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동 지대장 분신 관련 추측성 보도와 부채질→'자살방조' 고발까지
조선일보·원희룡·신전대협 향해 전우용 "'악마의 상상' 거리낌 없이 표현 중"

[서울=뉴스프리존] 고승은 기자= 건설노조에 대한 무리한 수사에 항의하며 지난 1일 분신 끝에 숨진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과 관련해 '조선일보'가 분신 당시 옆에 있던 노조 간부(동료)가 양 지대장을 말리지 않았다는 등의 추측성 보도를 내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SNS에 추측성 글을 개제하고, 친국민의힘 성향의 단체인 ‘신전대협’은 서울중앙지검에 해당 노조 간부를 ‘자살방조’ 혐의로 고발했다. 

이를 두고 32년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해당 사건은 군사정권의 연장선상이던 노태우 정권 하에서 일어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민주화 세력에게도 치명상을 입힌 현대사 최악의 사건 중 하나다. 

건설노조에 대한 무리한 수사에 항의하며 지난 1일 분신 끝에 숨진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과 관련해 '조선일보'가 분신 당시 옆에 있던 노조 간부(동료)가 양희동 지대장을 말리지 않았다는 등의 추측성 보도를 내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홈페이지)
건설노조에 대한 무리한 수사에 항의하며 지난 1일 분신 끝에 숨진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과 관련해 '조선일보'가 분신 당시 옆에 있던 노조 간부(동료)가 양희동 지대장을 말리지 않았다는 등의 추측성 보도를 내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홈페이지)

이를 두고 전우용 역사학자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1991년 5월 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했다. 그러자 서강대 박홍 총장은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고, 조선일보는 이를 대서특필했다"고 짚었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검찰은 곧바로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를 ‘유서대필’ 혐의로 구속하고, 자살방조와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했다. 법원은 강기훈씨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라며 "2015년 강기훈씨는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인받았지만, 그와 그 가족의 인생을 철저히 파괴했던 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유서대필 조작사건'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당시 수사라인들은 강기훈씨에게 지금껏 사죄 한 마디 한 적이 없다. '대장동 50억 클럽'의 한 명인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도 당시 강기훈씨 등에 대한 가혹수사를 담당했던 수사팀의 일원으로 지목된 바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6일 분신 당시의 CCTV 화면(음성 등은 제외)을 통해 '건설노조원 분신 때 함께 있던 간부, 막지도 불끄지도 않았다'는 제목의 추측성 기사를 냈고, 이에 호응하듯 원희룡 장관은 페이스북에 "혹시나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며 추측성 글을 올렸다. 여기에 신전대협이라는 단체가 서울중앙지검에 노조 간부를 ‘자살방조’ 혐의로 고발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17일 '한겨레'에 “(양희동씨가) 바로 불을 지른 게 아니고 주위에 시너를 뿌려둔 뒤 동료가 왔을 때도 라이터를 든 채 ‘가까이 오지 마라. 여기 시너 뿌려놨다’고 경고해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괜히 다가갔다가 자극받은 양씨가 라이터를 먼저 당길 수도 있고, 만약 들어가서 말렸다면, 둘 다 같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사건 현장에서 옆에 있던 YTN 기자들의 진술을 봐도, 노조 간부는 (분신을 시도하는) 양씨에게 ‘하지 말라, 그러지 말라’고 계속 말렸다고 한다. (조선일보) 기사는 해당 기자가 알아서 쓴 거지, 경찰에 취재하거나 연락한 적도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6일 분신 당시의 CCTV 화면을 가지고 '건설노조원 분신 때 함께 있던 간부, 막지도 불끄지도 않았다'는 제목의 추측성 기사를 냈고, 이에 호응하듯 원희룡 장관은 페이스북에 "혹시나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며 추측성 글을 올렸다. (사진=페이스북 캡처)
'조선일보'는 지난 16일 분신 당시의 CCTV 화면을 가지고 '건설노조원 분신 때 함께 있던 간부, 막지도 불끄지도 않았다'는 제목의 추측성 기사를 냈고, 이에 호응하듯 원희룡 장관은 페이스북에 "혹시나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며 추측성 글을 올렸다. (사진=페이스북 캡처)

이를 두고 전우용 역사학자는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낼지 알 수 없지만,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며 "강기훈씨에게 ‘유서대필’ 혐의를 씌운 자들은 강기훈씨를 ‘악마’로 만들려 했지만, 결국은 자기들이 ‘악마’였음을 드러내고 말았다"라고 짚었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지금 조선일보도 원희룡 장관도, 검찰에 노조간부들을 ‘자살방조’ 혐의로 고발한 자들도, ‘악마의 상상’을 거리낌없이 표현하고 있다. ‘악마의 상상’은, 악마나 하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1980년 5월 18일로부터 43년이나 지났지만, 당시 공수부대원들 마음속에 들어가 대학생들을 대검으로 찌르고 곤봉으로 때려 죽이게 했던 ‘악마의 심성’은 아직 살아있다"라며 "이 ‘악마의 심성’을 물리치는 것은 결코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문제가 아니다. ‘악마의 심성’을 물리치지 못하면, ‘인간성의 최저선’이 무너진다"라고 경고했다. 

명백한 조작 있었는데,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문제의 '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사건'이란 지난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것에 항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김기설씨가 분신해 숨진 일로 시작됐다. 이에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은 "우리 사회에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선동했으며, 검찰은 그 '어둠의 세력'으로 강기훈씨를 지목한 것이다. 

당시 검찰은 "김기설씨 필적이 유서와 다르다"며 당시 전민련 총무국장인 강기훈씨를 대필자로 지목했다. 강씨는 억울하다며 "대필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밝혔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당시 "유서의 필체와 강씨의 필체가 일치한다"는 감정결과를 발표하며 강씨를 옮아맸다. 또 당시 검찰발 기사를 내보내며 '유서대필'을 기정사실화, 강기훈씨를 집중공격했던 대표적 매체는 역시 '조선일보'였다. 

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군사정권의 연장선이었던 노태우 정권 하에서 일어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민주화 세력에게도 치명상을 입힌 현대사 최악의 사건 중 하나다. 당시 필적을 적는 강기훈씨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군사정권의 연장선이었던 노태우 정권 하에서 일어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민주화 세력에게도 치명상을 입힌 현대사 최악의 사건 중 하나다. 당시 필적을 적는 강기훈씨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듬해 초 국과수 필적 감정 책임자가 뇌물을 받고 허위 감정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공신력이 땅에 떨어졌음에도, 검찰은 뇌물은 받았지만 허위 감정은 없었다고 강변했다. 검찰은 이렇게 강기훈씨를 옮아맸고 92년 7월 자살방조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다.

강기훈씨에겐 '유서를 대필해 동료의 죽음을 부추긴 자'라는 주홍글씨가 사회적으로 박히면서, 출소 이후에도 생활고와 억울함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또 당시 민주화세력에게도 치명상이 입혀졌다. 강기훈씨는 참여정부 때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재심을 신청할 수 있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지 24년만인 지난 2015년 5월에야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또 2년 뒤인 2017년 7월 법원은 강기훈씨에게 국가의 민사 보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법원은 국가와 문서감정인의 손해배상 책임만 인정했을 뿐 위법수사를 했던 수사검사 등의 책임은 일절 묻지 않았다. 강기훈씨는 오랜 고통 뒤에야 어렵게 명예를 회복했지만, '간암'으로 투병하는 등 여전히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김기춘 전 실장을 비롯한 '유서대필 조작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이들 모두 강기훈씨에 사과 한마디 하고 있지 않다. 수사 책임자였던 정구영 당시 검찰총장, 강신욱 전 대법관(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 등 누구도 그에게 지금껏 사과하지 않았으며, 당시 유죄판결을 내렸던 판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강기훈씨를 가장 공격했던 '조선일보'는 말할 것도 없다.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