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능 엇박자 ‘대대적 감사 예고’

지난 6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주호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관련해 변별력은 갖추되 학교 수업에만 충실하면 원만하게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하고, 그 외 내용은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해 집중단속을 시작한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교육부는 '공교육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최근 논란이 된 수능 킬러문항 등과 관련해 이날부터 2주간 학원 과대·과장 광고 등에 대한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사진: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해 집중단속을 시작한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교육부는 '공교육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최근 논란이 된 수능 킬러문항 등과 관련해 이날부터 2주간 학원 과대·과장 광고 등에 대한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다음 날인 16일에는 6월 모의평가 난이도 조절 실패를 이유로 교육부 대입담당 국장이 경질됐다. 대통령으로부터 ‘교과 과정 내 출제’ 지시가 있었지만, 6월 1일 치러진 모의평가에서 이를 반영하지 않아 문책 인사라는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19일에는 수능 출제를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까지 사임 의사를 밝히기에 이른다. 이규민 원장은 “오랜 시간 수능 준비로 힘들어하고 계신 수험생과 학부모님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 평가원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사례는 분명 있지만 수능을 앞두고 모의평가 결과 때문에 사퇴하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교육부는 교육과정을 벗어난 수능 출제 논란을 언급하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해 12년 만에 초유의 대대적인 감사까지 예고했다.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킬러 문항이 수능에 출제됨으로써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몰고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이렇듯, 일련의 ‘경질, 사퇴, 감사’에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은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 승부수 ‘사교육비’와의 전쟁

이번 발언이 논란이 된 배경에는 지난 ‘6월 1일의 모의고사’가 있다. 통상 6월 모의고사는 그 해의 수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지난 6월 26일, 교육부는 논란이 된 이른바 ‘킬러 문항’의 실제 사례를 공개했다. 이날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지난 6월 모의평가와 지난 3년간 수능에 출제된 ‘킬러 문항’ 26개를 공개했다. 

과목별로는 국어영역 7개, 수학영역 9개, 영어영역 6개, 과학영역 4개였다. 고등학생 수준에서는 어려운 지문이 나온 국어 문제, 대학 수준 개념을 알면 풀리는 수학 문제 등이 예시로 꼽혔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을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으로 정의했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외부위원을 포함한 팀을 구성해 지난 수능과 6월 모의평가를 분석하여 킬러 문항을 선별했다고 설명한다.

이에 교육부가 사교육비와의 전쟁에 칼을 빼든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사교육 카르텔·부조리에 엄정 대처할 방침이다. 추후 교육부는 교사를 중심으로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원회’를 신설, 수능 출제 단계에서 킬러문항을 핀셋 제거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입시학원이 수능 출제 경험 교사·교수로부터 모의고사 문항을 구입할 수 없도록 수능출제위원의 수능 관련 강의·자문 등 영리행위가 일정 기간 금지된다.

통계청이 올해 3월 7일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전체 학생 기준 41만 원으로 전년 36만 7000원에 비해 11.8% 증가하였다.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교육계 인사들은 사교육에 함몰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킬러 문항 배제 자체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교육부가 제시한 킬러 문항의 기준이 모호하고 자의적이라는 데 있다. 

다양한 선택에서 과목들 간 어떤 편차가 이뤄진다면, 그것은 과목 선택에 있어 유불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요소이다. 과목 간의 득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 새로운 복병 ‘준킬러문항’ 대두

정부의 방침대로 ‘킬러 문항’이 배제 되면 사교육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교육 현장에서는 킬러 문항이 줄어든다고 해도 수능의 영향력은 여전하여 사교육이 줄지는 않을 거란 반응이 나온다. 

현재 수능에서는 성적 상위 4% 내로 진입하면 1등급을 받게 된다. 별다른 대책 없이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만점에 가까운 수험생이 대폭 늘어나면,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떨어지는 등 ‘최악의 물수능’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만점자 속출이라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준 킬러 문항’이 다수 포진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또한 입시 현장에선 수능시험이 도입된 지 한 세기가 경과하면서 문제들이 유형화돼 있는데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문제 푸는 기계’로 불릴 정도여서, 초고난도 문제 배제 이후 만점자들이 속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입시업계에서는 통상 정답률 5~10% 이내의 문항을 킬러 문항, 20∼30%의 문항을 ‘준 킬러 문항’이라고 간주한다. 킬러 문항에 아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수험생들이 이제는 준 킬러 문항에 집중하여 너도나도 사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사교육 경감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더욱이 사교육을 받는 학생 대부분은 킬러 문제를 풀기 위해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다. 킬러 문항이 아닌 다른 문제를 빠르게 풀어 정답률을 높이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 미완 숙제 ‘변별력까지 확보해야’

출제 범위를 ‘공교육 과정’으로 제한하되, 대학 수학에 필요한 학생들의 다양한 사고력을 측정해야 한다는 점은 풀기 힘든 숙제이다. ‘킬러 문항’을 배제하는 동시에 변별력까지 확보할 ‘묘책’을 제시할 수 있냐는 것이다.

불과 수능이 5개월가량 남은 상태에서 수능의 난이도를 놓고 대혼란이 커진 만큼, 정부는 수험생들에게 정부가 출제 방향성을 상세하게 고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출제에서 배제한다는 킬러 문항의 기준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밝혀야 한다.

일시적 미봉책으로 수능의 문제점을 봉합해서는 안 된다. 입시의 공정성 확보와 사교육 절감은 교육개혁과 연계해 주도면밀하게 단계적으로 풀어가되 출제기조는 충격요법이 아닌 예측가능한 선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사교육비 문제는 교육과정, 입시제도, 대학체제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다. 이에 교원·교육시민단체는 사교육의 근본 원인은 학벌주의에 기인한다며 장기적·종합적 비전과 대책 수립, 공교육 정상화,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주문하고 있다. 
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과 교육당국의 아마추어 대응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교육부 국장 경질과 출제기관 감사로 해결될 일은 분명 아니다.

[교육부 제공]
[교육부 제공]

지난 6월 23일 보도된 ‘뉴스토마토’ 여론조사는 윤 대통령 발언이 ‘수능을 앞둔 교육 현장에 일대 혼란을 초래했다’는 응답이 56.9%에 이른 반면, ‘문제될 게 없다’는 응답은 36.2%에 그쳤다. 

지난해 실시된 2023년 수능은 문·이과 구분 없이 통합수능으로 치러졌다. 국어·수학영역에서 학생들이 공통과목, 선택과목을 함께 치르는 방식이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올해 11월 16일 목요일에 시행된다. 

정부는 올해 수능 출제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직까지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교육 대책 실효성, 수능 혼란 수습 방안을 두고 상당기간 논란이 지속될 것이다.

사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했다.
사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했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