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총론 - 충남 내포문화권과 가야산의 DNA

조선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이백리를 가다보면 가야산이 있는데 이 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이 바로 내포다"라고 썼다. 이중환이 가리킨 열 고을은 현재의 충남 예산, 덕산, 홍성, 결성, 서산, 해미, 태안, 당진, 면천, 신창(아산) 등이다. 모두 가야산의 사방(四方)에 위치한 고을이고, 충남도청소재지가 예산·홍성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내포신도시'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이유다. 올해 충남도는 내포신도시 개청 10주년이 된다. 지난 10년 동안 충남도는 15개 시·군을 아우르는 행정중심 신도시를 조성하고, 내포문화권의 정체성 확립에 구슬땀을 흘렸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포의 주산(主山)인 가야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관심은 미흡했다. 2023년 내포 충남도청 개청 10주년을 맞아 '내포의 주산(主山), 가야산의 문화관광 발전 및 기능 확장을 위한 제언'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올해는 내포 충남도청 개청 10주년이 되는 해다. 충남도가 도청소재지인 내포신도시의 외연과 기능 확장에 박차를 가하면서 내포의 주산(主山)인 가야산의 문화관광 발전과 정주여건 조성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가야산 가야봉에서 서산 해미면 쪽을 바라본 모습이다.(사진=박성민기자)
올해는 내포 충남도청 개청 10주년이 되는 해다. 충남도가 도청소재지인 내포신도시의 외연과 기능 확장에 박차를 가하면서 내포의 주산(主山)인 가야산의 문화관광 발전과 정주여건 조성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가야산 가야봉에서 서산 해미면 쪽을 바라본 모습이다.(사진=박성민기자)

[충남=뉴스프리존] 박성민기자= 내포(內浦)는 말 그대로 뭍 안쪽까지 바닷물이 드나드는 땅이다. 육지 속 바다로도 풀이된다. 세계적인 리아스식 해안을 가진 예산, 홍성, 서산, 태안, 당진, 아산지역을 옛 조상들이 통칭해서 부르던 곳이 내포다.

이 넓은 지역을, 더구나 이 많은 마을을 묶어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들고 나기를 반복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마을단위 공동체, 저마다의 풍속과 생태, 문화, 예술, 종교적 퍼스널리티(personality)를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전 충남대학교 문리대 학장을 지낸 노도양 박사는 <내포지방고(內浦地方 考)>를 통해 "삽교천 유역인 내포지방과 금강유역인 내륙지방 사이는 고작 500-600m급 차령산맥이 가르고 있을 뿐이지만 기후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생활권도 다르고, 고대유적들의 특성 또한 다르다. 이는 역사지리적으로 크게 유의할 사항이다"라고 썼다.

사실 충남도청이 이전하기 전만 해도 내포신도시의 내포가 뭐냐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포'가 낯설었던 까닭은 충남 지역민 스스로의 무관심이 한몫했다.

단적인 예가 예당평야다. 원래 충남을 가로지르는 차령산맥 서쪽의 7개 시·군을 포괄하는 대한민국 최대의 곡창지대는 '내포평야'로 불렸다.

하지만 현재 전국의 학생들은 '예당평야'라고 배운다. 예산과 당진 사이에 조성한 '예당저수지'의 이름을 땄다. 내포평야에 비하면 참으로 근본도 없는 땅이름이다.

또 다른 이유를 꼽자면, 1970년 후반 삽교방조제와 대호방조제, 석문방조제, 서산A·B지구방조제 등이 조성되면서 충남의 해안선이 단순해졌고, 사방으로 도로가 뚫리면서 '내포(內浦)'의 지리적 의미가 소멸된 탓도 있다.

하지만 내포의 역사는 유구하다. 1980년대 만해도 예산이나 홍성, 당진, 서산, 보령지역 노인들은 스스로를 내포사람(內浦人)이라고 했고, 사는 곳을 내포지방이라고 했다.

내포를 주목한 문헌도 많았다. 육당 최남선은 "내포(內浦)라 함은 아산만으로 주입(注入)하는 삽교천과 금마천 서쪽의 여러 군(以西諸郡)이다"라고 했고, 원효대사는 원효결(元曉訣)에서 "오성지간(烏聖之間·오서산과 성주산의 사이)은 산 모습, 물 기운이 가장 뛰어나 나라땅의 내장부(內臟部)와도 같은지라 내포(內浦)라 한다"고 언급했다.

고지도에서 언급한 내포의 위치. 충남발전연구원 '내포문화권 특정지역 지정 및 개발계획' 자료 발췌.
고지도에서 언급한 내포의 위치. 충남발전연구원 '내포문화권 특정지역 지정 및 개발계획' 자료 발췌.

지도를 펴 보면, 충청남도는 차령산맥으로 나뉜다. 차령의 동남쪽은 금강유역이면서 내륙지방이다. 차령의 서북쪽은 내포지방이다. 가야산과 아산만, 옛 삽교천유역을 중심으로 개(浦)가 발달하고, 서해 바다와 서로 깍지를 낀 모양새다.

조선 왕조가 망하고, 근대 행정구역이 들어선 이후 오랫동안 대전과 공주 등 내륙지방이 충남의 중심이었다면 내포지방은 정치·경제적으로 비교적 소외됐었다. 철도를 기반으로 한 교통 측면에서도 외진 지역에 속했다.

하지만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아산만을 중심으로 새로운 항구와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내포는 급격하게 주목되기 시작했다. 내포의 정주인구와 유동인구 모두 크게 증가하고, 휴가철마다 유명 휴양지는 끊임없이 인파가 몰려든다.

내포 충남도청 시대는 소외됐던 내포지방이 새로운 21세기 기능 확장의 문을 여는 일대 전환이다. 충남도가 내포 신청사 시대를 연 뒤 지금까지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신도시와 주변지역의 정체성 찾기에 심혈을 기울여 온 것도, 내포의 주산(主山)인 가야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 다양성과 개방성, 내포와 가야산의 DNA

내포 사람들은 밀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쉽사리 만나기도 힘들고, 밀물이 들어와도 배를 타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니 '내포'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규정짓기 힘들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다양하고, 개방적인 사람들이 가야산 자락의 내포인이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실장을 지낸 이훈 박사는 "역사속에서 내포는 고대 백제 불교가 유입되는 관문이었고, 조선시대까지 삼남의 물자가 운송되는 통로상의 요충지였다. 가야산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의 고찰과 마애불, 천주교 유적 등은 한국 종교사에 빼놓을 수 없는 유산이고, 호락논쟁(湖洛論爭)으로 대변되는 남당 한원진과 외암 이간 선생의 활동과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활동은 내륙지방의 회덕, 연산, 노성 지역과 더불어 조선시대 기호유학을 상징하는 정신적 유산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내포지방이 바다와 땅이 섞여 있어 불교와 천주교 같은 바깥 문물을 받아들였다면 가야산 자락 곳곳에는 품은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높이 678m로 규모는 작지만 수많은 역사·문화·생태·종교 유물과 스토리텔링이 가득하다.

마침 충남도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내포의 역사와 문화, 생태를 체험할 수 있도록 예산군과 홍성군, 서산시, 당진시 등 4개 시·군과 함께 국가숲길인 '내포문화숲길'을 조성했다. '원효깨달음길'과 '내포천주교순례길', '백제부흥군길'과 '내포역사인물길', ‘내포동학길’ 총 5개 테마 길이 있다.

각 테마마다 예사롭지 않은 이름이고, 귀를 기울이게 하는 사연이 궁금증을 낳는다.

충남도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내포의 역사와 문화, 생태, 종교 등을 체험하는 내포문화숲길을 조성했다. 사진은 내포문화숲길 사이트 캡처.
충남도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내포의 역사와 문화, 생태, 종교 등을 체험하는 내포문화숲길을 조성했다. 사진은 내포문화숲길 사이트 캡처.

흥선대원군이 '천자 2명을 낳을 명당'이라는 소문에 선친 남연군의 묘를 이장한 곳이고, 근대 풍수계의 거목으로 불렸던 육관 손석우 선생의 묘가 쓰인 곳이 가야산이다. 1866년 오페르트 일행이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다 달아난 이야기도 있다.

가야산(伽倻山)은 이름부터 불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가야'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3곳이다. 충남 내포지방(內浦地方)에 있는 가야산과 경상남도 합천과 경상북도 고령에 걸쳐있는 가야산, 그리고 전라남도 광양에 있는 가야산이다.

작고한 예산지역 향토사학자 박성흥 선생은 저서 <진번·목지국과 백제부흥전>에 "내포지방의 가야산은 불교문화가 전래되기 전에는 '검은산'이었고, 주변의 농경지는 '검은들'이라고 불렸다"며 근거로 당진군 합덕면 옥금리(玉琴里)의 거문들(검은들), 순성면 봉소리(鳳巢里)의 검은들, 홍성군 은하면 금국리(錦菊里)의 가야골(또는 가라골, 가아티) 등을 꼽았다.

이어 "가야라는 말은 범어(梵語)로 코끼리를 말하는데 "내포지방에 불교문화가 유입된 이후에 검은산이 가야산으로 바뀌고, 상왕산(象王山)이라는 지명도 생겼다"고 주장했다.

작고한 박성흥 선생은 고대 내포지방에 있었던 마한 목지국이 일본 천황가의 뿌리나라가 됐다는 학설을 주장한 예산의 향토사학자다. 그가 평생을 바쳐 수집한 자료는 가야산의 어원을 연구하는데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작고한 박성흥 선생은 고대 내포지방에 있었던 마한 목지국이 일본 천황가의 뿌리나라가 됐다는 학설을 주장한 예산의 향토사학자다. 그가 평생을 바쳐 수집한 자료는 가야산의 어원을 연구하는데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불교계에서는 가야라는 이름이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인도의 부다가야(Buddhagaya)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한다.

내포 가야산 주변에도 상왕산, 원효봉, 가야사지, 보원사지, 원효암지, 백암사지, 개심사, 일락사,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등 다양한 불교 유적과 유물 등이 남아있다. 백제시대 마애석불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서산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과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동굴도 이곳에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국가가 주관하는 제사인 '중사(中祀)'를 지냈던 곳이다. 신라는 나라의 네 방위에 있는 이름있는 산에 제사를 지냈는데 서쪽 명산이 가야갑악(伽耶岬岳), 즉 내포의 가야산이다. 조선시대에도 덕산현감이 봄과 가을에 고을 관원을 동원해 제를 올린 기록이 남아있다.

내포 가야산이 호서불교의 성지로 불리는 이유다.

내포의 가야산은 천주교와도 인연이 깊다. 한반도에 천주교가 처음 전래되었을 때부터 신앙 공동체의 중심지였다. 천주교가 막 확산되던 18세기 말에 이미 삽교천변 간척지 마을에 상당수의 교우촌이 형성되고 있다는 장계가 올라갈 정도였다.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당진 사람으로 내포인이다. 내포지역의 교우촌은 병인박해(1866년) 등 100여년에 걸친 천주교 박해기에 무수히 많은 순교자를 내면서도 천주교 신앙의 든든한 요람이 됐다.

교우촌은 이후 공소로, 공소는 다시 성당으로 발전하면서 한국 천주교의 기반이 됐다.

박해기에 뿌리내린 공소는 전통문화와 천주교 신앙이 결합한 독특한 형태를 낳았다. 한옥과 양옥이 혼재된 공소 강당이나 전통 농경문화와 천주교 전례력이 결합한 독특한 형태의 농사력이나 세시풍속, 장례에서 보이는 연도 의식, 일 년에 두 차례 판공성사를 맞아 열리는 마을 잔치 등이 대표적이다. 가야산과 삽교천에는 현재도 100여곳의 공소가 남아있고 제기능을 하는 곳도 많다.

솔뫼성지, 신리성지, 여사울 성지 등은 빼놓을 수 없는 내포와 가야산의 천주교 성지다.

■ 가야산, 변화에 유연한 내포인의 터전

충청도 사람하면 으레 '양반'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실제로 조선시대 문과급제자의 52%가 충청도 출신이다. <택리지> 팔도총론에 "충청도는 산천이 평평하고 예쁘며, 서울이 가까운 위치여서 사대부들이 모여드는 곳이다"라고 기록됐을 정도다.

어떤 이들은 양반문화를 피상적으로 알거나 말기적 병폐가 만연했던 시기의 모습만을 떠올리면서 권위적이고, 당쟁에 혈안이 되고, 봉건적 착취 세력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야산 자락의 내포지방 양반들은 변화에 유연하고 능동적인 진취성이 남달랐다. 실사구시의 실학적 학풍을 적극 수용하고, 천주교의 전래와 확산에도 크게 기여했다.

예송논쟁으로 대표되는 우암 송시열(대전)과 명재 윤증(논산)이 충청 내륙의 양반 지식인이라면 사람과 사물의 성질이 같은지 다른지를 고민했던 남당 한원진(홍성)과 외암 이간(아산)의 호락논쟁은 내포를 대표하는 우주론의 완성이다.

내포의 양반들이 논파했던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논쟁은 훗날 이 지역 사람들이 계급과 신분의 귀천을 떠나 한말 위정척사 의병운동에 적극 뛰어들게 만들었고, 수많은 개화운동과 항일민족운동의 주요 인물들을 배출했다.

가야산과 내포 일원의 지식인들은 사람과 사물의 성질이 같으냐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유명한 호락논쟁이다. 이후 낙론은 북학운동으로, 호론은 위정척사운동으로 이어졌다.(자료출처=adipo.tistory.com)
가야산과 내포 일원의 지식인들은 사람과 사물의 성질이 같으냐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유명한 호락논쟁이다. 이후 낙론은 북학운동으로, 호론은 위정척사운동으로 이어졌다.(자료출처=adipo.tistory.com)

가야산 자락의 내포는 동학농민혁명이 거세게 불타오른 곳이기도 하다. 구한말 예산지역의 향촌사회는 여느 지역처럼 토호와 향반, 향리로 구성된 지배층과 평민·천민의 피지배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예산의 넓은 농토와 내포 깊숙이 들어온 바닷물로 물산이 풍부하고, 시장은 번성했다.

역설적이지만 풍요는 지배층과 농민 간의 갈등을 낳았다. 내포지방의 동학은 풍요 속 빈곤사회에서 급속히 전파됐다.

예산 출신의 동학지도자 박인호는 내포 일원에서 많은 지지기반을 얻었다. 박인호는 1894년 2차 봉기에 해당하는 예산지역 동학농민운동을 이끌며 예산 관작리 전투에서 동학혁명군이 거둔 최대의 승전보를 울렸다. 동학혁명이 실패한 뒤에도 박인호는 일제에 맞서 6·10만세 운동을 이끌었고, 일제의 패망을 기원하는 멸왜기도(滅倭祈禱)를 주도했다.

당시 내포 동학농민군이 작성한 호소문을 보면, 차별없는 인간 평등 운동과 전국적인 농민운동, 조선 왕조의 부정부패 척결, 외세를 몰아내는 반침략 자주운동을 외치고 있다.

봉건적인 신분의 차이와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 모든 계층과 세력들이 다양한 목소리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했던 사람들이 바로 내포인들이었다.

■ 5000만이 살고 싶은 내포, 그리고 가야산

내포문화권의 정체성을 찾고, 가야산 자락의 내포신도시의 도시 기능 확장을 위한 노력은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진행됐다. 좀더 시간을 거슬러 보면 민선 1기 심대평 지사 시절이던 1996년 '충남개도 100주년 기념 충남정신발양 심포지엄'을 열고, '4000만이 살고 싶은 충남 건설을 위한 충남정신 고취방안'을 모색한 적도 있다.

심대평 지사는 당시 심포지엄 격려사에서 "개도 100주년을 전환점으로 새로운 충남시대를 창출하고, 200만 도민의 정신으로 확산시키자"고 선언했다.

충남도는 지난 1996년 개도 100주년을 맞아 충남정신발양 심포지엄을 열고, 4000만이 살고 싶은 충남 건설을 선언했다.
충남도는 지난 1996년 개도 100주년을 맞아 충남정신발양 심포지엄을 열고, 4000만이 살고 싶은 충남 건설을 선언했다.

재미난 것은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도 일찌감치 가야산 주변의 내포 일대가 사람 살기 좋은 터라는 것을 알았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정치 권력이 수도 한양에 집중되면서 "말이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라"라는 속담까지 생겼지만 어찌된 일인지 서울의 정치인들이나 세도가들은 내포지방에 터를 닦았다.

"충청도에서 내포가 제일 살기 좋은 곳이다. 산천이 평평하고 예쁘며 서울 남쪽의 가까운 위치여서 사대부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었다. 서울의 세가들은 모두 이곳에 전답과 주택을 마련하여 이곳을 근거지로 삼지 않은 사람이 없다. 서울과 가까워서 풍속에 심한 차이가 없으므로 가장 골라 살 만한 곳이다"라고 했을 정도다.

충남도는 도청소재지인 내포신도시를 오는 2030년까지 인구 10만명의 도시로 키우기 위해 신도시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내포신도시 인구는 3만3369명(홍성 2만5354명, 예산 8015명)으로 목표치의 33% 정도다.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오는 2025년에 서해선 복선전철 삽교역 신설 사업이 완공되면 사정이 달라질 전망이다. 서해선 복선전철 사업은 충남 홍성에서 경기 화성 송산까지 90.01km 구간을 철도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총 4조 1487억원이 투입된다. 삽교역을 중심으로 경부고속철도와 서해선, 장항선을 잇는 서해축 고속철도망이 구축되고, 삽교역 주변(삽교리 86-2 일원) 97만㎡에 대해 역세권 도시개발사업이 추진된다.

충남도는 올해 1월 국가철도공단과 서해선 삽교역 신설 사업 시행 협약을 맺었다. 당시 김태흠 충남지사는 "삽교역은 충남혁신도시와 예산군의 관문이 될 것이며 충남도민들의 수도권 접근성을 높이고, 공공기관과 기업을 유치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선언했다.

김태흠 충남지사(가운데)는 17일 도청 상황실에서 최재구 예산군수(왼쪽), 김한영 국가철도공단 이사장(오른쪽)과 ‘서해선 복선전철 삽교역 신설 사업 시행 협약’을 체결했다.(사진=박성민기자)
김태흠 충남지사(가운데)는 17일 도청 상황실에서 최재구 예산군수(왼쪽), 김한영 국가철도공단 이사장(오른쪽)과 ‘서해선 복선전철 삽교역 신설 사업 시행 협약’을 체결했다.(사진=박성민기자)

이와 함께 내포신도시 홍예공원을 2025년까지 명품공원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오는 2026년 3월 개원을 목표로 525병상 규모의 ‘명지종합병원’ 건립을 추진 중이다. 지난 3월에는 내포신도시 국가산업단지를 유치해 2만3000여명의 고용유발효과와 6조 8000억원 규모의 생산 유발 효과가 기대된다.

충남도가 구상하는 내포신도시 확장 계획이 가야산과 삽교읍을 중심으로 북쪽 방향으로 기능과 외연을 넓히는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은 또 있다.

충남도는 '내포신도시 확장 기본구상 및 타당성 연구용역'을 통해 △내포신도시 개발 계획 및 실적 평가 △개발 여건 및 주변 도시 현황 분석 △미래 여건 변화 전망 △개발 수요 분석 △도시 발전 방향·지표 설정 △부문별 계획 등을 수립할 계획이다. 여기에 김태흠 지사가 직접 덕산온천을 내포신도시에 포함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김태흠 충남지사의 지시가 주목되는 이유는 21세기 국가경쟁력은 문화산업이 좌우할 것이라는 세계적인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의 말과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충남도청에서 바라볼 때 덕산은 가야산의 초입이다. 세계적인 관광산업의 트랜드가 산과 들, 바다를 즐기는 자연관광에서 문화관광으로 일대 전환을 하는 시점에서 삽교역과 덕산온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관광 라인이 구축된다면 4000만이 아니라 '5000만이 살고 싶은 충남'도 더이상 꿈이 아니다.

실제로 전세계 수많은 젊은이들이 '문화의 국제화(cultural globalization)'를 경험하고, 이 순간에도 문화상품의 생산과 소비에 앞장 서고 있다. 선진국 시민들의 소비 패턴도 물질적, 양적 소비에서 벗어나 정신적, 심리적, 문화적 욕구 충족으로 바뀌었다. 더이상 과거처럼 생활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소비 형태가 아니라는 의미다.

충남도는 가야산 자락의 내포 덕산지역에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하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한때 옛 사료 속에서나 찾을 수 있던 '내포'라는 단어를 충남도청 이전으로 되살린 것처럼 내포문화권의 중심지인 가야산이 품고 있는 수많은 문화상을 발굴해 풍부한 콘텐츠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개도 100년 당시 충남도가 염원하던 명품도시의 화룡점정이 내포의 주산(主山) 가야산을 중심으로 인구 10만의 정주여건과 첨단 문화관광이라는 두 날개로 날아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2021년 내포신도시 전경.(사진=충남도청)
내포신도시 전경.(사진=충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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