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체포동의안 덫에 걸렸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통과됐다. 이 대표 미래와 운명이 법원의 결정에 달리게 됐다. 이 대표는 ‘정치검찰에 날개를 달아주지 않기’ 위해 22일 동안 곡기까지 끊었다. 눈물겨운 투혼조차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대표는 명분 없다는 비판받으면서 단식을 결행했다. 정치적 승부수였다. 대여투쟁과 함께 당내 결집이 목적이었다. 사법 위험성 회피를 위해서 당의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 대표는 이미 당의 균열을 봤다. 지난 2월 제1차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가 그것이다. 1차 체포동의안 표결은 과반수에 못 미쳐 부결됐다. 하지만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많았다. ‘정치적 가결’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이런 사태가 거듭되는 걸 막기 위해서 단식을 결행했다는 비난이 있었다. 단식이 길어지면서 이 대표의 진정성을 인정받는 듯했다. 겉으로는 이 대표의 의도대로 당이 움직였다. 

그런데 이 대표는 제2차 체포동의안 표결 하루 전날인 20일 ‘부결 호소문’을 내놨다. 아사의 고통을 견디면 피를 토하듯 1,989자를 구술한 SNS 메시지였다. 뜻밖이었다. 이 대표의 승부사 기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치적 운명의 변곡점에서 정작 자신의 기질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게 오판이었다. 

만일 “내 발로 법원에 가겠다”라는 승부수를 던졌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적어도 이 대표가 리더십에 크게 상처받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면, 이 대표는 “국회 의사를 존중하겠다”라고 응답하면 그만이다. 당 대표로서 위상에는 아무런 흠집을 남기지 않게 된다. 더 나아가 검찰의 무리한 영장 청구임을 입증하는 기회였다. 거기에다가 ‘가짜 단식’, ‘출퇴근 단식’, ‘녹색병원단식’이라는 온갖 비아냥과 불편한 오해도 일거에 해소할 수 있었다.

가결됐어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결을 호소하지 않았느냐”고 밝히면 된다. 오히려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 말을 바꾸지 않는 대표라는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었다. 국민에게 당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주고도 남는다. 이 대표는 대선공약으로, 또 지난 6월 국회 대표연설 등 4차례나 불체포특권을 포기를 약속했다. 정치는 신뢰를 먹고 산다. 실리를 좇아 말이 바뀌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말을 바꾸면서 명분도, 실리도 잃는다.

말을 바꾼, 아니 승부수를 던지지 못한 후폭풍이 거세다. 고스란히 역풍으로 돌아왔다. 목숨을 걸고 한다는 단식조차 기획된 것임을 자백한 꼴이 됐다. 방탄 정당임을 고백한 셈이 됐다. 다수의 국회 권력으로 구속영장실질심사만 피하면 더 이상 문제가 될 게 없다는 판단이 착오였다. 자충수였다. 이 같은 이 대표의 처신에 민주당 소속 의원마저 등을 돌렸다. 그것도 적어도 39명 이상이. 

자업자득이고 사필귀정이다. 비명계 일부 의원은 이 대표가 스스로 퇴로를 열길 바랐다. 당당하게 스스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으라는 요구였다. 이 대표의 결단을 기대했다. 이 대표가 “아무런 증거도 없다”라고 말해왔던 만큼 당당하게 맞서라는 주문이었다. 그들의 기대는 철저히 무시됐다. 침묵이라도 지켰다면 이처럼 나쁜 상황을 맞지 않았다. 이 대표의 메시지는 민주당을 믿을 수 없는 정당으로 인식하게 했다. 불신의 늪에 빠진 것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으로부터 사실상 불신임을 받았다. 이재명의 지도력은 회복 불능 상황에 빠졌다. 그만이 아니다. 곧 출석해야 하는 구속영장실질심사 부담도 온전히 이 대표의 몫이 됐다. 그 얘기는 반대로 이 대표의 운명과 미래를 가를 법원은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 받는다는 의미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 대표의 책임이 됐다. 법원의 결정은 두 단계, 4가지다.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 여부, 재판과정에서 유·무죄 판결이다.

우선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보자. 우리나라는 공판주의를 취하고 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게 원칙이다. 예외가 있다. 범죄의 중대성과 도주 우려, 그리고 증거인멸의 경우다.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는 이것만을 따진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온 국민이 바로 보고 있는 재판, 그것도 제1야당 대표의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부의 부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부결 호소문 때문에 이 대표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단식의 이유가 사법적 단죄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만일 구속된다면 사실상 그것으로 이 대표의 정치 생명은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옥중 공천’과 같은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극성 지지자의 얘기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구속영장이 기각된다면 이 대표는 대표로서 권한 행사는 종전처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소속 의원으로부터 탄핵받은 당 대표로서 그의 위상과 지도력은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거기다가 사법리스크는 더욱 증폭될 것이다. 적어도 대장동, 백현동 등과 관련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 한 달에 10여 차례 법원에 출석해야 한다. 매번 이 대표의 재판과정은 생중계될 것이다. 

당내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통과과정에서 밝혀진 반이재명 정서를 수습해야 한다. 이미 민주당은 21일 밤 최고위원회의에서 체포동의안 찬성표를 던진 의원을 향해 “해당 행위자”라고 규정했다. 이런 규정을 한 이상 찬성표를 던진 의원의 색출과 징계 절차를 밟는 게 순서다. 이 대표 팬덤인 ‘개딸(개혁의 딸)’의 반격도 이미 시작됐다. ‘수박색출작업’에 돌입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 모두에게 전화를 걸어 반대투표 여부를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일일이 인증받고 있다. 이미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의원들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공감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이 대표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면 정치 상황이 말 그대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민주당 재편은 속도가 붙게 될 것이다. 이 재편과정에서는 지도부 구성 문제가 관건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누가 공천권을 쥘 것이냐의 문제다. 옥중에 있는 이 대표체제(정창래 수석최고위원 대리체제)로 갈 것이냐, 전당대회를 개최할 것이냐, 아니면 비대위 체제로 갈 것이냐, 비대위를 임시체제로 운영할 것이냐 비대위에 전권을 부여할 것이냐 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친명계와 비명계의 이해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는 방안은 현재로서 찾기 어렵다. 체포동의안 통과가 결정된 뒤에 열린 21일 밤 의원총회에서 박광온 원내대표와 원내대표단이 이번 사태를 책임지고 사퇴했다. 여기서도 누가(원내대표단 혹은 당 지도부) 책임을 질 것이냐를 두고 치열한 논란 끝에 비명계인 박 원내대표가 손을 든 것이다. 직전에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체포동의안 가결을 “해당 행위”로 규정할 때부터 이미 예고된 상황임에도 그렇다. 일단 후퇴한 비명계가 그저 당하고만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결국 ‘이재명 없는 민주당’을 대한 국민의힘과 정부가 국정운영에서 얼마나 국민의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이 이 대표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지금과 같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다면 친명계에게, 반대의 경우라면 비명계에게 유리한 국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직적 반란인지 알 수 없는 ‘반란표’는 이 대표의 ‘마지막 메시지’를 구실 삼았다. 하지만 내심 사법리스크를 가진 이 대표체제로 내년 4월 총선을 치를 수 없다, 여기서 끊어야 한다는 인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던 것이다. 그것을 투표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 그들이 개딸의 공격을 두고만 보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적어도 질서 있는 개편 혹은 친명계와 비명계 사이의 합리적인 정치적 타협은 기대하기 쉽지 않다. 내년 4월 총선을 불과 6개월여 앞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김의겸 의원이 “가결이 부결보다 후폭풍이 100배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내분 상황의 본질을 꿰뚫는 발언이다. 민주당이 향후 어떻게 건강성, 민주성, 비판성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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