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민경 수습기자] 추운 겨울. 한해의 끝을 알리는 12월이지만, 이제 막 리그를 시작한 KBL 선수들에겐 지금이 가장 뜨거운 순간이다. 지난 9월, 잠실 학생 체육관에서 열린 2023 KBL 국내신인드래프트에서 총 20명의 대학 선수들이 프로의 부름을 받았다. 이번 시리즈 기사에서는 각 팀의 1픽, 1라운더 선수 10명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편에서는 ‘로터리픽’으로 분류되는, 1라운드 1순위~4순위 선수를 분석했다.

(사진= KBL 제공)
(사진= KBL 제공)

문정현: 1라운드 1순위 그 무게를 견뎌라

‘올라운더’, ‘온더볼 플레이어’, ‘높은 BQ’… 대학생 문정현을 수식하던 단어다.

2022 KUSF 대학농구 U-리그 MVP를 차지한 문정현(고려대 20)은 큰 키와 농구 센스를 앞세워 대학 무대의 페인트존을 지배했다. 194.2cm의 신장을 가진 문정현은 함께 출전하는 선수에 따라 3번 혹은 4번 포지션을 주로 소화했다. 이두원이 얼리 드래프트로 대학 무대를 떠난 2023년에는 주로 4번 포지션을 맡았다. 문정현은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이 매우 좋은 선수다. 공격 옵션이 다양하고, 낙구 지점을 포착하는 능력이 좋아 결정적인 공격 리바운드를 따내는 장면을 자주 연출했다. 또 패스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코트 반대편을 읽고 빠르게 뿌려주는 패스, 페인트존 안으로 돌파하며 수비자를 자신에게 끌어당기고 시선 속임수를 섞어 동료에게 공을 넘겨주는 패스 등으로 상대 수비를 요리했다. 문정현의 대학리그 평균 어시스트 수치는 5를 상회하는데, 이는 다른 포워드 포지션 선수 대비 매우 높은 수치다.

문정현은 2022년 정기 연고전(이하 정기전)에서 올라운더의 모습을 마음껏 뽐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KBL 드래프트 이후 정기전이 개최되어 이미 KBL 소속이 된 주전 가드 김태완(고려대 20,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이 출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신체 능력을 앞세운 돌파로 득점을, 창의적인 패스로 경기 운영을 모두 책임지며 고려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런 다재다능한 모습으로 문정현은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최종 명단에 들어 일찍이 성인 대표팀 경험을 쌓기도 했다. 유기상(체육교육학과, 이하 체교 20), 박무빈(고려대 20)과 함께 2023 드래프트의 압도적 ‘Big 3’로 불리던 문정현은 모두의 예상대로 전체 1순위로 수원 kt 소닉붐의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시즌 초 문정현의 모습은 전체 1순위가 받는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가 있는 프로 무대에서 190cm를 조금 넘는 문정현의 신장으로는 4번 포지션을 맡기 어렵다. 따라서 출전 시간 확보를 위해서는 3번 포지션으로의 전환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외곽 슛 능력 부족이 부각되고 있다. 포지션 변경에 따라 페인트존 안으로 파고들기보다는 외곽에서 코트를 넓혀주는 움직임의 비중이 더 커진 상황에서 새깅을 당하는 와중에도 에어볼을 내는 등, 대학 시절보다 오히려 외곽 능력이 하락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득점력이 떨어지면 장점인 패스 능력도 뽐낼 수 없다. 좋은 패스는 우선 자신에게 수비자를 끌어당겨 동료에게 찬스가 나는 상황을 만들어야 건넬 수 있다. 그런데, 외곽에 서 있을 때는 새깅을 당하고, 내곽으로 돌파를 해도 대학 시절처럼 자신에게 도움수비가 오지 않으니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고무적인 것은 새깅을 당하는 와중에도 주눅들지 않는 문정현의 자신감이다. 극단적 온볼러인 문정현의 플레이 스타일 상, 프로 초기에 대학 무대에서 보였던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기 힘들다는 것은 모두가 예상한 사실이다. 포지션 변경을 위해서는 체중 감량과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고, 결국 그 시간동안 자신감을 잃지 않고 계속 시도하며 배워나가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문정현은 이 끈기를 가지고 있다. D리그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인터뷰를 통해 슛에 약점이 있다는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며, 훈련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사진= KBL 제공)
(사진= KBL 제공)

박무빈: 모비스의 간판이 될 슈퍼스타, 정규리그 데뷔는 아직

박무빈은 시원한 돌파를 주축으로 한 득점력과 과감한 경기 운영으로 대학 시절부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전통적으로 빅맨이 강한 고려대학교에서 믿음직한 백코트 자원으로 활약하며 고려대학교의 2022, 2023시즌 대학농구 U-리그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박무빈의 가장 큰 강점은 승부처에서 휘몰아치는 연속 득점력이다. 신장 184.4cm로 신체 조건 면에서는 평범하지만, 빠른 속도와 드리블 능력을 바탕으로 한 돌파력이 뛰어나 상대 수비 여러명을 달고도 득점이 가능하다. 고학년에 들어서는 풀업까지 장착해 돌파와 외곽 2지선다로 상대 수비를 찢고 팀 득점의 상당 부분을 책임졌다.

박무빈의 ‘영웅본능’이 잘 드러난 경기로는 2022 MBC배 전국대학농구 상주대회 단국대와의 준결승전을 꼽을 수 있다. 당시 단국대 에이스 염유성(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이하 가스공사)이 3점슛 성공률 50%, 3점 5개 포함 20득점을 기록하며 3쿼터까지 아슬아슬한 시소게임이 이어졌다. 박무빈은 빠른 돌파에 따른 2점과 중요한 순간에 터뜨린 3점슛으로 추격의 위기마다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특히 자신 있는 돌파로 팀 내에서 가장 많은 5개의 파울을 얻어냈다. 박무빈은 기록에 드러나지 않는, 상대 수비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선수다. 이렇게 끌어당긴 수비자를 빠른 스피드와 드리블 기술로 멋지게 벗겨 놓는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로 ‘대학 최고의 공격형 가드’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2023 드래프트에서 큰 이변 없이 전체 2순위로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이하 모비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2022-2023시즌 역대 최초 외국인 신인상의 주인공인 아바리엔토스가 이탈한 모비스에서 박무빈이 주전 가드 자원으로 활약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빠른 농구를 추구하는 모비스는 시즌 전 여러 가드를 교체 기용할 계획을 세웠고 그 한 축으로 박무빈을 사용할 계획임을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다. 실제로 시즌 전 일본 전지훈련에 박무빈을 중도 합류시키고, 컵대회에서도 4경기 50여분을 출전시키며 박무빈을 향한 기대와 신뢰를 드러냈다. 박무빈은 평균득점 4.3점, 평균 어시스트 2.3개를 기록하며 포인트가드로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또 대학 시절 때 보여줬던 과감한 돌파를 여러 번 선보이며 자신이 프로에서도 통하는 스코어러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박무빈과 모비스에 부상 악재가 찾아왔다. 박무빈은 개막 전 수비 훈련 과정에서 동료의 발을 밟아 발목이 돌아가며 인대 일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박무빈 없이 시즌을 시작한 모비스는 10월 29일 주전 포인트가드 서명진마저 잃었다. 검진 걸과 서명진은 왼쪽 무릎의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돼, 이번 시즌에는 돌아올 수 없다. 가드 자리가 비어버린 것이다. 박무빈은 현재 발목 부상 회복의 막바지에 있으며, 최근 러닝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팀 사정상 박무빈이 복귀하자 마자 메인 핸들러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커졌다. 코치로 ‘레전드’ 양동근이 있는 만큼, 박무빈이 1번 포지션에서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 KBL 제공)
(사진= KBL 제공)

유기상: 강력한 신인왕 후보. ‘수비 되는 슈터’의 저력

2023시즌 연세대학교 농구부(이하 연세대)의 주장을 맡았던 유기상은 모두가 인정하는 대학 무대 최고의 슈터로 큰 주목을 받았다. 단순히 슈팅 능력만 뛰어난 것을 넘어 스크린을 타며 스스로 찬스를 만드는 ‘오프 더 볼 무브’가 좋다는 점에서 특히 호평을 받았다. 상위 순위에 지명된 두 선수와 달리 볼 소유 시간이 길지 않은 스타일의 선수이기 때문에 프로에서 즉시 전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평이 많았다. 연속 3점슛으로 상대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끊어버리거나, 버거워 보였던 점수를 적은 공격 횟수로 뒤집는 드라마틱한 상황을 자주 연출했다.

유기상의 저력을 잘 볼 수 있었던 경기로 2022년 5월 12일 대학농구 U-리그 연세대와 중앙대의 경기를 꼽을 수 있다. 유기상은 3쿼터에만 14득점을 몰아치며 3점슛 9개 포함 35득점이라는 무서운 득점력으로 팀의 역전승을 견인했다. (3점슛 성공률 75%) 3쿼터 시작 당시 10점차로 뒤지고 있던 연세대는 수비자를 달고도 연달아 3점슛을 성공시킨 유기상의 활약에 힘입어 98대 88이라는 스코어로 경기를 끝냈다. 유기상은 절정의 슛감을 자랑한 3쿼터 이후 자신에게 더블팀이 들어오자 무리하지 않고 빈 동료에게 좋은 패스를 연결하는 등 자신이 가진 넓은 코트비전과 경기 운영능력까지 보여줬다. 문정현, 박무빈에 이어 창원 LG 세이커스에 지명되며 연세대학교에서 호흡을 맞췄던 양준석(체교 20)과 재회했다. 드래프트 당시 조상현 감독이 걸어준 ‘S 목걸이’가 사진 촬영시 반사광을 뽐내며 눈길을 끌어 소소한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Big 3’중 가장 늦게 지명받은 유기상이지만, 드래프트 동기들 중 정규리그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며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11월 10일 부산 KCC 이지스(이하KCC)와의 경기에서 19분 30초 출전, 3점슛 6개로 18득점을 기록하며 (3점슛 성공률 75%) 드래프트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수훈선수에 선정됐다. 유기상은 ‘수비 되는 슈터’라는 강점 덕분에, 팀에 꼭 필요한 선수로 자리를 잡고 있다. 대학 시절 수비가 아쉽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대학 무대에서도 스크린 파이트스루로 핸들러를 쫓아가는 적극성과 스피드가 준수했다. 성실한 성격으로 팀 디펜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연세대의 존 디펜스에서 탑에 위치해 수비 전체를 지휘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 특히 졸업 학년의 유기상의 수비력은 부상 선수가 많았던 연세대 팀 사정상 수비 시 전체적인 조율, 공격시 핸들링, 득점, 주장으로서 선수 조율 등을 모두 책임져야 했던 상황 탓에 저평가 된 면이 있다. 컵대회 이후 유기상의 수비력이 한 층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무리한 스틸을 노리지 않고 사이드 스탭으로 상대를 끝까지 따라가며 구석 혹은 외곽으로 밀어내는 성실하고 정석적인 수비를 보여주며,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의 전성현, 부산 KCC의 허웅, 가스공사의 김낙현, 서울 SK 나이츠의 허일영 등 뛰어난 득점력을 가진 상대 선수를 잘 묶어내고 있다. 공격 면에서도 프로에 데뷔하며 경기 조율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고 좋은 스크린을 받게 되자 3점슛 성공률이 오히려 개선됐다.

11월 10일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유기상은 상대가 아직 자신에 대해 분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득점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겸손한 말을 남겼다. 유기상의 말대로, 라운드를 거듭하며 상대 팀에서 유기상을 유의미한 득점원으로 분류하고 분석을 마친 시점이 유기상의 진짜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사진= KBL 제공)
(사진= KBL 제공)

조준희: 리그 평균 득점 최하위 삼성은 어린 영웅을 기다린다

조준희는 2023년 드래프트 최대 이변의 주인공이다. 2004년생으로 만 18세인 조준희는 캐나다 유학 시절 취미로 농구를 접한 후, 재능을 인정받아 미국 IMG 아카데미에서 최초의 한국인 선수로 농구를 전문적으로 배웠다. NCAA 1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했으나 코로나19 속 실전 경험을 쌓지 못하며 진학에 실패했다. 주변에서는 재도전을 권했지만, 더 빨리 더 높은 레벨에서 경쟁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와 KBL 일반인 드래프트에 도전했다. 트라이아웃에서 인상적인 공격력을 선보인 조준희는 전체 4순위로 서울 삼성 썬더스(이하 삼성)의 지명을 받았다. 선수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지명이었다. 조준희는 연세대학교 농구부 선수와 의외의 인연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주영(체교 23)이다. 이주영은 2021년 KBL IMG 아카데미 연수자로 뽑혀 IMG에서 훈련한 적이 있다. 이 때 동갑내기인 조준희와 이주영이 친분을 쌓았고 지금까지 그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조준희는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자신감,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우수한 공격력 대비 수비가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인 디펜스는 준수하지만, KBL 특유의 팀 디펜스에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인다. 연속된 스위치, 지역 방어와 적절한 태깅 등 소통과 훈련이 필수적인 수비 전술에서 구멍을 보였다. 그럼에도 빠른 슛 동작과 정확도를 자랑하는 외곽 능력으로 시즌 초반 점차 출전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리그에서 득점 최하위를 기록중인 삼성에게 조준희의 공격력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1월 8일 발목 부상이 조준희를 멈춰 세웠다. 출전 시간이 늘어나고 있던 시점, 경험치가 꼭 필요한 선수가 부상당한 점이 안타까운 대목이다.

조준희의 약점으로 지적 받는 수비력은 경험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해결 가능한 문제다. 그러나 삼성은 D리그를 운영하지 않는 팀이다. 게다가 1옵션 외국인선수 코피 코번은 발이 느리고 수비시 페인트존 안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선수다. 조준희와 코피 코번을 같이 사용하면 수비 로테이션이 완전히 무너질 위험이 있다. 삼성이 이 딜레마를 파훼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조준희의 역할과 출전 시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대학 리그에서 더 넓은 프로의 무대로 첫 발을 내디딘 선수들. 각자 강점은 키우고, 약점은 보완해 프로에서 오랜 시간 활약할 수 있길 응원한다.

※ 본 기사는 시리즈 기사로 연재되는 글로 2편으로 이어집니다.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