 고명철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하늘의 무지개가 되신 아버지께, 나의 이 첫 책을 바친다.

방서현작가
방서현작가

#작가 소개
방서현 작가는 충남 논산에서 자라고 목원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오랫동안 글쓰기 수련과 깊은 사색을 해왔으며, 2022년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현재, 무지개와 같은 글을 쓰고자 고향 놀뫼에 둥지를 틀고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평가
소설의 결말은 매우 비관적이고 충격적이다. 그만큼 한국사회, 아니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구속돼 있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자본추구의 과정이 곧 사회경제적 권력 추구의 과정이고, 그래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과정이 빚는 반인권적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 곳곳에 퍼지는 위험 경고음에 둔감하다. 아니, 어쩌면 이 위험 경고음이 들리는 것 자체가 귀찮은지 모른다. 하지만 없으면 어딘지 허전한 채 숱한 잡음들 중 하나로서 이것을 일종의 사회적 소음으로 간주하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곳에서 개시되고 있는 디스토피아이며 좀비들이 판치는 묵시록의 현실이 아니고 무엇인가. 『좀비시대』가 말미에 던지는 몹시 불편하면서도 래디컬한 이 물음이야말로 산문정신으로서 소설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준다./고명철(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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