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민주당의 앞승으로 끝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를 정권심판론으로 대개 받아들이고 있다. 재·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국민의힘 김태우 강서구청장은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후 채 1년도 안 돼 공무상 비밀누설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구치소에서 복역중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불과 3개월 만에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8.15 광복절 특사로 사면하고 피선거권을 복권해줬다. 많은 국민들과 심지어 여야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윤 대통령은 사면·복권 이유를 김 전 구청장이 공익신고자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법원은 그의 행위를 공익신고가 아닌 “범행 동기가 좋지 않은” 범죄라고 판결했었다. 윤 대통령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10월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를 염두에 둔 정무적 판단이었다. 

역시 김태우 전 구청장은 사면받은 후 며칠만에 재빨리 후보등록을 마치고 선거에 뛰어들었다. 김 전 구청장이 윤심(尹心)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마저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윤 대통령은 여당의 지도부를 애초에 존중한 적이 없기에 선거는 그대로 치러졌다. 결과는 참패다. 민주당의 진교훈 후보가 17.51% 차이로 압승했다. 여당에서는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으로 지도부가 총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부터 비대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나 싶었지만 이내 김기현 대표가 재신임을 받으며 책임론이 흐지부지 되는 모양새다. 김기현 대표는 애초에 윤 대통령이 막무가내식 편법을 써가며 밀어줘서 당대표가 됐으니 김기현 대표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건 윤 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됐을 터다. 이럴 때는 책임론을 미운 털이 박힌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것이 수월한 법. 

국민의힘 안철수(왼쪽)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
국민의힘 안철수(왼쪽)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

역시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이 이준석 전 대표 때문이라며 목소리 높이는 이가 나타났다. 다름 아닌 안철수 의원이다. 뜬금없다는 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안철수 의원은 김태우 강서구청장 후보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아 선거를 치렀다. 선거패배의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선거 지원유세를 거부하고 선거에 참여하지도 않은 이준석 전 대표를 선거참패의 원흉으로 지목한 부분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안철수 의원은 기자회견까지 열고 이준석 전 대표를 ‘해당행위자’라며 제명을 위한 서명을 돌리고 있다. 전투에서 패배한 장수가 전투를 관전하고 있던 사람을 향해 책임을 돌리는 꼴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평론가를 자처하며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여당의 패배 가능성을 지속해서 지적해왔다. 선대위 상임고문이었던 안철수 의원이 보기에 이준석 전 대표의 자당 후보에 대한 우려와 ‘명분 없는 선거’라는 비평들이 선거 참패의 가장 큰 이유라는 설명이다. 한 마디로 돕지는 못할망정 왜 훈수를 뒀느냐는 얘기다. 그럼에도 여전히 안철수 의원이 이준석 전 대표를 선거참패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당 윤리위에 제소하고 제명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는 ‘뜬금없는’ 모습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조용히 지내고 있던 안철수 의원의 정치행보가 요란해지기 시작했다. 다음 스텝(step)을 위한 정치적 수를 읽어낼 수 있다. 

김기현 대표 체제가 재신임을 받고 내년 총선까지 갈 수 있을까. 우려가 더 크다. 김기현 대표는 ‘당 혁신기구’를 출범시키겠다고 밝혔으나 혁신위 자체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선거 참패의 원흉은 사실상 윤 대통령 본인인데 윤 대통령이 과연 윤심이 아닌 혁신위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을까. 윤심을 거스를 수 있는 혁신위가 구성될 가능성은 애초에 없다는 게 현재 여당의 한계다. 윤심에 밀려 지역구까지 뺏기고 있는 마당에 ‘옳은 소리’는 나오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안철수 의원의 이준석 때리기는 차기 여당 지도부 구성을 위한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싸움으로 보인다. 불안한 김기현 체제와 혁신위를 넘어 안철수 의원의 당권을 잡기 위한 몸풀기로 해석된다. 그런데 선거 참패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김기현 당대표가 아니라 왜 이준석 때리기 인가. 안철수 의원은 본인도 윤심을 거스르며 당권을 잡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김기현 때리기는 곧 윤 대통령을 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쫓아낸 이준석 전 대표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안철수 의원도 공천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 지금에 와서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철수 의원의 이준석 때리기는 옹졸한 정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본인을 포함해 현재 여당 지도부는 물론 윤 대통령까지도 선거 참패의 책임을 져야할 당사자들이다. 그런데 오히려 선거 참패 원인을 이준석 전 대표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내년 총선 공천에서 완전히 배제시키려는 정치적 술수는 여당이 선거 참패를 반성하고 혁신할 수 있는 기회까지도 박탈하고 본질을 흐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에게 밉보이지 않으며 당권에 도전할 수 있는 선택지가 이준석 때리기 밖에 없었던 셈이다. 안철수 의원은 현재 윤 대통령이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 짐을 대신 치우려 총대를 멘 셈이다. 이것이 현재 ‘새 정치’의 아이콘이었던 안철수 의원의 한계다. 

조경일 작가/피스아고라 대표
조경일 작가/피스아고라 대표

안철수 의원의 주장대로 이준석 전 대표의 자당에 대한 비판이 표를 결집하는 데에 조금은 방해가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 참패의 원흉으로 책임까지 질 것은 못된다. 물론 이준석 전 대표는 오늘의 윤대통령을 만든 장본인이다. 안철수 의원 또한 후보 단일화로 윤 대통령을 만든 장본인이다. 모든 책임은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 윤 대통령의 책임인데 이 말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여당에 없다는 게 오늘의 여당의 위기다. 안철수 의원의 정치는 여기에서 시작되었어야 했다. 이미 쫓겨난 이준석을 때리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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