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해외민주인사 초청 행사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던 조지 오글 목사

[뉴스프리존=강대옥 선임기자]73년 '인혁당 사건'을 세간에 폭로하고 목요기도회를 주도하다 그해 12월 강제 추방됐다가 30여 년만에 한국에 들어온 2002년 조지 오글 목사는, 당시 이야기를 우리말로 자세히 소개했었다. 특히 인혁당 사건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을 위해 적극 헌신하다 인혁당 사건 조작 폭로로 당시 한국 정부로부터 강제 추방된 조지 오글 목사(89세, George E. Ogle, 한국명 오명걸)를 위문하기 위해 12일부터 15일까지 한국 민주화운동 그룹이 방미한다. 

미국인 감리교 목사 조지 오글(George E. Ogle, 한국이름 오명걸)은 1954년에 연합감리교회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20년간 한국 도시산업선교회를 일궈오면서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법에 기반한 교육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 당시 조작된 인혁당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이들을 위해 싸우다 1974년 12월 14일에 추방당했다. 오글 목사는 자기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던 노동자, 국가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며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이땅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민주적 반인권적 상황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지선)는 오글 목사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혁당 관련자 8명의 처형일인 4월 9일(1975년)을 즈음해 오글 목사가 거주하는 미국 덴버 방문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진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부이사장, 김영주 목사(사단법인 기독교민주화운동 상임이사)가 방미길에 오를 예정이며 김홍덕 목사(미 연합감리교회 세계 선교부 재무이사)가 동행한다. 

방문단은 병상의 오글 목사와 아내 도로시 오글 여사(Dorothy Ogle)를 면담하고 그의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헌신에 감사를 전할 계획이다. 또한 오글 목사가 소장하고 있는 한국 민주화운동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구술도 채록할 예정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1960년대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한 해외 인사 다수가 연로해 그 소장 사료가 보존되지 않을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번 방미도 그 일환이다. 

조지 오글 목사는 1954년 연합감리교회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20여년간 한국도시산업선교회를 일궈오면서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법에 기반을 둔 교육에 헌신해왔다. 1960년~70년대에는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활발히 벌였으며 1974년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이들을 위해 싸우다 같은해 12월 14일 강제 추방을 당했다. 현재는 알츠하이머와 노환으로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글 목사는 미국으로 추방된 뒤에도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했다. 미 의회 청문회에 나가 인혁당 사건의 진상에 관해 증언했고 미국 전역을 돌며 한국의 인권 실태를 알렸다. 

2002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해외민주인사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인권문제연구소가 수여하는 제5회 대한민국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진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은 “강제로 비행기 트랩에 오르며 추방을 당하던 마지막 순간에도 끝까지 한국말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던 오글 목사의 결기는 한국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며 “오글 부부의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끊임없는 헌신과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소중한 민주화운동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글 목사의 도시락 반찬은 언제나 김치 깍두기
조화순 목사는 조지 오글 목사가 "한번 입은 양복은 10여년간을 계속 입어야 하는 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글 목사는 새 옷을 사면 그 옷을 걸어놓고 며칠을 보고 익힌 후에 입었다고 한다. 오글 목사의 옷은 항상 속감이 헤어져 있었고, 양말도 구멍이 나 있었다.

결혼 후 오글 목사의 부인이 출근하는 남편에게 이 옷 저 옷을 입기를 권하고 헤지고 구멍난 옷들을 치워두려고 하자 오글 목사는 "당신이 옷 걱정을 계속 한다면 이혼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는 결국 "부인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좋아했다고 조 목사는 웃으며 이야기 한다.

오글 목사는 아이들도 한국학교에 보낼 만큼 한국을 사랑하였다. 때때로 조화순 목사가 오글 목사의 딸 '캐티'를 영화초등학교까지 손을 잡고 바래다 주곤 했는데, 이제 장성한 캐티가 몇해 전 아버지에게 "고향에 가고 싶다"고 해서 한국에 온 적이 있다고 한다.

오글 목사는 또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반찬은 매일 김치와 깍두기였다는 것이다. 한번은 버스에서 가방을 놓고 내려서 종점의 사무실까지 직접 찾아갔다고 한다. 오글 목사가 "혹시 주인이 잃어버린 가방이 없느냐?"고 하자, 사무실 직원들은 벽안의 외국인에게 단호하게 "없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자 오글 목사는 "내 가방은 너무 낡아서 누가 가져가지도 않을텐데요"라고 말했고, 직원들은 그제야 "혹시 가방에 도시락도 있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김치와 깍두기"라는 대답을 듣고서 직원들은 "외국인이 이런 도시락이 든 가방을 가지고 다닐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느냐"며 가방을 내어놓았다고 한다.

산업선교정신과 가장 일치하는 건물 '초가집'

'인천시 동구 화수동 183번지'가 오글 목사가 구입한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회관이다. 아직도 빈민지역으로 분류되는 화수동은 1960년대 초반에는 초가집들이 밀집해있던 빈민지역이었다. 방을 쪼개서 두 가정이 사는 집이 허다했고, 집과 집 사이를 지붕만 이어 방을 만들어 사는 사람도 있었다. 조화순 목사가 방문했던 어느 가정은 주인집 안방을 거쳐서 들어가는 다락방에도 세들어 사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 조지오글 선교사가 구입했던 초창기 인천산업선교회 건물. 가운데가 조화순, 조승혁 목사. 좌우로 당시 실무자였던 최영희(현 청소년위원회위원장) 전용환(현 감리교 목사) 유흥식 유재민 등도 보인다.

오글 목사는 그 지역을 돌아보고서 이런 곳이야말로 산업선교의 터전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일꾼교회 자리의 초가집 한채를 점찍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집을 사기 위해서 오글 목사는 며칠간 그 집 주위를 돌았고 결국 구입하게 되었다고... 오걸목사가 한국으로부터 추방 당한 공항에서 한국사람에 그리움으로 눈물을 쏟은 일화도 유명하다. 시커먼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오명걸 목사, 조지 오글 목사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때 그의 얼굴을 감싼 손에서 빛나던 금반지를 건넨 사람은 인혁당 관련자 우홍선의 아내였던 강순희씨였다. 처음에 오명걸 목사에게 전화를 걸고 찾아왔던 사람이기도 했다.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고 남편을 죽음으로부터 건져 내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했던 그 바램도 헛되이, 금반지의 기원도 아랑곳없이 박정희 정권은 대법원 사형 선고 다음 날 새벽, 관련자 8명을 모두 죽여 버린다. 그날 강순희씨는 재심 청구를 위해 변호사 사무실에 가려는 참에 이 참담한 소식을 듣는다.

“단 한순간만 살아서 내게 와 주세요

여보!
당신이 가신 곳이 있다면은
나도 같이 당신 곁에 데려가 주세요

악마도 내 이 슬픔을 안다면
울지 않을 수 없으리라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벌을 주느냐

나 한 사람을 사랑한 죄 밖에 없는데
오 견딜 수가 없구나 견딜 수가 없구나.” (강순희의 일기 중에서)

오글 목사는 미국에 간 이후에도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고 미 의회 청문회에서도 증언했지만 인혁당 사형 집행 소식을 들은 뒤 견디기 힘든 괴로움에 시달렸다. 추방 이후 수십년 동안 그는 손가락에서 강순희씨가 준 금반지를 빼지 않았다. 2002년 10월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오른손을 들어올려 여지껏 그의 손가락을 떠나지 않은 금반지를 한국인들에게 보여 준다.

언제고 그가 돌아가면 이 금반지만은 꼭 한국에 기증했으면 했다. 파란 많았고 곡절 많았고 잔인하고 참혹했으나 어둠에 저항하는 빛이 그치지 않았고 불의에 맞선 사람들의 연대가 사라진 적이 없었던 역사를 그 금반지만큼 찬란하게 드러내는 존재가 또 있을까 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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