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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미디어] 부산행, 신과함께,. 천만관객 모은 죽음의 경계선을 오르다
  • 안데레사 기자
  • 승인 2018.04.14 13:41
  • 수정 2018.04.1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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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프리존=안데레사 기자]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이하 신과 함께, 감독 김용화)이 2018년 첫 첫만영화로 탄생했다. 역대 20번째, 한국영화로는 16번째 천만클럽 입성이다. 이 외에도 '신과 함께'의 천만은 한국영화 판타지 장르의 정착과 확장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천만 관객이 선택한 인기 영화 <부산행>과 <신과 함께>에는 공통점이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좀비와 망자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이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좀비가 된 이들은 그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이승에서 생을 마감한 망자는 저승에서 7번 재판을 받기 전까지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다. 좀비와 망자는 삶과 죽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한다. 이를 통해 두 영화는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의 모습을 여실히 그려낸다.

2006년 개봉한 '괴물'은 CG가 곁들여진 SF 호러 장르로 1301만여명(영진위)의 관객을 동원했고, 2016년 선보인 '부산행'은 판타지 좀비물로 1156만여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삶은 악전고투다. <부산행>은 ‘좀비’라는 위기를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분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좀비 떼를 피하며 뒤처진 다수를 버리고 떠나자고 외친 인물은 끝까지 자기 안전만을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도우려 애쓴 이는 아무도 모르게 좀비에 감염된다. 좀비 떼에서 탈출한 이들을 냉대하고 쫓아낸 생존자 무리는 ‘각자도생’이라는 생존 전쟁의 전형을 보여준다. 삶을 무너뜨리는 것은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위기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이기심이다. 지금까지의 1000만 영화들은 사극이든 액션물이든 대부분 드라마적 색채가 강했고, 그 중에서도 차별화된 장르로 두드러지는 영화로는 '괴물'과 '부산행'을 꼽을 수 있었다.

▲사진: 부산행, 신과함께[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또한 '신과 함께'는 본격 판타지 영화로서는 최초로 천만 영화에 등극하며 한국 영화의 장르적 외연을 한층 확장시켰다는 의미를 지닌다. 보다 정확하게는 '괴물', '부산행'에 이어 한국형 판타지물의 메인 장르화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선과 악이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다. <신과 함께>에서 망자가 된 주인공은 저승에서 재판을 받으며 자기 삶을 돌아본다.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살았던 ‘귀인(貴人)’이지만, 그는 생활고를 버티지 못해 천륜을 저버리려 한다. 삶의 도리도 가족 생계를 책임진 어린 가장에게는 삶의 무게일 뿐이다. 삶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무게를 짊어질 힘은 사람마다 다르다. 선과 악은 이러한 힘의 차이가 빚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신과함께' 판타지에는 우리의 민속 신앙까지도 담겨있다. 물론 VFX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성공할 수 있었는데, 이른바 신파와의 결합이다. '신과 함께'가 판타지 장르임에도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을수 있었던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나름 차별화된 '한국형 판타지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경계에 있는 존재는 그가 속하지 않은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경계의 시선은 속속들이 꿰뚫어 보는 ‘내부의 시선’이다. 영화 속 좀비와 망자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각자도생’과 가혹한 가난의 무게를 버티는 삶을 마주했다.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헬조선’을 외치는 사회가 경계인이 바라본 한국 사회 민낯인 셈이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을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도 봤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거리에 있는 경계의 시선이다. 희극도 비극도 아닌, 있는 그대로 다양한 삶을 바라봐야 한다.

안데레사 기자  sharp229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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