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0일)가 말복이었다. 삼복 중 마지막 날이다.

이때가 한해 중 가장 더울 때다. ‘삼복더위’라고 한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복날이 되면, 개고기 식용 논란이 뜨거웠다. 특히 서양인은 유독 한국인의 개고기 식용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개 식용을 위해 행해지는 잔인한 학대는 멈춰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이 그 선봉에 섰다. 

(사진=독자 제공)
(사진=독자 제공)

그럼 개고기 식용에 대한 동서양의 시각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환경과 생활방식의 차이를 빼고는 얘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 유목 생활했던 서양인은 상대적으로 농경민족보다는 개와 친했을 것이다. 일찍부터 양을 치는 데 개를 이용했다. 또 중요한 난방의 도구이기도 했다. 유목민의 생활 터전인 초원은 일교차가 매우 크다. 천막 속에서 흔히 개를 안고 잤다. 그것이 태양왕으로 불린 루이 14세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 프랑스에는 벽난로(페치카)가 전해지지 않았다. 그는 추운 겨울에 여러 마리의 개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동양에서도 서양과 마찬가지로 개는 인간과 매우 가까운 동물이다. 일례로 우리나라 지명을 보면 알 수 있다. 개와 관련된 게 무려 2,414개나 된다는 게 이어령 박사의 주장이다. 지명은 어떤 대상에 존재의 의미가 있다. 개와 친숙하지 않았다면 그런 이름을 붙일 리가 없다. 천안의 ‘개목고개’가 가장 유명한 곳이다. 서울의 구로구 개봉동도 종전에는 ‘개웅마을’이었다.

그럼 서양인은 전혀 개고기를 먹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최근 스위스의 동부지역에서 개고기를 즐긴다는 사실이 현지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이 지역 사람은 개고기로 소시지, 훈제, 건포 등을 만들어 상식해왔다고 한다. 특히 맹도견으로 잘 알려진 로트와일러를 좋아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게 있다. 그들은 자신이 키운 개를 잡아먹는다. 스위스 정부가 개고기 유통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매우 특별하고 예외적인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개고기나 그들이 먹는 개고기나 뭐가 다를까. 고대로 올라가면 그들도 동양과 마찬가지였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우리의 복(伏)날에 해당하는 절기가 서양에도 있다. ‘Dog Day’다. 그들도 혹시 오래전 삼복더위에 개를 먹은 것은 아닐까. 

여기서 잠깐. 복날 우리는 기를 보충하기 위해 기름진 음식을 뜨겁게 해서 먹는다. 개장국, 삼계탕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찬 음식을 먹는다. 특히 찬 국수와 전병이 대표적 복날 음식이다. 서양의 영향을 받은 일본은 복날을 서양처럼 Dog Day라고 한다. 그리고 장어를 특별한 음식으로 먹는 습관이 있다. 아마 오랫동안 육식을 금해온 전통일지 모른다.

동양에서 개고기 식용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다. 여기에 진나라 때 삼복날 제사에 개고기를 제물로 신명에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한자 ‘獻’(바칠 헌)은 개를 솥에 삶는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다. 개가 중요한 희생물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제사가 끝난 뒤 개고기를 음복했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우리나라에서 찾을 수 있는 최고(最古)의 개고기 식용 흔적은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황해도 안약고분 3호 벽화에 도살된 개의 모습이 보인다. 또 《고려사》에 세 군데 개고기 식용, 개고기 직업과 관련된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상황이 크게 바뀐다. 이성계의 역성혁명은 ‘음식 혁명’이기도 했다. 육식을 허용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특히 조선의 양반은 개고기를 유별나게 좋아했다. 개고기를 즐긴 공자를 따라 한 때문이다. 조선 500년 내내 그런 흐름이 이어졌다. 정약용은 동생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개고기를 먹을 것을 권했다. 또 박지원은 개고기 요리 레시피를 남기기도 했다. 클로드 샤를 달레 선교사의 《조선교회사》에서도 ‘조선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는 개고기’라고 적고 있다.

조선 사람은 마을 사람과 함께 개고기를 잡아서 나눠 먹었다.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개장국을 끓였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을 위해 소고기를 넣은 장국을 끓였다. 바로 육개장이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 여름철에 맞게 되는 어르신의 생일 잔칫상에 반드시 개고기를 올렸다. 충청도 일부 지역에서는 문상객에게 개고기를 대접하기도 했다.

조선에서 이처럼 인기를 끈 다른 이유는 없을까. 그 대답은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있다. 이수광은 복날의 ‘伏’을 음기가 장차 일어나고자 하지만 남은 양기에 압도되어 상승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복날 개고기를 먹으면 음기와 양기의 조화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물론 작금 상황은 많이 변했다. 3~4가구 중 한 가구는 애완견을 키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개고기를 드러내놓고 먹기는 쉽지 않다. 2021년 한 여론기관에서 개고기 식용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개고기를 먹어본 사람은 12%에 불과했다. 어쩌면 개고기 식용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첫 번째 조선인은 미국 유학파인 이승만 전 대통령일지 모르겠다. 그는 개를 세 마리 키웠다. 하와이로 망명한 뒤 나중에 기르던 개를 미국으로 데리고 갔다. 당시 언론은 이를 ‘이승만 개 극비망명’이라고 제목을 부쳤다. 

중국도 우리나라만큼 개고기를 즐겼다. 중국은 개고기를 ‘산리우향로우(三六香肉)’이라고 부른다. 향기 나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북한에서 단고기라고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만큼 대중적 음식이다. 지금도 삼복더위에 전국 곳곳에서 개고기 축제가 열린다. 가장 유명한 게 위린시의 개고기 축제다. 축제 기간(10일) 동안 1만 마리의 개를 도살한다. 중국에서는 개고기를 또 ‘三六(산리우)’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개고기 요리책인《산리우징(三六經)》에는 고기 맛과 관련, 一黃 二黑 三化 四白(누렁이, 검은 개, 얼룩무늬 개, 흰개 순으로 맛있다)라고 품평했다. 개의 털빛에 따른 맛의 순위를 매기고 있다. 개고기를 파는 중국 전통 재래시장에 가면 개고기의 고리를 남겨두고 있다. 색깔을, 아니 맛을 분간하기 위해서다.

중국인이 얼마나 개고기를 즐겼는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청나라 말기에 실력자인 위안스카이가 독일제국의 빌헬름 2세 황제로부터 애완용 개를 선물로 받았다. 위안스카이는 그것을 먹어 치웠다. 그리고 ‘맛있게 잘 먹었다’라고 인사했다. 중국에서 개고기 식용이 더욱 활발해진 시기는 공산혁명 과정이었다. 애완용 개는 중국 공산당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부르주아의 상징처럼 여겼다. 그렇다 보니 다 먹어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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