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가야산을 21세기 첨단 역사문화관광 거점으로

조선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이백리를 가다보면 가야산이 있는데 이 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이 바로 내포다"라고 썼다. 이중환이 가리킨 열 고을은 현재의 충남 예산, 덕산, 홍성, 결성, 서산, 해미, 태안, 당진, 면천, 신창(아산) 등이다. 모두 가야산의 사방(四方)에 위치한 고을이고, 충남도청소재지가 예산·홍성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내포신도시'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이유다. 올해 충남도는 내포신도시 개청 10주년이 된다. 지난 10년 동안 충남도는 15개 시·군을 아우르는 행정중심 신도시를 조성하고, 내포문화권의 정체성 확립에 구슬땀을 흘렸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포의 주산(主山)인 가야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관심은 미흡했다. 2023년 내포 충남도청 개청 10주년을 맞아 '내포의 주산(主山), 가야산의 문화관광 발전 및 기능 확장을 위한 제언'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충남=뉴스프리존] 박성민기자= 20세기가 강제적이고 물리적 힘이 주도한 하드파워(hard power)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타협과 설득, 이해의 과정이 맞물리는 소프트파워(soft power) 시대다. 소프트파워는 다수가 자발적으로 느끼는 '매력'에 기반한다.

소프트파워의 개념을 만든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하버드대 교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힘"이라며 "설득의 수단이 돈이나 권력 등 강요가 아니라 문화와 가치관, 소통, 공감 등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소프트파워는 갈수록 힘이 세진다"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관광'은 소프트파워에 딱 들어맞는 산업이다. 의미있는 역사·문화·생태적인 자원을 발굴하고, 적당한 스토리텔링을 입혀 대중이 매력을 느낄만한 상품으로 내놓는 과정이 판박이다. 물론 잘 먹히는 소프트파워는 사람들의 오감(五感)을 충족시키는 멋과 맛을 갖춰야 한다. 이를테면 세련된 문화·예술이나 공유할 만한 지식·정보·교육·가치 등의 괜찮은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마침 충남도청이 자리한 내포의 가야산은 '소프트웨어 부자(富者)'다. 자연경관 면에서도 우수한데다 수많은 역사, 문화, 종교, 생태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한보따리다.

■ 내포의 랜드마크, 가야산..."역사 문화 자원의 보물창고"

오랫동안 충남학의 한 축인 금강을 소재로 책을 써온 한국큰강연구소 박광수 소장(문학박사)은 일단 가야산 자체가 랜드마크라고 강조했다.

"충청남도 서부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다 뭍 안쪽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대에는 서해를 운항하던 뱃사람들이나 육로를 이용하던 옛 사람들의 랜드마크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했어요. 지금은 수로나 육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감소했지만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내포지역을 대표하는 산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박광수 소장은 <산경표>를 꺼내들었다. 한반도의 산을 논하면서 신경준의 <산경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산경표>는 한반도의 산줄기를 1대간, 1정간과 13개 정맥 체계로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내포의 가야산은 금북정맥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금북정맥은 경기도 안성시 소재 칠장산(七長山)에서부터 태안군 안흥면 서해 끝자락인 안흥진(安興鎭)까지 금강의 북쪽에 위치한 산줄기로 약 240km에 해당한다.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의 끝인 칠장산에서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금북정맥이란 이름을 얻었다. <산경표>는 칠장산을 칠현산(七賢山)으로 지칭한다.

칠현산(七賢山:516m)에서 출발해 청룡산(靑龍山), 성거산(聖居山), 차령(車嶺), 쌍령(雙嶺), 광덕산(廣德山), 차유령(車踰嶺), 사자산(獅子山), 백월산(白月山)에 이르고, 여기에서 오서산(烏棲山), 보개산(寶蓋山), 월산(月山), 수덕산(修德山), 가야산(伽倻山)에 이른다. 다시 팔봉산(八峯山), 백화산(白華山)·지령산(知靈山)으로 이어지며 안흥진(安興鎭)에서 끝난다.

금북정맥을 이루는 산 중에서 오서산(790m) 다음으로 가야산(678m)이 높은 축에 든다.

<산경표>는 가야산의 위치를 덕산에서 동쪽으로 9리, 해미 쪽에선 서쪽으로 10리(德山治在東九里 海美治在西十里)라고 소개한다.

또 다른 책인 <동국여지승람> '덕산현 산천조'에 "가야산은 현의 서쪽 11리에 있으며 해미현에도 있다(伽倻山 在縣西十一里 又見海美縣)"고 나온다. 같은 책 '해미현 산천조'에는 "가야산이 동쪽으로 11리에 있고 상왕산과 연결되어 있다(伽倻山 在縣東十一里與象王山相連)"고 기록돼 있다.

후대의 지리지에서도 가야산의 위치는 덕산과 해미의 사이에 위치하며 거리표기가 대동소이하다.

금북정맥은 한반도 중서부지역의 물길을 갈라놓는다. 정맥의 남쪽 유역의 물은 모두 금강으로 흘러든다. 북쪽지역의 물은 충북지역에서는 달천을 이루어 남한강에 이르고, 경기지역에서는 안성천을 이룬다. 서부지역은 곡교천, 무한천, 삽교천을 이루어 북쪽 삽교호로 흘러든다. 보령과 홍성지역의 일부 하천은 직접 서해로 들어간다.

가야산 주변의 하천으로는 운산면의 역천과 해미면의 해미천, 산수천, 황락천이 있고, 덕산의 대치천, 덕산천이 있다.

1973년에 가야산지구와 덕숭산지구가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가야산지구는 예산군 덕산면의 시량리, 사천리, 둔리, 상가리, 광천리 등을 포함하고, 관내에는 가야사지, 옥계저수지, 남연군묘, 상황사지, 보덕사, 쉬흔길바위, 옥양폭포, 거북바위 등 역사문화자원과 자연경관자원을 품고 있다.

덕숭산지구는 천년고찰 수덕사를 중심으로 환희대, 견성암, 금강암, 정혜사, 소림초당, 만공탑, 일주문, 여승당 등의 역사문화자원이 가득하다.

■ 가야산, '힘쎈충남'의 랜드마크..."가치 높은 관광자원으로 재해석해야"

'석탄을 캐기보다 호텔 한 채를'. 관광산업의 필요성을 단 한 줄로 요약한 말이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린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 幸之助)가 한 말이다. 무려 1954년 '문예춘추' 5월호에 기고한 '관광입국(觀光立國)의 변(辯)'이라는 글의 부제목이다.

마쓰시타는 "물품을 수출하려면 자원을 써야 하는데 자연은 아무리 봐도 줄어들지 않으니 이만큼 득이 되는 사업은 없다. 달러를 얻는다는 점에서 관광도 넓은 의미에서 훌륭한 무역이다. 외국인 관광객 100만명이면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썼다.

그리고 ①관광성을 신설하고, 관광대신(장관)을 임명한다. 관광대신을 총리, 부총리에 이은 중요한 포스트에 둔다 ②국민에게 관광에 대한 강한 자각을 촉구한다 ③각국에 관광대사를 보내 크게 선전 계몽한다 ④일부 국립대학을 관광대학으로 개편해 관광가이드를 양성하는 구체적인 인바운드 관광진흥책을 펼친다 등의 파격적인 제언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망한 일본이 전후 재건에도 손이 모자라던 시기였고, 그해 일본으로 입국한 외국인수가 5만 명도 안 되던 것을 감안하면 마쓰시타의 선견지명은 놀라울 따름이다.

실제로 일본은 2013년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을 돌파했고,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에는 3188만명을 기록했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일본의 산업 동력으로 '관광'의 필요성을 역설한 기고문(자료출처=konosuke-matsushita.com)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일본의 산업 동력으로 '관광'의 필요성을 역설한 기고문(자료출처=konosuke-matsushita.com)

이 대목에서 곱씹어 봐야 할 것이 민선 8기 충청남도의 슬로건인 '힘쎈충남'이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획기적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발전을 주도하고, 따뜻하면서도 품격 있는 220만 충남도민의 삶을 만들어내겠다는 각오를 '힘쎈충남'에 담았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훈수를 참고하면 '획기적인 경제 성장'의 바탕은 '관광'이라는 키워드가 제격이다. 그리고 가야산은 더할 나위 없는 관광자원이다.

박광수 소장은 가야산을 관광자원으로 쓰려면 말 그대로 가치로 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문화자원으로서 가야산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자사전에서 자원(資源)의 의미는 첫째로 지하의 광물(鑛物)이나 임산물(林産物)·수산물(水産物) 등과 같이 생산의 바탕이 되는 여러 가지 물자(物資)이고, 둘째는 어떤 목적에 이용할 수 있는 물자나 인재(人材)로 정의하고 있어요. 가야산은 충남도의 획기적인 경제 성장의 바탕으로 충분한 자원입니다. 그저 그런 산이나 땅 정도로 이해하지 말고, 역사문화자원이라는 인식이 필요해요. 역사와 문화의 보고인 가야산을 관광이라는 첨단산업의 목적으로 이용하고,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자원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 가야산, '백제의 미소' 하나만 봐도 '심쿵'

문화재청 문화재자료 통계에 따르면 충남 15개 시·군의 문화재는 총 1109종이다. 이 중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내포지역의 예산군이 89개, 서산시 78개, 홍성군 57개 등이 분포돼 있다. 이는 유무형의 문화재를 모두 아우른 수치다.

보통 문화재는 현장에서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우와 박물관이나 전시장에 관람할 수 있는 문화재로 나뉜다. 앞서 언급한 3개 시·군에서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가 모두 가야산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가야산과 직접 연결되는 문화재를 세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야산과 관련 있는 예산군(덕산면) 소재 문화재는 국보 1개, 보물 5개, 사적 1개, 국가등록문화재 1개, 충청남도 기념물 4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8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4개, 국가민속문화재 1개 등이다.

서산시의 문화재 중에서 가야산과 관련된 문화재는 국보 1개, 보물 11개, 사적 2개, 충청남도 기념물 1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3개 등이 있다.

가야산의 이름은 불교와 인연이 깊다. 산 안팎으로 이어지는 서산과 예산의 역사문화자원도 대부분 불교와 관련된 것이 많다.

많은 불교 유산 중에서도 가야산을 대표하는 슈퍼스타가 있다. 바로 영원한 백제의 미소 '마애여래삼존상'이다.

국보 제84호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磨崖如來三尊像)은 무려 1500여년 동안 속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지내다가 1959년 4월 어느 날 불현듯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동네 나뭇꾼들 사이에서는 본부인과 첩(妾)을 거느린 팔자 좋은 산신령이 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돌았다고 한다.

발견 당시 국립부여박물관장이던 홍사준은 용현리 계곡 위쪽에 있는 보원사지 조사를 마치고 내려오던 길이었다. 우연히 곁을 지나던 나무꾼에게 "근처에 탑이나 불상, 사람이 새겨진 바위가 없습니까?"라고 물었고, 나무꾼은 "부처님은 못 봤지만유, 저기 인바위에 가믄 양 옆에 본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를 데리고 활짝 웃고 있는 산신령 바위는 봤슈. 근데 작은 마누라가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서 손가락을 얼굴에 갖다대고 용용 죽겠지허구 약을 올리니까 본 마누라가 짱돌을 집어 던지려고 하는 것이 새겨져 있슈"라고 답했다.

직감적으로 바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니 지금까지도 한국 역사·고고·미술학계의 대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마애삼존불이 있었다.

마애삼존불이 '백제의 미소'라는 멋드러진 별명을 갖게 된 건 삼불(三佛) 김원용 선생(1922-1993)이 쓴 '한국 고미술의 미학'('세대' 1960년 5월호)이라는 글이 시작이다.

"백제 불상의 얼굴은 현실적이며 실재하는 사람을 모델로 쓴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 미소 또한 현세적이다...(중략) 그런 중 가장 백제적인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은 작년에 발견된 서산 마애불이다. 거대한 화강암 위에 양각된 이 삼존불은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말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미소를 띠고 있다. 본존불의 둥글고 넓은 얼굴의 만족스런 미소는 마음 좋은 친구가 옛 친구를 보고 기뻐하는 것 같고, 그 오른쪽 보살상의 미소도 형용할 수 없이 인간적이다. 나는 이러한 미소를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기를 제창한다."

한국 미술사학계의 스승인 삼불의 마음을 '심쿵'하게 했던 마애삼존불은 여전히 변함없는 미소로 속세에 찌든 대중에게 웃으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가야산은 이 '백제의 미소' 하나만으로도 관광객들의 심장에 ‘쿵’하는 설렘을 선물하는 산이다.

마애삼존불과 약 10km 인근의 보원사지까지 묶어서 다녀오면 금상첨화다.

보원사지는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있었던 절터다. 최치원의 <법장화상전>에 "보원사(普願寺)가 화엄 10찰 중 하나였다"는 구절이 있고, 고려 광종 때 왕사였던 법인국사가 주석했던 절로 꽤 규모가 상당했던 사찰로 추정된다.

보원사의 실체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신라 흥덕왕(興德王) 2년인 827년 보조선사 체징(體澄)이 보원사에서 구족계(具足戒, 출가한 사람이 정식으로 승려가 될 때 받는 계율인)를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전라남도 장흥군 보림사에 있는 보조선사탑비(普照禪師塔碑)로 밝혀진 것이다.

보원사는 현재 천년의 자취는 사라지고 절터와 기록으로만 남아있다.
보원사는 현재 천년의 자취는 사라지고 절터와 기록으로만 남아있다.

서산시는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아라메길'이라는 친환경 트레킹 코스를 운영하는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유명한 유기방가옥에서 마애여래삼존상, 보원사지, 개심사, 해미읍성으로 이어지는 '아라메길 1코스(21.4km)'는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산책길로 손색이 없다.

■ ​가야산은 천하대명당 자미원(紫薇垣)이다

'자미원(紫微垣)'은 동아시아의 별자리인 삼원의 하나다. 삼원 중 두 번째인 중원으로 상원은 태미원(太微垣), 하원은 천시원(天市垣)이다.

서양 별자리로 치면 큰곰자리의 일부로 북극과 작은곰자리, 용자리까지를 아우른다.

자미원은 풍수에서 천하의 명당으로 꼽힌다. 하늘에 있는 별자리 중 제왕이 거처하는 자리가 땅에서도 똑같이 드리워진 곳이 자미원이다.

풍수학계에서는 당나라 도사 양태진이 중국에는 양택(陽宅) 자미원이 있고, 동방의 백제 땅에는 음택(陰宅) 자미원이 있다고 언급했다고 설명한다. 신라 원효대사는 <원효결서>에 "오성지간(烏聖之間), 즉 오서산과 성주산 사이의 산 모습과 물 기운이 가장 뛰어나 우리나라 땅의 내장부와 같다. 이를 내포라고 한다. 그곳에 자미원이 있다"고 썼다.

가야산은 천하의 명당 자미원으로 지목된 유일한 산이다. 조선말을 뒤흔든 역사적인 '명당(明堂)' 사건의 배경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다.

이하응은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가야산으로 이장한다. 정만인(鄭萬仁)이란 지관이 물꼬를 터줬다. 가야산 동쪽에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오는 자리가 있다는 말을 전했다. 파락호 이하응의 반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파락호(破落戶)는 놀고 먹는 건달이나 불량배다. 본래는 세도가였던 집안이 풍비박산(風飛雹散) 난 뒤 방탕하게 된 자손을 가리킨다. 이하응이 그랬다.

아버지 남연군은 사도세자의 둘째 은신군의 양자다. 영조의 증손자지만 세도정치가 한창이던 조선말 왕손은 힘이 없었다. 떠꺼머리 강화도령이 왕(철종)이 되던 시절이다. 이하응도 그랬다.

파락호의 삶은 왕실을 쥐고 흔드는 안동김씨에게 복수하기 위한 연극이었다. 오직 왕통을 거머쥐는 것 만이 세도정치를 끝내는 것이었고,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명당에 쓰고, 발복을 기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광천 오대산의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와 가야산의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를 손에 쥐었고,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이대천자지지'에 가까스로 부친의 묘를 이장했다.

결과는 조선의 26대 고종과 27대 순종이라는 2대에 걸친 천자로 증명됐다. 그야말로 천지개벽(天地開闢),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묫자리는 본래 가야사라는 큰 가람이 자리하고 있던 곳이었다. 이하응의 야심에 가야사는 폐사가 됐다. 그나마 찔리는 마음이 있었던지 대신 '보덕사'라는 이름의 새 절을 지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남연군묘(사진=박광수 박사)
남연군묘(사진=박광수 소장)

가야산이 천하의 명당인 것은 왕의 태실이 봉안된 점으로도 알 수 있다. 남연군묘가 이장되기 전에 헌종의 태실이 1827년(순조27)에 옥계저수지 옆에 자리했고, 더 이른 시기에는 13대왕 명종의 태를 봉안한 태실이 1538년(중종33)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에 조성됐다.

조선 왕들의 태실은 일제강점기 시절 관리의 편의를 이유로 서삼릉으로 모아졌다. 자연스럽게 전국 각지의 태봉비와 가봉비 및 석물이 파괴됐다. 헌종과 명종 태실도 예외일 수 없었다.

명종 태실은 1975년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의 노력으로 거의 완벽하게 복원됐고, 헌종의 태실비는 수년전 예산 옥계저수지 물속에서 발견됐다.

가야산 동쪽 상가리의 남연군묘와 옥계리에 자리한 헌종태실, 가야산 서쪽에 위치한 운산 태봉리의 명종태실 등은 가야산이 불교의 성역이면서 성리학적 이성주의를 추구했던 조선조 지식인들의 풍수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특수한 대목이다.

천하대명당 자미원으로 지목되는 가야산에 위치한 명종 태실.(사진=박광수 박사)
천하대명당 자미원으로 지목되는 가야산에 위치한 명종 태실.(사진=박광수 소장)

■ 가야산 자락의 유적, 천년사찰 '수덕사'와 천주교의 눈물 '해미읍성'

"백제는 승려와 절과 탑이 많다." 중국의 사서(史書)인 <북사(北史)>와 <수서(隨書)>, <주서(周書)> 등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들 문헌에 나오는 백제 사찰은 흥륜사(興輪寺), 왕흥사(王興寺), 칠악사(漆岳寺), 수덕사(修德寺), 사자사(師子寺), 미륵사(彌勒寺), 제석정사(帝釋精寺) 등 12개다. 하지만 현재까지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사찰은 수덕사뿐이다.

충남의 한 가운데를 빗금으로 가로지르는 금북정맥은 서해를 향한 차령산맥의 낙맥(落脈)으로 가야산 남쪽에 덕숭산을 만들었다. 수덕사는 이 덕숭산 자락에 있다.

수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의 본사로 충남지방의 말사 60여개를 관장한다. 우리나라 4대 총림의 하나인 '德崇叢林(덕숭총림)'이며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한국불교의 선지종찰(禪之宗刹)로 꼽힌다.

아쉽게도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이 없다. 학계에서는 백제 위덕왕(威德王, 554~597) 재위 시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수덕사 경내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와당이 증거다.

수덕사는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의 가람이 소실됐지만 대웅전(국보 제49호)은 다행히 옛 모습을 보전했다. 1937년 만공 선사가 해체, 수리공사를 진행하면서 대웅전 동측 내부 전면에서 '단청개칠기(丹靑改漆記)'가 발견됐고, 중종 23년(1528)에 대웅전 색채보수, 영조 27년(1751)과 46년(1770)에 대웅전 보수, 순조 3년(1803)에 대웅전 후면의 부연보수와 풍판의 개수 등 4차례 대웅전 보수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

수덕사는 켜켜이 쌓인 세월만큼 에피소드가 많다. 이응로 화백과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소설가 나혜석의 수덕여관, 신여성 김일엽의 출가, 1967년 발표된 무명가수 송춘희의 '수덕사의 여승' 등 한국 근현대사 문화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는 절이다.

가야산 자락은 조선 후기와 근대, 현재에 이르는 동안 한국 천주교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내포의 많은 고을에 천주교 신도들이 모여 신앙공동체를 만들었고, 그만큼 많은 박해와 순교, 부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 태어난 여사울성지와 신리성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솔뫼성지가 가야산의 지척에 있다. 그리고 서해 방어를 위한 관방시설에서 천주교 박해의 현장이 되버린 해미읍성이 있다.

충남 내포지역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순교자들의 성지다.

1786년 조선에 천주교 박해의 광풍이 휘몰아쳤다. 쇄국론자들에게 천주교는 눈엣가시였다. 관원에게 잡혀 온 신자들은 배교를 강요당했지만 믿음을 버리는 대신 목숨을 버렸다.

특히 서산 해미는 수많은 순교자의 피로 물들었다. 병인박해 당시 해미천변에서 희생된 신자는 무려 1000명에서 2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체 순교자가 8000명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대부분은 평범하고 선량한 조선의 백성들이었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교인들이 '예수 마리아, 예수 마리아'를 끊임없이 외쳐 이후 해미천변은 '여숫골'로 불렸을 정도다.

해미에서 희생자가 많았던 이유는 해미읍성 때문이다. 해미읍성은 호서좌영으로 인근 12개 군영을 관할하고, 재판권을 행사했다. 국사범으로 잡혀온 내포의 천주교인들은 가야산을 넘어 해미읍성에서 집단 처형됐다.

해미읍성 안에는 호야나무라는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다.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을 매달았다는 나무다. 호야나무는 당시 상황을 말로 전하진 못하지만, 과거를 돌아봐 달라는 듯 무성한 잎을 달고 녹음을 드리우고 있다.

해미읍성 중앙에 자리한 350년 수령의 회화나무. '호야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천주교 신자를 매단 철사자국이 어렴풋이 남아 있어 천주교 박해의 아픔을 간직한 나무다.
해미읍성 중앙에 자리한 350년 수령의 회화나무. '호야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천주교 신자를 매단 철사자국이 어렴풋이 남아 있어 천주교 박해의 아픔을 간직한 나무다.

■ 가야산의 소프트파워, '힘쎈충남'의 관광 거점으로

과거 없는 현재와 미래는 없다. '힘쎈충남'이 대한민국의 신성장 슬로건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가야산이라는 내포의 주산(主山)이 갖고 있는 무수한 스토리텔링과 소프트파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개발이라는 '하드'한 인프라 구축에만 매몰되면 답을 찾을 수 없다.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관광입국'을 제언한 게 벌써 70년 전이다. 그렇다고 선구자의 역할이 관광대국 일본을 만들었다고 자조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세계인을 사로잡는 한류가 있다. 국적과 인종, 이념을 넘어 어떻게 하면 소프트파워가 선택받을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멀리 바라볼 것도 없다. 소설 속 가상의 인물인 '성춘향'이 전북 남원을 먹여 살리고, 황해도 사람인 심봉사 딸이 전남 곡성에서 '심청축제'로 거듭났다. 바로 옆 대전은 2024년 파리올림픽 공식종목으로 채택된 브레이크댄스를 주축으로 청소년들의 주류 문화인 힙합을 통한 문화관광형 페스티벌을 10월에 개최한다. 재미없는 '노잼도시'의 이미지를 털고, 젊고 다이내믹한 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문화관광자원을 개발한 셈이다.

관광산업의 트렌드도 변하고 있다. 산과 들, 바다를 유람하는 자연관광에서 인문·예술·문화·역사 등이 어우러진 역사문화관광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가야산 마애여래삼존상의 미소는 언제든지 세계인의 가슴을 '심쿵'하게 할 소프트파워를 갖고 있다.

가야산이 품고 있는 무수히 많은 자원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그것을 엮어내는 방법론이 요구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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