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 소설가 등 6명 홍보대사 임명···오 작가,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묵인'
문체부·출판문화협회 규탄한 문화예술인들 "반성 없이 부패한 문학권력 됐다"
대통령실 경호원들 문화예술인들 행사장 입장하자 경호구역도 아닌데 과잉대응
[서울=뉴스프리존] 고승은 기자 =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에 앞장선 오정희 소설가가 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국제도서전의 홍보대사로 임명되면서, 예술인들의 큰 반발을 사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대표적 국가범죄·국기문란 사건으로 불리는데, 문화체육관광부가 시계를 거꾸로 되돌린 셈이라서다.
블랙리스트이후(준), 한국작가회의 등 다수 문화예술단체들은 14일 오전 서울국제도서전이 개막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동문광장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오정희 소설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자행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국가범죄’의 실행자였다"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제5기) 위원이자 위원장 직무대행으로서 이미 명백하게 진상규명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들(2015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사업, 우수문예발간지사업, 주목할만한작가사업 등)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라고 직격했다.

이들은 오정희 소설가에 대해 "지금까지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하여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 고사하고 어떠한 성찰적 태도조차 보여주지 않은 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국가범죄에 대해 침묵으로 동조‧옹호하고 있다"며 "아니,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의 ‘얼굴’을 자임할 정도로 성찰과 반성의 감각을 상실한 채 부패한 문학권력이 됐다"고 개탄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지난 12일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6월 14~18일) 개막과 관련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에는 “소설가 오정희, 김인숙, 편혜영, 김애란, 최은영, 천선란 등 6명이 홍보대사로 활동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전시회 주제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다. 특히 오정희 소설가는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와 포스터의 한가운데(왼쪽 3번째)에 자리하고 있다. 즉 그가 홍보대사 6인 중에서도 메인이라는 것이다.
문화예술단체들은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대한민국 문학과 도서출판을 대표하는 국제행사의 홍보대사로, 대한민국 법원과 정부는 물론 자신들 스스로가 공언했던 국가범죄의 실행자를 선택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고 목소릴 높였다.
이들은 "지금도 전혀 반성과 사과가 없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가해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행사에서 다루어지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라는 주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며 "이처럼 부패한 문학권력 앞에서 침묵하는 예술이 어떻게, 감히 우주와 지구, 역사와 미래, 민주주의와 불평등, 여성과 소수자, 인간과 비인간을 입에 담고 글을 쓸 수 있을까"라고 일갈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의 주도로 이뤄졌으며, 당시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정부 지원사업에서 배제되는 아픔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행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조사 결과 중 ‘2015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사업’ 대목을 보면, 당시 문인들을 지원하는 이 사업에서 블랙리스트 인사들을 배제하기 위해 정권 차원의 집요한 개입이 있었고, 결국 심의를 책임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일부 선정자를 배제하기 위해 100여명 규모의 지원대상을 70여명으로 축소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 등이 확인된다.
당시 예술위 위원으로서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기도 했던 오정희 소설가는 사무처로부터 블랙리스트 실행 지시 사실을 보고 받는 등 “적어도 블랙리스트에 대하여 인지하였다는 사실”이 인정된 바 있다.
이날 문화예술인들은 기자회견 후 서울국제도서전을 관람하기 위하여 표를 사고 입장했으나 입구부터 경찰이 가로막았다. 김건희 여사가 개막식에 참석한다는 이유를 들어 경호구역이 아닌 공간에서부터 대통령실 경호원들이 예술인들을 과잉 진압했다는 설명이다.

문화예술인들은 "그 과정에서 예술인 여러분들이 다치고 성희롱도 당했다"며 "예술인들은 피켓도 펼치지 않았고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경호원과 경찰이 몸을 만지기 전에는 소리 또한 지르지 않았다. 경호구역이 아닌 곳에서 폭력적인 제압을 하는 것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국제적인 행사 개막식에 시민이 참여할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VIP’가 참여한다는 이유로 행사를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시민의 문화권리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국가범죄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문체부와 블랙리스트 가해자로 국가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준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오늘 예술인들이 폭력을 당하는 것을 방관했다"고도 성토했다. 이들은 이어 오는 18일 오후 2시30분엔 오정희 소설가가 참여하는 도서전의 섹션 장소인 코엑스 A&B1홀 앞에서 항의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