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정동 부자상봉길 입구 고자실 공방에 전통신앙을 그리는 자연주의 작가
칠성사상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삶을 글로, 시로 짓고 서각으로 새겨 표현
자연과 전통 사상을 글로 짓고 나무판에 새기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  
최 작가의 작품, 자연 속에 이끌려 풍류에 흠뻑 빠지게 하는 기분 느껴져

[경남=뉴스프리존]김회경 기자= 사천시 정동면 학촌마을 입구에 가면 고려 8대 왕 현종의 성장 일화가 담겨 있다.

입구에는 고자실(顧子) 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현종의 아버지와 현종이 왕이 되기 전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이란 설명이다. 

여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도원 최노경 작가가 고자실 마을 입구에 터를 잡아 우리 민족 전통 신앙인 칠성사상을 글로 쓰고 나무판에 새기고 있다. 

서각하는 도원 최노경 작가.(사진=김회경 기자)
서각하는 도원 최노경 작가.(사진=김회경 기자)

필자와는 오랜 친구이지만 약간의 공백의 시간을 보낸 뒤 첫 만남 이어서 그런지 자신의 이름을 도원(道元)이라 불러달라고 한다.

자연 그리고 우리 전통 신앙, 선조들의 삶의 모습, 그것을 道라고 한다면 자신이 도를 좇아 자연을 노래하며 화선지에 그리고 나무판에 새기며 세월을 보내는 자연주의 작가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도원 작가의 작업실은 이 마을 중간쯤이며, 고자실 마을 탐방 등산로를 오르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옆으로 자그마한 실개천이 흐리고 건너편에는 학이 날개를 펴고 나래를 펴는 듯한 형상한 학산(鶴山)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최 작가는 학산을 가리키며 자신이 날아가고 싶은 방향으로 고개를 길게 내민 학의 모습이 자신을 닮아서 너무 좋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최 작가의 서실에 들어서면 맨 먼저 보이는 작품이 학 그림이다. 

최노경 작가의 작품들.(사진=김회경 기자)
최노경 작가의 작품들.(사진=김회경 기자)

학은 용이나 봉황처럼 높은 지위를 상징하는 동물을 아니지만 고고하다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선비를 상징하는 새다. 학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인지를 모른다. 

학과 학의 품새를 닮은 학춤을 덩실덩실 추는 반백의 늙은이를 그린 족자가 화실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치인 듯하다. 

최 작가는 젊은 시절 대학 전공을 살린 조경과 건설업을 접고 20여 년 전 고향인 이곳 학산마을로 들어왔다. 그간 민족 신앙을 탐구하고 그것을 정리하고 또 그림으로 그려가기 시작했다. 자연과 하나 되는 시간이었다고 설명한다. 

그간 최 작가는 옛 성현들의 글귀를 종이에 자신만의 필체로 쓰고, 또 그것을 나무판에 일일이 파서 서각판을 만들어 왔다. 50여 평의 작업장 벽면을 가득 메운 작품들은 보는 이들을 자연 속의 작은 존재로 자연의 품속에 안기는 듯한 포근함을 느끼도록 안내한다. 

최노경 작가의 작업장.(사진=김회경 기자)
최노경 작가의 작업장.(사진=김회경 기자)

특히 차곡차곡 쌓은 7개의 돌탑과 그 위에 펼쳐진 북두칠성을 그린 작품은  지상의 인간과 저 우주 멀리 ‘우리가 죽어서도 가고자 원했던 영원한 본향’ 칠성으로 이어주는 묘한 감흥을 느끼게 한다. 마치 보는 이가 땅과 우주 중간쯤 떠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간 최 작가가 그리고 새긴 작품들은 줄잡아 100여 점이 넘는다. 대부분의 서각 작가들이 글귀를 다른 작가에게서 받아 와서 나무판에 새기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최 작가는 자신이 직접 글귀를 쓴다. 그리고 그것을 나무판에 새긴다. ‘두루백군’이라는 우리 옛말이 있듯이 최 작가야말로 ‘두루백군 작가’다. 글도 잘 쓰고 서각 새기기도 잘한다는 이야기다. 

가수 정훈희 씨의 ‘꽃밭에서’의 노랫말 원조 격인 漢詩와 그것을 번역한 한글 노랫말을 목각판에 새겨 걸어놓았다. 자연인이 되는 것이 그 노랫말과 같은 기분이라고 한다.  

최 작가의 글은 화선지에 옮겨지는 순간 힘이 느껴진다. 전각체에 가까우면서도 약간 각진 글자체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필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다리로 설 수 있고 팔에 힘이 있는 한 자연을 작품으로 담아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최노경 작가의 작품.(사진=김회경 기자)
최노경 작가의 작품.(사진=김회경 기자)

최 작가는 고려 8대왕 현종의 유년 시절 아픈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고자실 마을 지킴이라고 자처한다. 오랜만에 방문한 필자를 차에 태워 곧장 고려 현종 왕순이 어린 시절 머물렀던 배방사(排房寺)지와 노곡당(蘆哭堂) 터로 내다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천년을 거슬러 올라간 듯 최 작가와 필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반도 어는 곳에도 왕이 왕궁을 벗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설화를 품고 있는 곳은 이곳 사천뿐이며, 그 가운데 정동면 대산과 학산, 그리고 사남면 능화마을 일대다. 고자실 마을에서 출발해서 능화마을을 잇는 대략 8km 구간의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다. 중간에 정자도 2~3개 마련돼 있다.

고자실은 현종의 아버지 왕욱이 어린 아들 현종이 머물러 있는 배방사를 아침 일찍 찾았다가 해가 저물기 전 되돌아가던 길이다. 어미 없이 보모의 손에서 사찰 배방사에서 스님의 돌봄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들을 잊지 못해 자꾸 되돌아본다는 의미에서 고자(돌아볼 顧, 아들 子)실이다. 왕욱이 귀양 보내져 머물고 있던 능화마을과 고자실을 거쳐 배방사까지 대량 8km의 거리다. 

최 작가는 고려 8대 왕 현종의 어린 시절 설화을 스토리텔링으로 엮고 그것을 화폭에 담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성장 설화를 듣기 위해 직접 찾아오도록 하는 트레킹 코스를 개발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다. 애환과 역사를 품은 배방사와 노곡당 터 일대를 개발하는 것을 간곡히 바라고 있다. 

찾아온 탐방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최노경 작가.(사진=김회경 기자)
찾아온 탐방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최노경 작가.(사진=김회경 기자)

우리네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또는 나무판에 새기고, 많은 탐방객이 찾는 학산마을, 그 입구에 오늘도 도원 최노경 작가는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묵필을 잡고 글을 써 내려가는 최 작가의 풍채에서 소박하지만 다부진 꿈이 비춰지고 있다. 

필자와 최 작가는 해가 뉘었뉘었 넘어가는 학산의 석양을 바라보며 꽤 긴 시간 초로의 추억을 나누었다. 마치 이날은 부산에서 글과 서각 전시회를 마치고 찾아온 동료 작가들이 함께 해주어서 추억에 남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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