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지의 한·중·일 생활이야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막을 내렸다.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크다. 18일도 온라인을 타고 새만금 잼버리의 민낯이 전 세계에 전해졌다. 한 칠레 스카우트 대원이 ‘푸세식’(재래식) 화장실 사진을 유튜브에 올렸다. 재래식 화장실을 보고 입을 가리고 눈을 감은 대원은 무엇인가 못 볼 걸 본 듯한 표정이다. 오래전에 살았던 조상도 이를 봤다면, 부끄러워 낯을 들지 못할 것 같다.

"새만금호 관리수위 폐기하라"
"새만금호 관리수위 폐기하라"

2022년 7월 8일. 서울 종로 2가 YMCA 뒤편에서 조선시대의 대형 화장실 흔적이 발견됐다. 길이 10.4m, 폭 1.4m의 긴 직사각형 구조의 유구를 찾아낸 것이다. 최대 10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크기다. 깊은 화장실 시설 위로 나무로 된 건물을 지어, 사람은 그 안에서 용변을 처리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안타깝게도 화장실의 형태, 남녀 구별 여부 등 세부 사항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럼 이 화장실은 언제,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1868년 경복궁 중건 당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허드렛일하는 궁인 혹은 육의전 이용자들이 이용했던 공중화장실이다.

놀라지 마라. 이 화장실은 잼버리 푸세식 화장실보다 훨씬 위생적 시설을 갖췄다. 생활하수를 이용해서 분뇨를 처리한 정화시설을 갖춘 ‘최신식 화장실’이었다. 이 같은 시설을 갖춘 화장실은 당시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유럽이나 일본보다 반세기 이상 앞선 셈이다.

그 기술을 구체적으로 보자. 분뇨는 정화조 안에서 발효된다. 발효가 끝난 뒤 위에 뜨는 찌꺼기와 오염수는 북악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로 씻어냈다. 물이 들어오는 입구는 2개다. 입구는 출구보다 낮게 둔다. 입·출구의 높이 차이는 분뇨 찌꺼기와 오염수를 분리하는 정화조 역할을 한다. 화장실 밑에 쌓인 분뇨 덩어리는 ‘똥 수레’가 수거했다. 이를 비료로 사용했다. 말하자면 ‘반 수세식 화장실’이었던 셈이다.

혹시 분뇨가 새서 화장실 주변을 오염시키지는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주변의 오염을 막기 위해서 1.6~1.8m 깊이로 땅을 판 뒤 돌로 주변을 쌓았다. 그리고 진흙으로 틈을 메웠다. 오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실제로 화장실 안쪽에서 채취한 흙에서 발견되는 기생충 알이 바깥쪽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궁궐 안에도 공중화장실이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다. 화장실로 추정할 수 있는 도랑도 발견된 일이 있다. 분명한 것은 궁궐 내전에는 화장실을 두지 않았다. 왕과 왕족은 이동식 변기인 매화틀을 이용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가짜 광해(이병헌 분)가 매화틀에서 용변을 보던 모습을 생각하시면 된다. 매화틀은 일종의 개인 변기였던 셈이다.

그럼 이웃 나라의 성과 궁궐의 화장실은 우리나라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공중화장실을 둔 것 같다. 최초의 공중화장실은 1579년에 오다 노부나가가 지은 나고야 근처의 기요스성 천수각에 지어졌다. 이 성의 천수각에는 화장실이 세 개 있다. 정문 입구에 하나, 지하실에 두 개가 있다. 각 화장실에는 방이 세 칸씩 있다. 대변과 소변보는 곳이 분리되어 있다.

기요츠성의 화장실은 공중화장실 표준이 됐다. 그 이후에 지어진 성에는 기요츠성과 유사한 형태로 지었다. 천수각의 화장실은 입구와 1층 또는 지하의 동북부 구석 자리에 지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은 오사카성 천수각에는 2층에 도요토미 전용 화장실이 있는 게 특징이다. 도요토미 전용 화장실에는 그의 전용 다실처럼 금으로 도금했다고 한다.

화장실 내부는 복도보다도 한 단 높게 만들어져 있다. 안에는 목제 변기가 있다. 목제 변기 아래쪽으로 구멍이 나 있다. 배설한 변을 모으게 되어 있다. 구마모토성의 동쪽 화장실은 배설물이 마루에 나 있는 구멍을 통해 밖으로 흘러가게 설계되었다. 그래서 이 성의 돌담 아래는 분뇨가 쌓였다.

성안의 화장실에 모은 배설물은 해자에 버려졌다. 천수각에서 해자 쪽으로 구멍을 파서 화장실에서 나온 배설물이 해자로 흐르도록 만들었다. 발굴된 해자에는 도랑이 곳곳에 있다. 이것이 바로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한 통로일 것으로 보인다. 소변은 나무통에 모아서 직접 돌담 밑에 내다 부었다. 바쿠부(幕府) 말기에 에도성 해자의 오염으로 인해 그곳에 살고 있던 새마저 떠났다고 한다.

해지를 오염시킨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성의 방어 수단이었다. 성 수비병이 오물을 성 밖에 내다 버리라는 명령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해지를 더럽혀서 외부 침입을 막으려 했던 의도로 보인다.

중국 궁궐 역시 우리 궁궐처럼 개인 변기인 ‘마통’이 크게 발달했다. 마통은 중국식 요강이다. 거기에 용변을 보면 허드렛일하는 궁인이 뒤처리했다. 쯔진청(紫禁城)에는 공중화장실은 물론 화장실도 없었다. 쯔진청은 무려 76만 평이다. 축구경기장 80개 크기다. 방도 8,760개나 있다. 수만 명 생활하는 행정수도다. 이곳에 화장실뿐만 아니라 굴뚝과 나무도 없다. 굴뚝은 화재, 나무와 화장실은 자객의 침투를 우려해서다. 쯔진청 안에 있는 나무는 황비의 침전인 교태전 뒤 아차산(峨嵯山·가상의 산)에 두어 그루의 나무가 전부다.

쯔진청처럼 프랑스 마르세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었다. 적어도 19세기 초까지 유럽은 아예 화장실 문화라는 게 없었다. 공중화장실 대신 ‘용변의 거리’가 있었다. 프랑스의 ‘보아 거리’도 그 흔적을 알 수 있는 지명이다. 왕족과 귀족은 중국처럼 요강을 사용했다. 평민은 용변을 이 거리에서 해결했다. 또 집에 모아둔 용변을 창밖으로 던지기도 했다. 오물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하수시설을 만들고 그곳에 버리도록 했다. 그게 1847년이다. 우리가 ‘반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던 시점보다 불과 20년 앞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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