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10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 ’My Frame Your Frame‘
MZ세대의 자유분망한 '스마트폰 얼짱각' 연상

[서울=뉴스프리존]편완식 미술전문기자= 19세기 프랑스 화가들은 카메라를 통해 ‘예기치 않은 각도'랄지, ‘우연한 광경'의 매력을 발견했다. 카메라를 그림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얘기다. 네덜란드 작가 카틴카 램프(Katinka Lampe, b.1963~)의 작업은 이를 떠올리게 해준다. 과감한 프레이밍의 대가인 드가를 연상시킨다

리안갤러리 서울이 내년 1월은 10일까지 카틴카 램프의 개인전 ’My Frame Your Frame‘을 연다.

전시 제목에서 보듯 ‘프레임'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다. 프레임이란 무엇인가? 다른 것이기 이전에, 하나의 강력한 제안, 혹은 제약이다. 프레임은 우리의 보는 방식을 조건짓는다. 특정한 대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볼 것을 강제한다. 램프 회화의 특성인 과감한 크롭(잘라내기), 생경한 앵글, 줌인, 실제보다 큰 재현… 모두 프레이밍을 수행하는 램프만의 방식이다.

 얼굴이 아닌 것에서 얼굴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  들뢰즈를 떠올리게 하는 작가  카틴카 램프
 얼굴이 아닌 것에서 얼굴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  들뢰즈를 떠올리게 하는 작가  카틴카 램프

램프는 자신의 회화가 ‘사진 기반 photography-based’ 작업임을 은폐하지 않는다. ‘사진 기반’이란, 단지 그림을 그리기 위한 레퍼런스로서 사진을 참조했다는 의미이기보다는, 차라리 유화 작업의 기반 자체가 사진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램프는 붓을 들기에 앞서, 모델, 소품, 조명을 동원해 장면을 구성하고, 사진을 찍는다. 이 과정에서 크롭이 이뤄지고, 앵글이 결정되며, 프레이밍은 완성된다.

요컨대 램프의 유화는 사진에 ‘기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는 사진인 셈이다. 서사성을 가급적 배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램프의 작품에서 어떤 ‘정황’에 대한 강한 암시를 받을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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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클릭이면 사진을 그림으로, 그림을 사진으로 뒤바꿔주는 AI 툴이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다. 사진을 유화로 옮기는 램프의 더디고 노동집약적인 작업은 분명 자동화 가능해 보이지만, 예술을 매개로 한 모든 유의미한 진술은 충분한 시간을 요구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램프의 회화는 상기시켜준다. 얇은 물감 레이어를 조심스럽게 한 겹 한 겹 쌓아 올릴 때마다 램프의 프레임은 그만큼 더 선명해진다.

작가는 초상화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화면에 인물의 손을 등장시키거나 특별한 자세를 취해서 그 인물의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무시해버린다. 램프의 작품은 구성적인 요소를 없애고 젊은 모델들의 얼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 인공지능이라는 평행 세계와 마주해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시선 을 재고하게 합니다. 이른바 ‘버블’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관점을 리프레이밍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요컨대, 위에서도 보고, 아래에서도 보고, 반대편에서 검토해야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나는 새로운 관점을 끌어내고자 스스로를 강요했습니다. 말 그대로 내 손을 이용해서 내 모델들을 ‘크롭’ 하기도 하고, 세부적인 디테일에 집중하기도 했죠. 우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관점을 새로운 프레임에서 살펴볼 것을 제안합니다. 관점을 ‘리프레밍’ 한다는 것은 굉장히 강력한 행위입니다. 사고방식을 달리해본다는 것은 타인을 이해 할 기회, 스스로가 덜 외로워질 기회를 늘어나게 하지요.“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디테일이라는 달라진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직물, 보석 (목걸이, 귀걸이 등) 등 디테일에 이번처럼 주목한 적이 없습니다. 디테일은 그림에 더 많은 추상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림이 얼마나 잘 그려진 것인지 경험하게 해주죠. 다시 말해, 제 그림이 가진 개념적인 부분에 매몰되지 않게끔 유희적인 요소,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하는 셈입니다.

저는 작업을 통해 항상 ‘초상화’라는 장르를 의문에 부치고 있습니다. ‘내 그림은 초상화가 아닙니다’ 라고 항상 말하죠.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생각이나 감정, 혹은 리서치 결과물을 재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재현한 회화를 철학적 관점에서 본다 면, 그것은 사실 사람이 아니라, 그림입니다. 그림은 하나의 사물이지요. 풍경화, 정물화, 초상화 등, ’장르’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미 긴 의미의 역사를 가진, 이를테면 검증된 이미지 양식이고, 특정한 기대나 선입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하죠.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에 장르가 개입을 하게 됩니다. 장르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늘 스스로에게 자문합니다. ‘초상화란 무엇인가?’ 장르의 한계선을 넘어가 보고자 하는 시도이지요.

‘(얼굴이 아닌) 신체 부위의 재현도 초상화라고 할 수 있는가?’ 이번 전시를 통해 스스로에 게 던지고 있는 질문입니다. 사람은 얼굴만 가지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이 아닌 신체 부위를 가지고도 소통합니다.“

 

그의 그림에선 고화질 디지털 복제 이미지로는 느끼기 어려운 텍스쳐(질감)가 있다.

”저는 유화를 주로 그리는 사람입니다. 유화는 느립니다. 시간을 투자해야 하죠. 먼 저 얇은 붓으로 캔버스에 물감을 발라, 모델의 세부적인 특징들을 그립니다.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죠. 디테일들을 완성하고 나면, 솔이나 헝겊을 이용해 문지르면서 물감이 섞이게 합니다. 또 다른 시그니처 기법이 있다면, 바로 템플릿의 사용입니다. 캔버스 위에 종이를 놓고 드로잉을 합니다. 그 다음, 드로잉을 부분적으로 잘라내고, 페인팅을 시작합니다. 한 번에 한 부분에만 집중할 수 있게하죠. 각 레이어는 마르는데 1주일 소요되기 때문에, 10점의 작품을 동시에 작업합니다.“

​그는 그림속 모델이 입고 있는 옷의 디자인 패턴을 통해 프랑스 아티스트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 1885-1979) 에게 오마쥬를 바치고 있다 들로네적 무늬가 여성주의적인 가치를 부각시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동안 내가 여성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외면하고자 해왔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자각하게 됐습니다. 남성이 지배하는 예술 세계에서 성장했고, 여기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최대한 중성화 시켜왔죠. 여성 아티스트라는 프레임을 거부했고, 예술계의 진지한 구성원이 되려면 회화라는 결과물로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내 그림에 많은 여성이 등장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여성성이랄지, 여성적인 가치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최근 여성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후배 세대를 보면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핑크색을 비롯해 소녀적인 것, 스윗한 것이 엿보이는 이유입니다. 어쩌면 제 작업에서 개념적인 부분을 조금 줄이고, 감정에 집중해야 할 때가 온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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