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의 바보' 7인이 펼치는 추상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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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위의 바보' 7인이 펼치는 추상회화
  • 편완식 기자
  • 승인 2022.11.15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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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12월 22일 원앤제이 갤러리...구지윤, 박미나, 샌정, 서태경, 윤향로, 최윤희, 한진 참여

[서울 =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언덕 위의 바보. 원앤제이 갤러리가 17일~ 12월 22일 국내 작가 7인(구지윤, 박미나, 샌정, 서태경, 윤향로, 최윤희, 한진)의 추상회화를 조명하는 그룹전의 전시제목이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1967년에 발표한 노래 ‘언덕 위의 바보’와 동명이다. 해당 곡은 남자가 언덕 위에서 지는 해를 보면서 지구의 회전을 본다는 철학적 내용을 노래한다. 사람들은 언덕 위에서 실없이 공상하던 한 남자를 ‘바보’라고 불렀지만,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노을지는 태양을 보고 지구가 태양 주위로 공전하는 것을 발견했다.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1844-1906)은 끓는 차가 담긴 컵을 바라보다가 원자와 분자가 격렬히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엔트로피 개념을 발전시켰다. 현명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과학자들은 계산적 추론이 아닌 세상을 열정어린 눈으로 탐구하던 중 생기는 의문과 직관을 통해 세상의 일부를 깨달았다. 7인의 작가들이 ‘언덕 위의 바보’가 되어 세상으로부터 오롯이 체득한 감각을 각자의 회화적 문법을 통해 펼쳐낸 모습을 보여준다.

구지윤 '흐리고 밝은 날'
구지윤 '흐리고 밝은 날'
박미나 'Figure 0'
박미나 'Figure 0'

박미나와 윤향로는 우리가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회적 규칙과 통념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박미나의 추상회화 시리즈 ‘FigurePainting’(2013)은 인물화를 그릴 때 흔히 사용되는 F형(Figure) 캔버스의 국내 표준 규격에 대한 의구심에서 비롯한다.19세기말에 한국에 첫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회화용 캔버스는 회화의 형식에 따라 표준화된 규격별로 현재 통용되고 있다.박미나는 F형 캔버스의 국내 표준 규격이 과연 인물화에 최적화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다. 그는 F형캔버스(0호-200호) 위에 검정색과 흰색만을 사용해, 각 호수별로 한 인물에 대한 심상을 다양한 회화적 기법을 활용해 감정적인 초상을 담아냄으로써 표준 규격에 대해 실험한다. 캔버스 호수를 비롯해 표준화된 판형과 매체 간 경계에 질문을 가진 윤향로는 프리스탠딩 회화 연작 ‘ASPKG’(2018)를 통해 추상 회화의 가능성을 조각과 함께 실험한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A4 인쇄 용지 1묶음(29.7 x 21 x 6 cm)을 최소 조각의 단위로 삼고 이를 동일 비율로 확대한 크기를 바탕으로 하여, 회화와 조각이 서로의 형식과 형태를 참조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특히 윤향로가 현재까지 꾸준하게 시도해오고 있는 방법론 ‘유사회화(Pseudo Painting)’ 아래 미술사 도판 이미지를 처음 차용한 작품으로, 작가에게 영향력을 끼친 추상 회화사의 도판이미지를 다양한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을 이용해 재구성하고, 이를 새로운 지지체 위로 불러왔다.

샌정 '무제'
샌정 '무제'

구지윤과 한진은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장소와 이를 둘러싼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구지윤은 현대도시의 심리적 풍경을 담은 회화를 선보인다. 대도시에 살아감과 동시에 지금 이 순간 그 장소에서 경험하는 사건 등을 통해 보이지 않는 도시의 흐름을 감지하는 구지윤은 새로 지어졌다가 노후에 따라 철거 또는 재개발되는 도시에서 감각한 심상을 포착한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도시 풍경과 그에 내재한 에너지를 색, 선, 형태 등 여러 조형 요소를 통해 은유한다.존재하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에 사라질 대상과 감각을 시각화하는 한진은 2016년부터 ‘지질학적 시간’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한진은 인간의 신체만으로는 감각하기 어려운 지형의 끝없는 변화를 체득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꾀한다. 석호, 습곡 등 특정장소의 지형을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번 현장 답사하여 몸소 감각하거나, 지형의 미묘한 변화를 수학적으로 접근해보거나,지형에서의 감각과 유사한 리듬을 가진 음악을 통해 그 감각을 계속해서 떠올린다. 이를 통해 한진의 회화는 변화하는 지형의 외형이 아닌, 내밀한 내면(지층)을 어렴풋이 감각케한다.

최윤희 '다시 들어가기'
최윤희 '다시 들어가기'

샌정, 서태경과 최윤희는 자신의 내면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여정을 회화를 통해 넌지시 보여준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아에서 비롯된 만큼, 이들의 작품은 한 개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이 세상을 자연스럽게 투영하고 있다. 샌정은 빈 캔버스를 오래응시하는 사색의 시간 속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감정, 사유, 현상을 캔버스 위에 펼쳐낸다. 그는 캔버스 너머의 드라마를 기대하면서, 허공에 정형화되지 않은 심적인 현상을 구성한다. 회화의 지지체인 린넨의 질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여백과 함께 스며든 샌정의 회화는 작가 특유의 리듬을 따라 기하학적 형태, 색감뿐만 아니라 작은 붓질 하나까지 응시하게 만들어,우리에게 정서적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최윤희는 시야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자신의 신체를 중심으로 감각하여 그려낸다.내면에서 과거와 현재가 뒤엉켜 흐르는 시간의 흔적을 ‘원래의 땅(course 2)’(2021)에서 손으로 문질러 담아냈다. 최근에는 무엇보다 깊은 내면을 탐구하면서, ‘다시 들어가기’(2022)를 시작으로 하여 그동안 내뱉지 못하고 심연 속에 가라앉은‘혼잣말’과 같은 감정을 수면 위로 천천히 끄집어내보고 있다.

윤향로 'ASPKG'
윤향로 'ASPKG'
한진 '내가 바다 끝에 서리'
한진 '내가 바다 끝에 머물지라도'

내면에 몰입해 자아를 더듬어가는 서태경은 그 내밀한 과정을 언어화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한다.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사회적 언어 혹은 특정한 맥락없이, 오로지 자신의 감정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며 다양한 매체(회화, 퍼포먼스, 영상, 해체 언어 등)를 통해 본래 모습을 순진무구하게 드러낸다. 서태경은 이번 전시에서 발광하듯 색을 뿜어내는 색면 위에 가느다란 선이 얼기설기 엮여 내면의 에너지가 유영(游泳)하는 회화 그리고 언어화되지 않은 소리와 몸짓을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임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여보는 시간을 가질수 있도록 마음을 두드리고자 한다.

전시와 연계하여 11월 26일 오후 7시엔 서태경과 루이 이나바(Rui Inaba)가 즉흥으로 반응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서태경은 자신의 회화 앞에 서서 언어화되지 않은 목소리와 움직임을 표출하고, 루이 이나바는 그에 반응해 베이스 기타를 비롯한 다양한 노이즈를 만들어낸다. 사전 계획없이 매 순간마다 상호 반응하는 퍼포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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