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뉴스프리존]김경은 기자= 최근 언론이 주목한 두 사람이 있다. 박병곤 판사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다. 박 판사는 ‘판결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광복절 특별사면의 대상이 된 김 전 청장은 ‘법치의 사유화’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이 두 사안은 표면적으로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나의 사법부의 일이다. 다른 하나는 행정부의 일이다. 판결은 판사의 불가침의 권한이다. 특별사면 역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어느 하나 왈가불가할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 두 사람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치의 사법화’라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박 판사 얘기부터 하자. 지난 8월 10일은 정진석 의원(국민의힘)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1심 선고공판이 있던 날이다. 정 의원은 지난 2017년 9월 20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씨와 아들이 박연차 씨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 싸움 끝에 권 씨는 가출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섰다. 이 때문에 정 의원은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 판사는 정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집행유예 없는 실형 선고였다. 검찰은 재판 없는 약식기소로 벌금 500만 원을 구형했다. 양형 간격이 컸다. 검찰의 구형보다 법원의 선고 양형이 꽤 높았다. 그렇다고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박 판사가 양심과 법률에 따라 내린 결정(헌법 103조)이면 그렇다.

판결문은 관련 사건의 위법성 정도와 피고인의 양형을 적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치에 맞고 논리에 부합하도록 설명한다. “노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인물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부부는 공적 관심사도 아니다”라는 판결문의 언급도 그런 취지로 보인다. 보통 사람도 이 정도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징역 6개월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인 셈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애당초부터 그런 합리적 신뢰를 기대할 수 없다. 정치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사인과 관련 있는 문제다. 또 피고인은 집권 여당의 대표권한대행과 국회 부의장을 지낸 거물이다. 그것보다 판결의 결과에 따라 정치적 이해가 달린 문제다.

‘소송의 해결사’였던 박 판사도 그쯤은 알고 있었다. 정 의원 사건에 대한 선고를 앞두고 법조인 인명사전 격인 법조인대관에서 자신의 개인정보를 삭제했다. 삭제된 정보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숨기고 싶은 흑역사는 순식간에 낱낱이 까밝혀졌다. 그의 소셜미디어 활동하면서 게재했던 글들이 공개된 것이다. 심지어 고등학생 때 썼던 글도 소환됐다. 법복을 입기 전 무슨 생각을 했든 문제 될 게 없다. 문제는 판사로 임용된 이후다. 박 판사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숨기지 않았다. 지난 대선(2022년)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것과 관련, “이틀 정도 소주 한잔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고 썼다.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서울시장 보궐선거(2021년)에서 패배한 후에는 “승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피를 흘릴지언정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는 드라마 장면을 캡처해서 올렸다. 공정한 재판의 전재인 정치적 중립에 대해 의심을 받을만한 내용이다.

사실 사법부가 스스로 불신을 자초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수없이 많다. 법원은 ‘대장동 50억 클럽’의 일원인 곽상도 전 의원에게 무죄(1심)를,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금지 관여한 혐의자 차규근 전 출입국행정국장에게 무죄 선고(1심)했다. 조국(曺國) 재판의 1심 판결에 3년 2개월, 윤미향의 1심 판결에 2년 5개월이 걸렸다. 2018년 지방선거 때 불거진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재판은 아직 1심 진행 중이다. 황운하·최강욱 의원도 벌써 몇 년째 1심에 머물고 있다. 임기는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모두 ‘판결의 정치화’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의 악마는 법복을 입고 있다’라는 비난받고 있다.

김태우 전 서울 강서구청장(사진=연합뉴스)
김태우 전 서울 강서구청장(사진=연합뉴스)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갔다. 사법 불신이다. 불신받는 사법부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잘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바로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의 사면이다. 김 구청장은 문재인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으로 조국 당시 민정수석의 감찰 무마 의혹 등을 제기한 인물이다. 김 전 청장은 구속된 지 3개월 만에 석방됐다. 흔히 하는 말로 ‘판결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풀려난 것이다. 보통 양형 기간의 2/3가 지난 수형자에 국한해서 사면을 고려하던 관례도 깬 것이다.

그의 사면 명목은 ‘정치적 갈등 해소’다. 이는 김 전 구청장이 ‘공익신고자’임을 적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맞다. 김 전 청장이 공익적 고발이 없었다면 문재인 정권의 수많은 비리가 구중궁궐에 묻혔을 것이다. ▲유재수 뇌물 비리 ▲조국과 유재수 관련 감찰 무마 ▲환경부 블랙리스트 작성 ▲울산시장 선거 개입·하명 수사 등 수많은 의혹이 드러나게 됐다. 이런 ‘공로’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무상 비밀누설 협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만일 그가 실형을 받은 이유가 순수하게 ‘공무상 비밀누설’ 때문이라면 그는 감옥에 갈 이유도 없었다. 비위를 공개하려면 불가피하게 공무상 비밀누설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고위직 비위는 ‘공무상 비밀’이거나 공무상 비밀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야당으로부터 “‘공익신고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라고 비난받고 있다. 그 근거는 대법원 판결문에 있다. 대법원은 “사안이 중대하고 범행 동기도 좋지 않다”고 적시했다.

그렇다면 불순한 범행 동기는 무엇일까. 청와대 특별감사반 재직 시절의 비위 행위다. 건설업자와 유착해 청와대 파견을 청탁했다거나, 뇌물공여 혐의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무마하려 했다거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5급 사무관직을 신설하고 그 자리에 자신이 가기 위해 청탁한 혐의 등이다. 야당은 “이런 비위 사실이 드러나자 공익제보자로 포장하기 위해 폭로를 감행했다”고 주장한다. 실형을 받고 법원에서 공익신고자 지휘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 그것은 관심거리가 아니다. 국민의 관심은 법원의 ‘비위 행위자’와 대통령실의 ‘공익제보자’라는 상반된 입장이 생긴 이유다.

정치권은 ‘사법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고 지적받아 왔다. 조그마한 불편한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것은 타협과 논의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고소장, 고발장을 섰다. 사법부의 판단이 자신에게 유리하면 “법원 만세”를 불렀다. 반면에 조금이라도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법원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이는 정치권에 만연한 진영주의를 법원에 적용한 것이다. 사법부에 진실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같은 진영에 설 것을 강요한다. 그렇게 되면서 사법부는 범죄 사실에 대한 시비를 가리는 판결자가 될 수 없다. 정치권 싸움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판정관이 된다.

판정관이 아니라 판결관이 되는 길은 무엇일까. ‘한 사람을 구하는 게 한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라는 믿을 갖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려는 욕심을 부리면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정치적 중립을 상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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